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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지현, 최연호,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by Jaime Chung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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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지현, 최연호,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이 책 제목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뭐야, 둘 다 같은 거잖아. 이 무슨 ‘혼돈에 카오스’나 ‘어둠에 다크’ 같은 소리야?” 생강빵과 진저브레드가 가리키는 대상은 똑같은지언정, 각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다르다. 생강빵은 뭔가 매운 맛이 날 것 같지만, 진저브레드라고 하면 귀여운 진저브레드맨이 먼저 떠오르고, 서양에서 온 달콤한 과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번역’에 따라 음식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릴 적에 영미 소설을 읽으며 거기에 묘사된 이국적 음식을 상상하곤 했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월귤’이라고 묘사되었던 게 사실 ‘링곤베리(lingonberry)’라는 사실을 알게 된 번역가이다. 그는 영미 문학 속 ‘기억에 남는’ 음식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에 얽힌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을 나누고, 각 꼭지 끝에 그 해당 음식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담은 설명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하이디>에서 알프스에서 살던 소녀 하이디는 도시에서 부드러운 ‘흰 빵’을 처음 보고 할머니가 평소에 드시는 값싸고 딱딱한 검은 빵 대신 이 흰 빵을 할머니가 맛보실 수 있게 가져다 드리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하이디가 그토록 집착하는 흰 빵보다 검은 빵에 더 관심이 갔다.”라며, 도대체 어떤 빵이기에 검은 빵이 가난의 상징일까 궁금해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하이디가 먹던 그 검은 빵의 실체는 호밀빵이었다고.

나는 내가 먹는 우유식빵, 소보로빵, 슈크림빵을 다 맞바꿔서라도 검은 빵이라는 것을 한 번만 먹어보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알프스 시골의 소박한 맛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유럽식 가난’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가난이라 해도 한국의 구질구질한 가난과는 무언가 다를 것만 같았다. 김치나 소주 냄새와는 거리가 먼, 건강하고 고소하고 담백한 가난. 어린이책 삽화 속 백인 여자아이들처럼 예쁘고 깨끗한 가난.

이제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것이었는지 안다. 그리고 검은 빵의 정체가 실은 호밀빵이었다는 것도 안다. 그것이 이름에서 연상되듯 오징어먹물빵 같은 시커먼 색이라기보다는 진한 갈색에 가깝다는 것도 안다. 서울에서 호밀빵을 취급하는 제과점이 어디인지도, 그게 어떤 맛인지도 잘 안다. 원하면 언제든지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유럽식 빵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온갖 호밀빵을 사 먹더라도 《하이디》에 나오는 검은 빵은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실제 19세기 유럽 빈곤층이 먹던 호밀빵과 2020년 한국에서 시판하는 호밀빵은 재료나 기법, 보존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내가 맛보고 싶었던 것은 물리적인 검은 빵 자체가 아니었다. 알프스 고원의 전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향긋한 냄새가 나는 마른풀 침대와 천장에 난 창문으로 올려다보는 별하늘, 병약하지만 상냥하고 예쁜 금발 머리의 단짝 친구, 학교에 가지 않고 온종일 염소들과 뛰노는 삶…… 한마디로, 나는 현실의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을 ‘검은 빵’에 대입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빵은 이미 내가 원하는 검은 빵이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내게 검은 빵이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고 나서 간단히 검은 빵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이 설명은 대체로 한두 쪽 분량이라 부담스럽지 않다. 읽다 보면 ‘어, 나도 이 음식이 도대체 뭘까 궁금했는데!’라며 공감하게 되고, 그 이야기 속 음식이 정말 먹고 싶어진다.

