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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by Jaime Chung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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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곧내’. 저자는 더욱더 심각해져 가는 환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2018년부터 옷을 사지 않기로 결정하고, 옷이 필요하다면 오직 중고 의류만 구입해 오고 있다. 이것은 그가 어떻게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에서 벗어났는지에 관한 에세이이자, 그리고 패션이 어떻게 지구와 노동자(특히 여성)들을 착취하는지에 관한 논픽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심지어 누군가는 ‘인생 영화’라고도 하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2006)를 나는 사실 별로 안 좋아했는데, 내가 애초에 패션이란 걸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를 비롯한 패션계 인물들이 못마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옷이 개인의 마음 및 태도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패션은 소비와 이윤(그리고 아래 인용문에는 없지만 굳이 사견을 덧붙이자면 평범한 일반인이 따라가기엔 불가능한 수준의 미적 기준) 등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패션이 정말로 이렇게까지 큰 산업이 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

소비가 있어 물건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소비가 존재한다. 어마어마한 주문량 자체가 곧 경쟁력이 된다. 온라인과 세계 각지의 매장에서 옷을 판매하는 패스트패션은 개인 사업자가 상상하기 어려운 막대한 물량을 공장에 의뢰한다. 옷을 만들 때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의류 생산 로봇 시스템 등으로 생산 과정을 자동화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이 직접 손으로 재봉틀에 넣고 바느질하는 섬세한 작업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에 의류 제조사가 모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옷을 만들기 위한 교육은 곧 비용으로 이어진다. 이런 비용은 옷을 한 벌 만들건 100벌을 만들건 동일하기 때문에 공장 입장에서는 같은 디자인의 옷을 많이 찍어낼수록 이윤율이 높아진다.

패스트패션 기업으로서도 생산량을 높일수록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장당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옷을 찍어낸다. 싼 가격 덕분에 잘 팔린다. 공급과 낮은 가격은 그렇게 서로 북 치고 장구 치며 환상의 호흡으로 패스트패션 앞에 탄탄대로를 깔아준다. 대규모 주문에 최적화된 생산방식에 나날이 적응하게 되면서 맞춤형 공장이 늘어난다. 소규모 개인 브랜드는 생산 · 발주량이 적어서 제품 가격을 패스트패션 업체만큼 낮출 수 없고, 패스트패션의 저럼한 가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과도 더욱 멀어지게 된다.

 

패션, 특히 패스트 패션이 지구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하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저렴한 옷은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값싸게 대충 만들어진 이 옷들은 소비자들의 변덕 때문에, 또는 낮은 질 때문에 쉽게 버려진다. 그럼 그 옷들은 다 어디로 갈까? 개발도상국으로 간다.

떠넘겨진 옷들은 어디로 가는지 케냐의 사례를 살펴보자. 케냐는 세계 5대 헌 옷 수입국 중 하나다.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기콤바시장에는 헌 옷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중 절반가량이 사용할 수 없거나 시장 가치가 없는 제품이다. ‘자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처리하기 어려운 쓰레기에 더 가깝다. 매일 약 150~200톤의 섬유폐기물(트럭 60~75대 분량)이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그린피스 캠페이너 비올라 볼케무트(Viola Wohlgemuth)는 기콤바시장에서 나이로비강까지 강둑을 따라 걷다가 문득 길 위에 쌓여 있는 섬유폐기물 위를 걷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수입’해간 옷들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것이다.

