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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정지음, <젊은 ADHD의 슬픔>

by Jaime Chung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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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정지음, <젊은 ADHD의 슬픔>

 

내가 며칠 전에 읽은 <언러키 스타트업>을 쓴 정지음의 데뷔작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이 언급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난 그때 별 관심이 없었다. 이제 와서 이걸 읽게 된 게 아쉽긴 하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단 그래도 좀 늦은 게 낫지.

➕ <언러키 스타트업> 서평은 여기.

2022.11.25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정지음, <언러키 스타트업>

 

[책 감상/책 추천] 정지음, <언러키 스타트업>

⚠️ 아래 서평은 정지음의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실 예정인 분들은 독서의 재미를 위해 책을 먼저 읽으신 후에 이 서평을 읽으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이 책에 대해 본격

eatsleepandread.xyz

 

책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자신이 ADHD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 자신에 대한 생각과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는 ADHD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저자 덕분에 ADHD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생생한 표현을 들으니 ADHD란 어떤 것인이 조금 감이 온다. 물론 내가 감히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아래는 ADHD 테스트 항목들에 대한 저자의 셀프 평가이다.

4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분산된다기보다는 빻아져 흩날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는 들쭉날쭉한 난독이 있어 거장의 명문은 물론 내가 쓴 글조차 잘 읽지 못한다. 독서라기보다는 해독을 하는 것 같다. 해독에 실패하면 자아는 끊임없는 몽상 여행을 떠나고, 책은 늘 새 책인 채로 책장에 남는다.

7 조심성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한다. 이건 내 묘비석에 한 줄 평처럼 새겨져도 반박할 수 없는 문장이다.

8 다른 사람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건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내 앞에 앉아 떠드는 이가 용서받을 수 없이 지루하다면, 내 집중력 또한 지구 내핵으로 파고든다. 내겐 갑자기 바람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명료해지고 이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지기 전 터를 잡고 살았을 원주민 두더지들의 억울한 호소까지 들려온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고 나도 내가 남의 말 좀 들었으면 좋겠다.

9 지속적인 정신력을 요하는 직업을 피하거나 싫어한다.
이 경우는 나의 호불호 문제가 아니라 그 직업 쪽에서 먼저 나의 특성을 거부한다. 짝사랑은 슬픈 것이지만 상호 혐오라면 해피 엔딩이라고 본다.

10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말한다.

나는 상황을 고려하면서 아무렇게나 말하는 편이다.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최우선적으로 자제한다. 아이디어를 낼 때도 ‘이건 된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조심스레 말한다. 그럼에도 다들 내가 미친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건 5점 만점에 2점이 적당하다.

11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천국에 도착하는 즉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태어나 버릴 것 같다.

12 불필요하게 끝없이 걱정한다.

일단 내 소중한 걱정들을 ‘불필요하다’라는 말로 싸잡는 게 기분 나쁘다. 걱정이 왜 나쁘단 말인가? 걱정은 인류가 망하지 않고 2021년까지 기어코 살아남은 원동력이다. 마음은 상했지만 사람은 정곡을 찔릴수록 길길이 분노한다는 이론에도 동의하기 때문에 만점을 내준다. 내가 하는 걱정들을 신명조, 13포인트, 줄 간격 160퍼센트로 출력해서 이으면 하루치로도 지구 세 바퀴 반을 돌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안 미친 이유는 자고 나면 다 잊기 때문이다.

13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오해다. 충분히 고려한다. 행동에 반영하는 걸 까먹을 뿐이다.

14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대답해 버린다.

사람들의 질문이 너무 길다는 이의 제기를 하고 싶다. 질문에서 벗어난 장황설일 때도 많고, 동시에 서너 가지를 묻는 사람도 정말 많지 않은가? 하지만 맞긴 맞다. 나는 물음표 살인마이자 물음표 커터다.

