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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나누기

[아는 것 나누기] 이모지(emoji)의 언어학 - 법정에 선 이모지!?

by Jaime Chung 2023.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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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나누기] 이모지(emoji)의 언어학 - 법정에 선 이모지!?

 

며칠 전에 업로드한 ‘나이 든 사람들이 말줄임표(‘…’)를 쓰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글에서 나는 그레천 매컬러의 <인터넷 때문에>라는 책을 인용하며 온라인에 익숙한 이들과 여전히 오프라인 문법을 따르는 이들의 발화 구분을 살펴보았다. 오늘도 이 책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 볼까 한다(참고로, 이 책은 정말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언어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모지(emoji)는 이제 우리 일상 언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웃는 얼굴(😁)이나 우는 얼굴(😭), 또는 엄지 척(👍) 이모지를 쓰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모지는 우리가 말하려는 내용과 관련된 감정적인 면을 표현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같이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 그러니까 얼굴 표정이라든가 목소리 톤, 시선 처리 등을 이제 온라인으로 글을 쓸 때 이모지가 대신해 준다. 그 외에도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된 내용을 이모지를 통해 강조할 수도 있다. 예컨대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생일과 관련된 이모지들(🎂🎈🎉🎊🥳)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법정에서도 이모지는 ‘발화자의 의도를 담은 의사 소통의 한 방법’이라고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건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다가 알게 된 것이다. 첫째 사건은 이렇다. 2017년, 이스라엘에서 한 집주인은 비어 있는 아파트를 내놓는다는 온라인 광고를 냈다. 이걸 본 한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집주인에게 왓츠앱(whatsapp) 메시지를 보냈다(아래 이미지).

해석하자면, “좋은 아침입니다 😊 그 집 저희가 들어가고 싶은데요 💃🏻👯‍✌️☄️🐿️🍾 세부 사항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언제가 좋으세요?(Good morning 😊 we want the house💃🏻👯‍✌️☄️🐿️🍾 just need to go over the details…When suits you?)”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집주인과 세입자(가 될 예정이었던 사람)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집주인은 ‘이 사람이랑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이제 이 사람이 세를 들러 오겠지? 그럼 광고를 내려도 되겠군’ 생각하고 온라인 광고를 내렸다. 그런데 이 세입자와 이야기를 나눈 지 며칠 지나자 이 사람은 갑자기 사라졌다. 연락이 끊긴 것이다. 그래서 이 집주인은 자기와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이 사람과 계약이 된 것으로 믿고 광고까지 내렸는데 이 사람이 자기가 기대되는 바를 행하지 않았으니 손해를 입었다는 논리였다.

이스라엘의 법정은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과연 샴페인 병과 춤추는 여자 이모지에 ‘계약을 하겠다’라는 의사가 있었다고 해석했을까? 텔 아비브(Tel Aviv) 소액 사건 법원의 아미르 와이제블루스(Amir Weizebbluth) 판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피고인이 보낸 문자 메시지는 샴페인 병과 춤추는 모습 등을 담고 있다. 이런 아이콘들은 상당한 낙관주의를 의미한다. 이 메시지가 양 측에 구속력 있는 계약을 구성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피고인이 그의 아파트에 세를 들고 싶어 한다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 상대측에게 모든 것이 좋다는 뜻을 전달한 이 상징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즉, 판사는 이 긍정적인 이모지들은 집주인으로 하여금 상대가 이 물건에 관심이 있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그래서 집주인이 ‘이 사람이 세를 들러 오겠군’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판사는 집주인에게 8천 셰켈, 미화로 치면 2천 2백 달러에 상당하는 금액을 피해와 법정 소송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참고했다).

 

두 번째는 그보다 조금 더 최근의 일이다. 2021년 3월, 아마(亞麻, flax)를 사려고 하던 구매자 켄트 미클버러(Kent Mickleborough)는 크리스 액터(Chris Acther)라는 농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사우스 웨스트 터미널(South West Terminal)이라는, 자기가 일하는 기업이 86톤의 아마를 구입할 것이고, 이를 11월에 배달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썼다. 그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액터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송하고 “아마 계약서 승인 부탁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액터는 이에 대해 엄지 척 이모지(👍)로 답했다.

그런데 11월이 되어도 아마는 도착하지 않았다. 사우스 웨스트 터미널사(社)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액터를 고소했다. 액터는 자신이 살펴보고 서명을 할 수 있는 완전한 계약서가 팩스나 이메일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모지만으로는 계약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티모시 킨(Timothy Keene) 판사는 사우스 웨스트 터미널사의 손을 들어 줬다. 그는 “본 법정은 엄지 척 이모지가 서류를 ‘사인’하는 비(非)전통적인 수단이라고 인정하지만, 이 상황에서 이것은 ‘서명’의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유효한 방법이었다.”라고 썼다. 다시 말해, 액터가 보낸 엄지 척 이모지가 그 서류를 사인한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며, 따라서 액터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손해 배상으로 8만 2천 캐나다달러, 미화로 치면 9만 2천 520달러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다(이 사건에 대해 더 읽어 보고 싶은 분들은 이 기사를 참고하시라).

이젠 법정에서 이모지가 발화자들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을 인정받았으니 이모지를 의사소통의 한 가지 수단으로 봐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정말 신기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킨 판사 말대로, 법정이 기술의 물결과 일반적 사용을 막으려고 시도할 수 없고 그럴 수도 없을(”This Court cannot (nor should it) attempt to stem the tide of technology and common usage”) 것이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언어가 변화하고, 그 변화를 이젠 법정도 인정한다는 게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이모지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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