 

저자가 얼마나 음식과 번역에 진심이냐면,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Peanut Butter and Jelly Sandwich)’ 꼭지에서는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라는 번역어에 의문이 들었다며, 트위터에서 총 33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한국인이 생각하는 ‘샌드위치’라는 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정의대로, “얇게 썬 두 조각의 빵 사이에 버터나 마요네즈 소스 따위를 바르고 고기, 달걀, 치즈, 야채 따위를 끼워 넣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땅콩버터와 잼(이걸 왜 젤리라 부르는지 나도 의문이었는데, ‘젤리’와 ‘잼’의 관계를 다룬 꼭지에서 상세히 설명한다)은 씹히는 맛을 내는 재료도 아닌데 ‘샌드위치’라 부르기 좀 뭣하지 않은가. 게다가 한국에서 음식 이름은 재료와 조리법 이름을 모두 붙여 부른다. 예컨대 ‘참치김치볶음밥’ 또는 ‘소고기버섯전골’이라고 하지, ‘참치와 김치 볶음밥’이나 ‘소고기와 버섯 전골’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저자도 ‘와’를 없애고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라고 번역해야 하는지, 그냥 ‘땅콩버터와 잼 바른 식빵’ 정도로 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진다. 나도 깊이 공감한다. 어떤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 따위의 말을 쓴단 말인가. 대개 “이따가 식빵에 잼이랑 땅콩버터 발라 먹어야겠다”라거나 “아까 딸기잼 바른 빵 먹었어”라고 말하지 않나. 저자의 고뇌를 듣다 보니 정말 음식 이름을 번역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공감하고 좋아했던 꼭지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에 나오는 ‘TV 저녁식사(TV Dinner)’이다. 딱히 이 요리를 내가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마틸다>에 대한 감상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다. 문학 소녀 중에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마틸다> 꼭지 내용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저자 말대로 <마틸다>를 보며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했다.)

책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칭찬을 받을 때도 있지만 수난을 당할 때도 많은 것 같다. 요즘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여자애가 너무 똑똑하면 못쓴다든지, 책 좀 읽었답시고 잘난 척하지 말라든지, 여자애가 공부 따위 해봤자 뭐에 써먹느냐고 하는 어른이 아주 많았다. 설령 그렇게까지 대놓고 타박하지 않더라도 여자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이나 성취는 마치 존재하지 않거나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런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라면 《마틸다》를 보며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느낄 것이다. 마틸다 웜우드는 다섯 살도 안 된 나이에 디킨스의 소설을 읽는 신동이지만, 마틸다의 부모는 딸의 재능을 지원하기는커녕 알아주지도 않는다. 웜우드 부부는 자식이라는 이 성가신 골칫덩이가 어서 자라서 눈앞에서 사라져주기만을 바라는 게으르고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부모이다. 그들은 마틸다를 멍청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라고 생각하며 “여자애는 자고로 조용히 놀아야지 쫑알대서는 안 된다”고 타박을 주는가 하면 책 좀 그만 읽으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마틸다에게 위안거리는 오로지 책뿐이다. 마틸다는 도서관의 책들을 게걸스럽게 읽어나가면서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배우고 가족 안에서는 가질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마틸다가 누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는 책을 찢어버리기까지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마틸다를 괴롭히고 책을 짓밟으려 해도 그 신성한 기쁨의 전당을 완전히 빼앗을 수는 없다.