 

그래도 정신과에서 ADHD의 증세를 조절하는 약을 먹고 또 저자 본인도 노력하며 자신이 ADHD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ADHD와 공존하는 법을 찾은 듯하다. 물론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감동받은 부분은 가족, 특히 언니와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대목이었다. 내가 언니나 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손윗사람이나 손아랫사람과 잘 어울려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그럼에도 나는 언니와 동생을 너무너무 사랑했다. 한때 괴팍하고 식탐 많고 잘 우는 자매들을 위아래로 업신여긴 적도 있다. 언니는 다 큰 지금도 괴팍하고 식탐 많고 잘 울지만, 그 이상 대단하고 정말 멋지다. 내게 언니란 아무리 개판을 쳐도 특별함이 훼손되지 않는 존재였다. 반면 동생은 숨만 쉬어도 대견하다는 점에서 또다시 고유했다. 동생은 사랑스럽다. 제일 작고 귀여운 강아지도 집채만 하고 무뚝뚝한 내 동생을 이길 순 없었다. 똑똑한 언니와 독특한 나를 제곱한대도 우리는 동생만큼 천진하게 빛나지 못한다.

세 자매는 영원히 서로가 되지 않지만 싸운 후에 남이 되지도 않으며 좁은 집을 채웠다. 각자의 방을 가지지 못한 시절이라 말과 장난과 옷 들을 항상 나눴다. 매일매일 복근이 생기도록 울고 웃었다. 아무 말 하지 않는 날에도 어떤 대화는 끊임없이 속삭여지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셋 다 따로 사는 지금, 우리는 너무 자세한 안부를 나누지 않는다. 내가 잘 지내니 쟤도 잘 지낼 거라 함부로 안심하며 거리를 둔다. 그러다 서로에게 조금의 사건이라도 생기는 날엔, 모든 안심을 축구선수처럼 걷어차고 한 팀으로 모인다. 우리는 함께 머리를 모아 세상이 떠넘기는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금 부족한 채로 함께 태어난 것 같다. 아니면 지옥에서 떨어져 절단난 케르베로스일까?

(…)

솔직한 말로, 돈 갖고 싸워 볼 만큼 내 자매들이 부자였으면 좋겠다. 그 상상은 어떤 것보다 떨린다. 이 추운 날 이리도 뜨거운 콧김이 솟다니, 숨결의 온도로 내가 얼마나 속물인지 알게 된다.

나는 이제 내가 둘째인 게 좋은 둘째라서 첫 번째 부자 자리를 언니나 동생에게 흔쾌히 양보할 수 있다. 언니나 동생이 큰 부자가 된다면, 그들의 발톱 때를 벗기는 하인으로 활약하겠단 결의도 있다. 언니는 남이 자기를 제치는 꼴을 못 보니 제일가는 부자가 되어도 자연스럽다. 내게는 늘 어리기만 한 동생이 자산 규모에서 쿠데타를 일으켜도 멋질 것 같다. 어쨌든 두 번째 부자는 역시 둘째인 내가 어울린단 생각으로 오늘도 힘내어 산다.

 

그리고 저자가 키우는 고양이 ‘맷돌이’를 향한 사랑도 어찌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확실히 애완동물을 키우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이유를 알겠다.

2020년 6월, 나는 5주 된 아기 고양이와 반려 관계를 맺었다. 본가에 살 적 부모님이 집 안에 들이는 동물은 술 먹고 개가 된 나 정도였기 때문에, 진짜 동물 친구의 등장은 마약 같은 감격을 주었다. 나는 강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그 애의 이름을 ‘맷돌이’라고 지었다. 이상하단 의견이 많았지만, 맷돌이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매력으로 이름의 난해함을 중화시켰다.

그러나 맷돌이는 또 경이롭도록 사랑스러웠다. 맷돌이가 한 나쁜 짓들은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지만, 맷돌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내 능력으로 묘사할 수 없다. 내게 몸통을 붙이고 잠든 모습, 까드득까드득 사료를 씹는 모습, 응가하느라 조그만 궁둥이를 바르르 떠는 모습, 갑자기 하품을 쩍 하는 모습, 사냥 후 전리품을 취해 자기만의 비밀 공간에 저장하는 모습 등 맷돌이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회백색의 내 삶까지 컬러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감동을 느끼는 삶.