남미 대륙의 가장 왼쪽에 길게 붙어 있는 칠레도 상황이 비슷하다. 칠레는 ‘중고의류의 허브’라는 좋은 감투를 얻었다. 해마다 6만 톤가량의 옷이 들어온다. 버려진 옷을 건축 패널을 만들 때 단열재로 사용하거나 실이나 공책 등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의류폐기물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헌 옷 3만 9000톤가량이 사막에 방치된 채 버려지는데, 극빈층의 시민들이 자녀들과 함께 큰 가방을 메고 사막을 찾아와 그중에서 쓸 만한 옷을 다시 골라내 입거나 내다 판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펼쳐진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다. 강변에 대대로 살아온 소떼들은 이제 뼈만 남은 몰골로 옷 더미 위에 올라 여물 대신 옷을 잘근잘근 씹는다. 소들이 옷을 씹고 있는 곳 옆에서는 불이 나고 있다. 합성섬유가 햇빛에 장기간 노출돼 있다가 불이 붙은 것이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이 커져가는 ‘쓰레기 옷 산’을 감당하지 못한 주민들이 직접 불을 붙이기도 한다. 플라스틱 소각은 난연성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가장 유해한 방법으로 꼽힌다.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푸란, 납, 수은, 산성 가스 등의 독성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헌 옷 수거함의 초록빛 낭만과 달리, 대기와 수질, 토양에는 막대한 오염만이 남는다.

 

게다가 패션 산업 전체가 서로서로를 복제하며 만들어지는 것 정도는 이젠 비밀도 아니다 (창의성? 무슨 창의성?). 더 큰 비밀이자 경악할 만한 사실은, (명품이나 보세를 막론하고) 의류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극악할 만한 노동 환경이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8층짜리 라나플라자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최소 1138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다쳤다. 망고, 프라이마크, 베네통, 르봉마르셰, 월마트, 마탈란은 라나플라자 공장을 이용해 옷을 만들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르마니,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같은 명품 브랜드도 값싼 방글라데시 공장을 이용한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전날, 건물 벽 안쪽에는 금이 가고 물이 새기 시작했다. 건물 바깥쪽에서도 이미 곳곳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2층에 입점해 있던 은행 직원들은 붕괴 위험을 알아차린 뒤 모두 철수했고, 경찰은 건물을 비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붕괴 당일 아침에도 공장 앞은 어수선했다. 노동자들은 한눈에도 선명히 보이는 금을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에 건물 안으로 선뜻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하지만 공장장들과 건물주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동자들을 향해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대량선적 물량 마감이 닥쳤다! 빨리 일해야 하니 들어가!”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건 협박뿐이었다. “당장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 건물주 소헬 라나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장담하며 3000여 명의 노동자들을 재봉틀 앞에 앉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건물은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무너지기 5분 전 끊겨버린 전기는 명백한 전조였지만, 건물 관리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옥상에 설치된 발전기에 시동을 걸었다. 촉박한 납품 일정을 앞두고 미싱이 멈춘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육중한 발전기와 미싱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취약한 8층짜리 건물을 한순간에 폭삭 주저앉히기에 충분했다. 하루에 옷 1000여 벌을 만들어내던 의류 봉제 노동자들은 그렇게 건물 안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시급으로 고작 260원을 받고 있었다.

1990년 이후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와 건물 붕괴 ‘사고’만 23건에 이른다. 1750여 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은 장소만 바꾸어가며 놀랍도록 같은 모습으로 계속 반복돼왔다.

♦ 패션기업은 임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

♦ 많은 옷을 싸게 제작하기 위해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이 투입된다.(대부분 나이가 어린 여성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다.)

♦ 경비 절감의 이유로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공장에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사망한다.

♦ 공장주나 기업 관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 기업은 규제가 약하거나 임금이 저렴한 또 다른 나라로 이동해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유행과 소비 주기에 맞춰 저렴하게 팔 수밖에 없는 옷의 가격. 그 모든 공급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개발도상국 노동자다. 상대방의 가장 약한 살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맹수처럼 자본의 논리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모든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착취는 곧 이윤이 됐다. 갈수록 빨라지는 패스트패션의 유행 주기가 느려지지 않으면, 또 대량 판매의 주문량이 줄어들지 않으면, 착취는 어디선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희생자 대부분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패스트패션을 만드는 개발도상국 의류 노동자의 80퍼센트는 18~35세 여성이고, 이들은 주당 70~80시간 이상이나 일한다. 화장실에 가는 것은 물론 대화조차 금지당했다고 증언한 사례도 많다. 이 모든 탄압은 그저 제작비 감축이라는 명분하에 버젓이 허용됐다.