또한 책 한 권과 따뜻한 음료를 가지고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의 행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마틸다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자기 방에 혼자 틀어박혀 책을 읽는 오후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럴 때면 핫초콜릿이나 코코아 믹스, 보브릴(소고기 추출물을 뜨거운 물에 타 먹는 영국식 인스턴트 음료) 한 잔을 타서 옆에 두고 마시곤 한다. 아쉽게도 마틸다는 아직 어려서 부엌 안의 물건들이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맛있는 걸 만들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날의 책이나 기분에 따라 적합한 음식도 준비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는 것도 참 좋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건 더더욱 좋으니까. 맛있는 음식은 책의 재미를 돋워주고, 재미있는 책은 음식의 맛을 돋워주는 법이다. 책장을 넘기고, 포크를 입에 가져가고, 입에 든 맛있는 것을 삼키는 동작을 반복하노라면, 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언제까지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웜우드 부부가 그런 행복을 용납할 리 없다. 그들은 책을 읽으며 식사하고 싶어하는 마틸다에게 “식사는 하나의 가족 모임”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 혼자만의 재미를 위해 단체 활동에서 빠지면 밉상이라는 소리이다. 하지만 그들 가족 식사가 정말 가족이 함께하는 단란한 시간이었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웜우드 부부는 냉동 인스턴트식품을 데워다 놓고는, 아이들의 관심사나 생각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거나 자기 이야기만 떠들면서 음식을 먹는다. 애초에 그들은 아이들이 말을 걸거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틸다가 책 읽으며 식사하고 싶다고 하자 ‘개인플레이’를 한다며 화내는 걸 보면, 단지 마틸다가 행복해지는 것에 심술이 나서 그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기밖에 모른다며 혼을 내곤 하지만, 사실 어른들이야말로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아이에게 강요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엄마아빠가 거실에서 TV를 볼 때 나는 내 방 문을 닫아 놓고 침대 옆쪽 벽에 기대어 앉아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아직도 그렇게 책을 읽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거야말로 정말 마틸다 같은 기분이었다(우리 부모님은 웜우드 부부처럼 나쁜 분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얘기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을 두 가지 꼽자면, 부엌에서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꺼내 먹고 요리할 수 있다는 것과 식사하면서 어떤 책이든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못 먹게 했던 커피나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내 입맛대로 만든 크림소스 파스타를 먹으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밀가루와 지방이 듬뿍 든 냉동식품도, 뭐, 먹으라거나 먹지 말라거나 강요하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먹을 수도 있다. ‘TV 저녁식사’도 그 구색으로 보나 간편함으로 보나 책을 읽으면서 먹기엔 참 좋은 메뉴일 것 같다.

《마틸다》의 결말에서 부모를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린 마틸다가 ‘독서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았겠거니 상상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여자애가 책 따위 읽어서 뭐 하냐는 말을 듣고 자란 여자들이 어른이 되어 좋아하는 책을 실컷 사 읽으며 맛있는 걸 먹는다고 생각하면 또 그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지금 나는 좋아하는 일본식 오픈 키친 레스토랑에서 꽁치 알리오 올리오와 맥주를 즐기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 잔으로 수많은 ‘마틸다’의 작은 승리에 축배를 들겠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건배하자. 우연찮게 우리가 지금 이 한 권의 책 앞에 모였으니 말이다.

<마틸다> 꼭지는 이렇게 끝나는데 난 이 마지막 두 문단들도 너무 좋다. 나는 <마틸다>를 솔직히 여태껏 딱 한 번 영화로 보았는데, ‘미스 허니’(번역본엔 아마 ‘하니 선생님’으로 되어 있는 듯)와 마틸다 사이가 너무 애틋해서, 미스 허니와 가족이 되어 살아갈 마틸다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기에 (이미 영화 봤을 때 엄청 울었다) 다시 보거나 원작 소설을 읽을 용기가 안 나기 때문이다. 다시 보면(읽으면) 난 분명 같은 부분에서 개처럼 울겠지… 어쨌거나 다 큰 마틸다인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껏 뭘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예전엔 밥 먹으면서 책 보다가 국물도 튀기고 그랬는데… 🥹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꼭지는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레몬 젤리(lemon jelly)’ 꼭지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책 전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부분을 꼽겠다. 주디가 친구들과 후식으로 레몬 젤리를 먹다가, 만약 물 대신 레몬 젤리로 꽉 찬 수영장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과연 그 위에 떠서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주제로 격한 토론을 벌였다는 이야기.