그 단순한 조건의 충족은 내 마음의 용량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원래 20메가바이트 정도였다가 갑자기 2테라바이트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난 밝아지고 너그러워졌다. 일상 속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대사들은 “어쩌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로 차차 바뀌어 갔다. 맷돌이가 치는 사고를 수습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해프닝에 대한 인내가 높아진 걸까 생각해 봤지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좋은 습관에 쉽게 길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길들인 건 맷돌이의 존재 자체라고 봐야 옳았다. 맷돌이를 집에 두고 출근하면 짜증스러운 일도 많았다. 막히는 출퇴근 도로는 여전히 막막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소식을 들으면 없던 인류애도 떨어졌다. 내 처지는 시시각각 가난하고 외로워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더 이상 그런 악조건이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는 거였다. 내 인생이 드디어 무기력과 우울의 궤도를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저절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 왔다. 하지만 저절로 생기는 문제는 있어도, 저절로 해결되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맷돌이가 나를 구제했지만, 맷돌이를 만나러 간 건 나다. 나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맷돌이의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옳은 선택을 한 내가 그 전보다 훨씬 자랑스러웠다.

 

또 오래된 친구들과의 우정 이야기도 어찌나 눈물이 나게 반짝이는지. 같은 건물 속 세 개의 매물을 각자 계약해 같은 건물(아마 오피스텔인 듯)에 살다니. 정말 너무 멋진 우정 아니냐고! 딱 내가 바라는 거다.

맷돌이 힘까지 보탠 덕인지 눈물의 총량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우리는 이제 슬픔 대신 각자의 음식과 물건과 손님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재미난 생활이지만, 재미 때문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서 얻는 것보다 친구들이니 빼 버려도 되는 것들이 좋았다. 와르르 맨션 주민들 앞에서는 ADHD가 아니고 싶다는 강박을 멈출 수 있었다. 집중력을 꾸며 내고 나의 기능을 증명하는 대신, 어리광을 부리며 솔직해질 수 있었다. 마음 놓고 망가질 공간이 있기에 밖에 나가 사회인 행세를 하는 일도 덜 버거운 것 같았다. 몇 년 전 한 사람은 캐나다, 한 사람은 파주, 한 사람은 남양주에 살 때도 나는 매일 우리의 단톡방으로 귀가했다. 물리적 거주지가 합쳐진 지금은 정말로 매일 ‘우리에게’ 돌아오는 셈이다.

 

이 책을 보니 <언러키 스타트업>에서 너무너무 웃긴다고 생각했던 표현법이 그냥 저자의 문체라는 걸 알겠다. 나도 살면서 그래도 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가의 문체는 정말 새롭고 신선하고 독특하다. 모든 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쓴다지만 이렇게까지 색다른 글을 쓸 수 있다고? 솔직히 부럽다. 아니,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기냐고! 이 정도 되어야 브런치북 대상을 받는구나.

ADHD 진단 직후, 나는 고분고분해진 것처럼 보였다. 착해지려 했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으로 ADHD 확진이 준 충격을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평소 성질머리와 다르게 ‘미안하다’, ‘죄송하다’, ‘모두 내 탓이다’ 소리를 지껄이고 돌아온 날이면, 슬프다 못해 가학적인 심정이 되었다.

당시 스스로의 재판관이던 나의 판결은 이렇다.

나는 무가치하고 무규칙적이며
무방비한 데다 무계획적이다.
무례하다는 점으로 보아 무식하고
무책임해서 무능력하다.

