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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시몬 스톨조프, <워킹 데드 해방일지>

by Jaime Chung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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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시몬 스톨조프, <워킹 데드 해방일지>

 

 

‘퇴사 욕구와 인정 욕구 사이에서 좀비화한 요즘 직장인을 위한 일 철학’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지 말라’라 할 수 있겠다. 이거야말로 내가 늘 말하고자 했던 거다. 이 책의 제일 첫 페이지라 할 수 있는 저자 소개에는 저자의 이름보다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가 더 적게 일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 중심주의’라는 뜻의 신조어 ‘워키즘(workism)’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이 열정을 가진 일을 해야만 삶 또는 그 일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것이다.

이 생각에 늘 공감해 왔던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짚어내는 모든 요점에 모두 동그라미를 그려 주고 싶다. 이 책의 프롤로그 이후 첫 번째 장은 이런 소제목을 달고 있다. ”일은 일일 뿐이라는 진실에 대하여”. 그리고 이렇게 시작한다.

책의 원제목인 <그 정도면 괜찮은 직업(The Good Enough Job)은 ‘그 정도면 괜찮은 양육’의 개념에서 빌려왔다. 이것은 영국의 심리학자 겸 소아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이 1950년대 고안한 이론이다. 위니컷은 양육이 자꾸만 이상화되는 경향을 목격했다. ‘완벽한’ 부모일수록 아기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아기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만 하면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위니컷은 부모와 아이 둘 다에게 완벽함보다는 충분함의 방식이 더 이롭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부모와 달리 ‘그 정도면 괜찮은’ 부모는 아기를 도와주긴 하지만, 충분한 여지를 주어 아기가 스스로 안정을 찾는 법을 배우게 한다. 그 결과 아기는 회복력을 기르고 부모는 아이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이상화 경향이 직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그러니 삶의 동반자를 찾을 때와 같은 열정으로 직업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간략히 답하자면, 일이 늘 충만감을 안겨주리라는 기대가 오히려 고통을 불러올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일에 대한 ‘집착적인 열정’은 높은 비율로 번아웃과 일 관련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다른 연구에서는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기록적인 저출산 문제를 겪는 주된 원인으로서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활 방식을 꼽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는 비율이 심각하게 높아진 배경에는 직업적 성공에 대한 부풀려진 기대심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과로 관련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즉, 다시 말해 자신이 열정을 가진 일을 해야 삶이 충만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번아웃으로 개인을 몰아간다. 그러니 일을 낭만화하지 말고 일은 그냥 일로 보되, 일 이외에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 이외에 부모일 수 있고, 자녀일 수 있으며, 어떤 취미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일 수도 있고, 종교 단체의 일원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이 여럿일수록 일로 인한 압박감이라든지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퇴사를 하거나 해고를 당해도 그 충격은 일에만 매달리는, 오직 일로만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보다 훨씬 덜하다.

이를 위해 위니컷 박사의 지혜를 되짚어보자. 완벽함에 비해 ‘그 정도면 괜찮음’은 훨씬 너그러운 이상이다. 직업이 줄 수 있는 바를 낭만적으로만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이란 끝없는 고역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 정도면 괜찮음’은 충분함이 어떤 의미인지를 스스로 정하라는 권유다. 일이 여러분을 규정하게 하지 말고, 여러분과 일의 관계를 스스로 규정하라는 제안인 셈이다.

 

게다가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자면,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고용주들은 직원들을 쉽게 여기고, 이는 전반적인 노동권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들은 ‘뭐? 근무 환경이 너무 후지다고? 싫으면 나가, 너 말고도 이 일 하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섰으니까’ 하는 식으로 너무 쉽게 해고하고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 이래서는 근무 환경이라든지 임금 등의 개선이 일어나기 어렵다. 어떤 일이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이든 아니든 간에,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익은 보호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열정을 직업으로 직업으로 전환하기는 대다수에게 달성이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언론계의 경우, 입문 단계에서 인턴직과 연구직은 대체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그렇기에 입문 단계 일자리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젊은이에게로 간다. 이를테면 주택임대료를 지원해주는 부모를 둔 계층처럼 말이다. 열정을 따르기는 그랬을 때 생기는 내재적 위험을 감당할 특권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피터슨은 <요즘 애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대부분의 경우, 열정이 당신에게 안겨주는 것은 아주 적은 보수를 받겠다는 동의가 전부다.”
열정을 찾는 쪽은 노동자만이 아니다. 고용주도 열정적인 노동자를 찾고 있다. 체크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스타벅스부터 골드만삭스까지 고용주들은 갈수록 열정적인 피고용인들을 선별하고 있는데, 심지어 열정이 일을 잘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렇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종일 커피를 만드는 일이다.” 체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일할 때 열정을 실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커피 만들기라는 본업을 넘어선 추가적 노동을 요구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과로는 체계의 문화(경제적﹒정치적﹒문화적 요소들의 결과로 나타나는 문제)이므로 개인이 어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에서 벗어난 자아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보호할 책임은 걸핏하면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만다. “경계를 정하라”거나 “스스로 돌보기를 연습하라”와 같이 흔한 번아웃 방지 조언들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수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회사에 직원이 모자라거나 분기 말처럼 바쁜 시기이거나 급여가 노동 시간에 따라 정해진다면, 경계 정하기는 장식용 칵테일 우산으로 뜨거운 햇살을 가려보려는 시도와 비슷하다.
간단히 말해, 개인적 경계 정하기의 문제점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앤 헬렌 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건강한 직장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 개인의 책임이 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더 나은 문화를 만들 책임은 직장에 있다. 직장은 직원을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나름의 가드레일을 세워야 한다. 그건 특히 노동이라는 화물열차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데 광적으로 몰두하는 사회초년생 직원들에게 꼭 필요하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내가 무척 좋아하는 책인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도 이 책에서 종종 인용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밀레니엄 세대의 정신을 이 책보다 더 정확히 분석한 책은 없을 거다. 미국 밀레니엄 세대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히 이 저자가 나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느꼈다. 이 책을 좋아하신다면 <워킹 데드 해방일지>도 좋아하실 거다. 그 반대도 물론 가능하다. 덧붙여, 일뿐만 아니라 삶의 어떤 단계에서 번아웃을 느껴 보았거나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 삶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시는 분이라면 황선우 작가와 김혼비 작가가 번갈아가며 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도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을 듯하다. 이 책들 모두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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