이 이미지는 무척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커다랗고 깨끗하고 채광 좋은 수영장, 그리고 그 안에 들어찬 레몬 빛 투명한 젤리. 물보다 맑고 보석보다 반짝이는 젤리는 햇빛이 고스란히 투과해 수영장 밑바닥까지 선명하게 내려다보일 것이다. 거기에 뛰어들면 마치 보석 바다에 뛰어드는 기분일 테고, 머리까지 젤리에 담근 순간 코와 입으로 달콤하고 상큼한 냄새와 맛이 밀려들면 레몬 낙원에 들어온 기분일 것이다. 젤리란 그렇게 낙원의 음식 같은 것이다. 과일보다도 더욱 순수한 과일 같은. 가장 달콤하고 아무런 불순물도 없는 신선한 과일 즙만 짜내서, 그 즙을 굳혀 만든 과일의 결정체.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잘 연마된 토파즈처럼 매끄럽게 각이 져 있지만 일단 입 안에 들어오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환상적인 질감. 그 안에 온몸을 담그고 수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만약 뜨지 못하고 가라앉는다면? 글쎄, 그러면 그냥 먹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다 못 먹으면? 그럼 그냥 죽지 뭐! 레몬 젤리에 휩싸여 그걸 먹다 지쳐 죽는다면 그리 나쁜 죽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건 상상 속의 일이고, 실제로 그런 실험을 한다면 썩 행복한 경험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상을 하는 것이다. 상상 속 레몬 젤리 수영장은 실제보다도 더 완벽하고, 그 완벽함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레몬젤리에 휩싸여 그걸 먹다 지쳐 죽는다면 그리 나쁜 죽음은 아닐 것이다…….” 이 부분이 킬링 포인트. 이 꼭지 끄트머리에 달린 설명에 따르면 젤리로 가득 찬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건 어려울 거라고 한다.

그래서, 과연 레몬 젤리 위에 사람이 뜰 수 있을까? 젤리 밀도가 사람 밀도보다 높으면 가능하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인체의 밀도는 물과 비슷한 세제곱센티미터당 1그램 정도이다. 보통 사람 몸은 물보다 밀도가 약간 낮고, 숨을 들이쉬면 몸 부피가 늘어나 밀도가 더욱 줄어들기 때문에 수면 위에 뜰 수 있다. 그러면 젤리는? 미국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컵 젤리인 ‘프루젤’ 밀도는 세제곱센티미터당 0.16그램이라고 한다. 그러니 주디의 예측대로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선수라도 가라앉을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젤리를 더 뻑뻑하게 만든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먹는 젤리는 아니지만, 입욕제형 ‘액체 괴물’이 시중에 나와 있으니 욕조 안의 목욕물을 젤리 형태로 바꿔볼 수는 있다. 또한 레몬 향이 나는 젤리형 샤워 젤 같은 것도 있으니, 목욕할 때 이런 것들로 ‘키다리 아저씨 놀이’를 해볼 수도 있겠다.

 

이외에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햄과 그레이비’ 꼭지를 읽으면서는 스칼렛 오하라가 얼마나 강렬하고 멋진 여성인지 새삼 느끼며 꼭 올해 내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오 헨리의 <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이라는 단편 소설에 나오는 ‘클라레 컵(Claret Cup)’이 뭔지는 몰라도, 책 소개를 듣다 보니 재미있을 것 같아 이것도 알라딘 보관함에 추가해 두었다. 나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책을 소개나 추천받는 걸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책이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서 알게 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에서 정원사 벤 할아버지가 메리에게 “몸속에 피 대신 버터밀크가 흐르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 버터밀크는 고소하고 달큼한 우유가 아니라 버터를 만들고 남은 액체이다. 발효 크림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톡 쏘는 냄새와 시큼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앤이 다이애나에게 대접하려 했던 ‘나무딸기주스’가 사실 원문은 ‘라즈베리 코디얼(raspberry cordial)’이었으며, 앤이 이 코디얼을 주려다 헷갈려서 실제로 다이애나에게 주었던 것이 ‘커런트 와인(currant wine)’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뻐하실 수도 있겠다. 라즈베리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맛은 다 아실 거고, 커런트는 까치밥나무 열매라고도 하는데 커런트 와인은 이 열매로 빚은 과실주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라즈베리 코디얼과 커런트 와인은 우리나라로 치면 오디즙과 복분자주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단순히 음식 이야기를 들으며 ‘저거 맛있겠다’, ‘나도 저거 먹어 보고 싶었는데’ 하고 공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대한 지식도 쌓고, 또 그 음식이 등장하는 책에 흥미를 가지고 읽어 보고 싶게 하는 매력까지 있으니 이 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지만 특히 어릴 적에 책을 읽으며 거기에 묘사된 음식을 상상하며 침을 흘려 본 적이 있는 이들에게 더욱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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