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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정지섭, <맘카페라는 세계>

by Jaime Chung 202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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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정지섭, <맘카페라는 세계>

 

 

5년 넘게 맘카페의 운영진으로 활동해 오고 있는 저자가 자신이 본 ‘맘카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알라딘에서 알게 되자마자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밀리의 서재에서 서비스된다는 걸 알았을 때는 당장 다운로드 받았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에 대해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된다.

일단, 실제로 맘카페의 운영진인 여성이 자신의 언어로 맘카페의 낱낱을 살펴보는 글을 썼다는 점은 무척 고취적이다. 1부터 7부까지, 주제도 잘 나뉘어 있고, 맘카페의 정치성까지 다루었다는 점도 무척 높이 살 만하다. 또한 “오랜 세월 여성은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이는 여자가 순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제, 여성스러움의 덕목을 여성 자신이 내재화한 영향으로 볼 수도 있다.” 같은 문장들에서는 여성주의적 사고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중에 가장 전면적인 건, 아무래도 저자 본인이 ‘엄마’이고 맘카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많이 어울리기 때문인지, ‘모성’에 대해 꽤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실질적으로 ‘모성’ 또는 ‘모성애’란 개념에 대해 아주 깊이 고민해 본 것 같지 않다. ‘모성(애)’라는 게 아주 현대적인, 그러니까 18-19세기에 ‘발명’된 개념이라는 점은 저자가 모르는 건지… 아래 문단 같은 예시를 보면, 저자는 모성(애)라는 것이 발명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내 궁금증 하나: 그럼 아빠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나요?)

세상에서 맘카페라 하면 바로 떠올리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맘카페에는 선행의 사례도 많이 있다. 맘카페 이용자들은 이 공간을 익명으로 이용하지만, 유일하게 드러나는 이들의 정체성은 ‘엄마’이다. 그래서 맘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의 1순위 페르소나는 ‘엄마’로 장착한다.

엄마는 자고로 선하고 자애로워야 하는 존재이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대개 엄마로서 이웃과 사회에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하고 기본적으로 엄마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은 맘카페 구성원의 1차적인 페르소나는 모성이라는 성질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이 ‘모성’이란 지극히 한국스러운 것인데, 그는 모성이 ‘경쟁심’ 또는 ‘이기심’을 일부 포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음, 이런 ‘K-모성’이 경쟁적인 분위기의 한국 사회 고유의 것이란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뭐, 아주 동물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문명 사회의 인간들이잖아요… ‘적자생존’이 아니라 서로서로 도와서, 협력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 아닌가요?

또 거기에 유난히 경쟁적인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더해지면, 그런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모성’은 기본적으로 나와 내 자식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심을 전제로 깔고 있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은 사회적 경쟁의 분위기가 심해질수록 더욱더 불편함에 예민해지게 된다. 엄마들을 더욱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만드는 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우리 사회의 공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저자가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 혐오를 내재한 여성이냐 하면,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다. 분명히 여성주의적인 발언도 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집안일이나 육아 과정에서 부재하는 남성에 대한 질타나 비난 등은 본문에서 별로 크게 머리를 내밀지 않는다. 남성도 자녀 양육의 기쁨을 함께 느꼈으면 하고, 그러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꼭지도 분명 있는데, 그 부분을 빼고 나머지 부분에서 얼핏 드러나는 태도가, (육아나 살림하는) 남성의 부재에 대해 딱히 의문을 갖지 않는 듯하다. 특히 이런 부분 말이다.

이렇게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하는 일, 모성을 우선시하는 것은 여자들의 경제적인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이 되었다. 결국 출산과 육아는 여성들의 ‘생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선 출산과 육아라는 행동이 오직 경제적으로만 평가되고 있으며, 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갖는 진정 내면적인 가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남성 혼자의 외벌이로는 중산층의 가계 경제를 지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사례가 늘어나며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상은 단연 경제력을 갖춘 여성이 되었다.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거나, 아이를 키우면서도 병행할 수 있는 직종이거나, 아니면 처갓집이라도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재력을 갖춰주거나, 최소한 노후 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여성의 입장에선, 이제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거기다 경제력까지 갖춰야 한다. 다양한 역할 요구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그 가치의 혼돈과 과부하 속에서 지극히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바로 모성을 버리고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더 깔끔해지는 일이다. 다시 말해 현대 여성은 이제 더 이상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결론까지 도달한다.