그 외 무절제, 무질서, 무기력 기타 등등. 일단 ‘무(無)’ 자가 붙으면 전부 내 얘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망친 건 ADHD였다.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2005)>에서 ‘V’로 시작하는 단어를 기가 막히게 옮긴 ‘초월 번역’(여기)이 연상되는 이 부분을 읽고 진짜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위 인용문은 에필로그에 속해서 책의 맨 끝에 위치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내 의심만 해 왔던 것에 완전히 쐐기를 박았달까. ‘나는 이렇게 완전히 창의적인 새 문체를 발명해 낼 수 없을 거야.’ 에필로그의 말미에 저자는 다시 새로운 판결을 내린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묻는대도 부정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젠 팩트의 궤적에 치이는 대신 재투성이 혼란을 다뤄 보기로 했다. 그러니 나에 대한 설명들을 이렇게 고칠 수도 있겠다.

나는 무궁무진하고, 어떤 면에선 무고하다고.
무미건조한 일상은 무사함의 증명인 거라고,
단지 상상력 하나로 머릿속에 무성영화 상영관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무수히 많은 날을 살며
그래도 무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무용함과 무용은 한 끗 차이라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 말이다.

 

내가 저자도 아니고 ADHD인 것도 아니니, 내가 감히 ‘그래도 그에 따른 장점도 있잖아’라거나 ‘이런 경험과 책을 쓸 수 있는 재능을 얻었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거래 아닌가?’ 같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ADHD나 정신병이 있는 모든 이들이 다 저자처럼 창의적인 글을 쓴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하지만 이 말만은 확실히 할 수 있다.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독자들은 즐거움, 감동, 그리고 희망을 느낄 수 있다고. 그의 글에는 힘이 있다고.

덧붙여, 이 책을 읽고 내가 <언러키 스타트업>을 읽으며 가졌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작가님은 정말로 <언러키 스타트업>에서 묘사되는 것 같은 ㅈ 같은 회사에 다녀 보신 적 있는 듯. 그리고 김다정 주임이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는 설정도 작가님 본인에게서 빌려온 듯하다. 어느 정도는 본인의 모습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다정 주임이 대표 박국제의 죽음을 상상하며 꽁트 같은 짧은 글을 쓴다는 언급이 있는데 실제로 작가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어쨌든 장편을 쓰라는 말을 들은 후 완성한 건, 나를 죽도록 괴롭히던 전 회사 사장의 이야기뿐이다. 놈이 비곗덩이 신체 때문에 안마 의자에 껴서 죽는다는 졸렬한 내용의 콩트였다. 그 글은 완전히 쓰레기라는 면에서 회의적이지만 유일하게 분량이 A4 용지 열다섯 장을 넘겼다는 면에선 희망적이었다. 나는 늘 궁금했다.

타자 살해 열망이 고작 A4 용지 열다섯 장의 동기부여를 준다면, 200장을 쓸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얻어야만 할까? 왜 나는 오로지 집중력이 없다는 사실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병아리라면 껍질을 깨고, 건물 안에 갇혔다면 창문을 깨겠지만 머릿속 개떼 문제로 머리를 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러키 스타트업> 서평에도 썼지만 ✊ 작가님 절대 지켜 ✊ 얼마나 거지 같은 회사에서 시달렸으면 그런 글을 썼을까… 사실 나도 머릿속으로 내가 다녔던 악덕 기업의 대표와 실장을 차로 여러 번 들이받았다. 나는 여태껏 운전 면허가 없는데, 나에게 그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늘 같은 대답을 해 준다. “면허가 있으면 차를 몰고 제가 싫어하는 사람을 차로 들이받으러 질주할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대답을 첫 취업 이후 똑같이 해오고 있다. 내 성질머리가 변하지 않(고 운전 면허도 따지 않)은 덕분이다.

어쨌거나, 정말 신선하고 독특한 문체 때문에 감탄하고 또 저자가 보여 주는 날카로운 자기 분석(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되어 있으심)에 감탄하며 읽었다. 내가 이 책의 반만큼이라도 뛰어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ADHD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더라도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색다른 글을 읽어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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