현대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건 오버 같고, 내가 보기엔 남자들이 ‘제 몫의’ 집안일과 양육을 하지 않아서(집안일과 자녀 양육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길)가 아닐까. 아이는 가지고 싶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남자까지 뒤치다꺼리하느니 차라리 혼자 (사유리 씨처럼) 아이를 가진다면 또 모를까. 임신은 여자 혼자 하나요? 남자들이 그만큼 자기 몫을 안 하니까 ‘그렇게 힘든 걸 나 혼자 하느니 차라리 안 하고 말겠다’라는 식으로 비혼, 비출산을 다짐하는 게 아니었나.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선, 이제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거기다 경제력까지 갖춰야 한다. 다양한 역할 요구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잘 읽히지 않는다. 여성 혐오적인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불가능한 기준에 대한 비판은 어디 있는가. 현대에도 분명히 어머니가 되고 싶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여성은 많다. 다만, 그것과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대해 ‘예’라는 대답을 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여성들 또한 많은 것이다. 즉, 아이를 키울 때,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기대되는 높아진 사회적, 경제적 기준에 나는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고려했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맘충’이라는 멸칭에 대한 꼭지의 마무리 부분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결국 혐오는 누군가 먼저 내려놔야 끝난다. 나는 그렇게 ‘내려놓는 누군가’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엄마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개념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나 아닌 다른 엄마들의 태도를 ‘진상’으로 여기기 전에, 엄마들은 자신의 태도부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엄마들끼리 서로를 향해 혐오를 일삼는 일을 멈추어야 하고, 또 스스로를 무조건 약자라고 상정하면서 세상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이기에, 모성 또한 그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본질에 충실할 때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배우고 자란다. 그 또한 하나의 페르소나와 같은 것이었을지라도, 엄마에게 자애롭고 선량한 성질이 요구되었던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보고 배우는 모범이 바로 엄마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공존과 상생이란 가치를 지켜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사회에서 먼저 모범이 되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모성을 실현하며 엄마로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 사회에 만연한 ‘혐오’가 엄마들이 내려놓는다고 끝날 리도 만무한데, 엄마에 대한 이상화가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정작 엄마들, 즉 여성들이 내려놓아야 할 건 ‘엄마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이상적인 개념인데 말이다(시몬 스톨조프의 <워킹 데드 해방일지>에서 인용했듯, ‘그 정도면 괜찮은(good enough)’ 엄마 또는 양육의 개념이 훨씬 적절하다). 그런 이상화를 내려놓아야 여성들이 자유로워지고, 여성들이 자유로워져야 여성의 인권이 상승하며, 궁극적으로는 남녀 평등이 이루어질 테니 말이다. 저자가 표현하는 ‘엄마들이 혐오를 내려놓는다’라는 게 여성에게 강요되는 또 다른 희생이 아닐지 심히 저어된다.

 

이건 사족인데,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한 건 이거다.

맘카페에서 엄마들은 ○○엄마, △△맘보다 온전히 내 이름 석 자로 불려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맘카페에 독서나 운동, 영어공부와 같은 다양한 취미 모임도 많아졌고,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존감을 고양하려는 노력도 볼 수 있다. 이들 중에서는 이제 엄마는 ‘떼버리고 싶은 굴레’라고 고백하는 이도 많다. 엄마라는 정체성에 대한 글의 종류는 이제 그 역할에 대한 행복함보단 혼돈과 고민의 성격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왜 맘카페의 활동명을 ‘뫄뫄맘’이라고 짓는 건가요?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본인 정체성의 절반 이상이 그 아이의 ‘엄마’라는 데 옮겨가나요? 왜 여자들만 그렇고 남자들은 안 그렇죠? 아, 마지막은 딱히 몰라서 질문한 건 아니고요, 수사적 질문입니다. 어쨌거나, 아이 이름이나 별명인 게 분명한 ‘뫄뫄’에 ‘엄마’라는 뜻의 ‘맘(mom)’이라는 영어 단어를 붙여 자신의 닉네임을 짓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 싶달까… 나는 비혼주의에 애를 가질 생각은 전혀 해 본 적 없으니 정말 그렇게 될까 싶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주제는 무척 흥미로웠지만 저자 자신도 모성(애)에 대한 시각 자체가 편협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다 하겠다. 그래도 맘카페라는 공간에 글자 그대로 ‘빛을 비추어 풀이한(解明; 해명)’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맘카페를 마녀들의 소굴 정도로 보는 시각은 이제 없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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