 

‘경제’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 소비를 장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자본주의, 물질주의 사회에서 그럼 우리는 어떡해야 좋을까?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현대인들의 우려에 대답이라도 하듯, 6장은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죽겠다는 게 아니라 옷만 안 산다는 건데요”. 어떤 이들은 ‘패스트 패션이 문제라면 친환경 의류를 구입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사실 친환경 또는 ‘에코 패션’이라는 것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페트병을 이용해 ‘친환경적인’ 옷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각종 공정과 탄소 배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티셔츠가 또 다시 한 계절 만에 버려진다면 결국 환경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페트병 소재도 일종의 합성섬유이기 때문에 소각하거나 매립할 때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오늘날에는 ‘친환경’이라는 명분만 내세운 채 옷을 계속 생산하고 판매하기보다 옷 생산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섬유폐기물이 37만 664톤이나 발생했다. 그중 재활용된 폐섬유류는 2만 1433톤으로, 고작 6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제히 매립되거나 소각됐다. 재활용 섬유를 만든다면 폐섬유를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버려지는 양을 줄이려는 공급 자체를 최우선적으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다시 깨달은 핵심은 옷을 사지 않는 것이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플라스틱 컵 대신 종이컵을 쓰는 것은 제로웨이스트가 아니다. 종이를 만들려면 나무를 소비해야 하고, 비닐이 섞인 재생지는 유해물질과 중금속이 남아 있을 때가 많다. 유리병에 든 음료를 마시는 것도 제로웨이스트가 아니다. 유리 역시 생산과 재활용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무게 때문에 유통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을 단순하게 다른 물질로 바꾸려는 시도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패스트패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폐페트병 티셔츠를 사는 것도, 빈티지숍 옷을 사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어딘가에 보낸다고 해서 그것이 고스란히 다른 자원으로 재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지 말자. 내 수중에 있는 물건을 되도록 여러 번 오랫동안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제로웨이스트다. 각각의 패션기업들이 자사에서 만든 옷, 그러니까 자신들이 만든 쓰레기를 수거해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로 제작하지 않은 한, 패스트패션에서 빈티지숍으로의 이전은 사실상 유통하는 회사만 달라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제작한 옷을 직접 수거해 옷의 순환고리를 내부적으로 돌릴 때, 비로소 문제 해결에 (조금)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다행히) 새 옷 소비를 자제하면서도 멋을 챙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일단 중고 의류를 구입하는 방법(기본적이다)부터, 부모님 옷장 살펴보기(유행은 돌아오게 마련이니까), 한눈에 보이게 옷 정리하기, 옷 관리 잘하기, 옷 교환하기, 캡슐 옷장 꾸리기, 옷 대여/패션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내 취향 찾기(정확히는 내가 무슨 옷 또는 스타일을 좋아하고 뭘 자주 입는지 등을 기록해서 자신의 옷장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등등. 개인적으로는 한눈에 보이기 옷 정리하기가 꽤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며칠 전에 압축팩으로 보관해 놓은 여름옷(호주는 이제 여름이다)을 꺼내면서 ‘아 맞다, 나한테 저 옷들이 있었지’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뭐 여름옷 입을 거 없나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렸는데 말이다. 분명히 입을 옷이 있는데 옷장이 크지 않아 그 옷들을 전부 다 한눈에 보이게 꾸리지를 못하니까 내가 이렇게 옷이 많이 있다는 걸 까먹게 된다. 눈에 보이면 분명히 입었을 옷인데. 그렇다면 해결책은 더 큰 옷장을 마련하는 것인가. 음… 그건 환경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쨌거나 결론은 우리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실제 사건 및 수치들을 바탕으로 설득하는 것, 구체적으로 어떻게 옷 소비를 줄일 것인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자 장점이다. 또 하나 장점을 꼽자면 책 마지막에 ‘제로 웨이스트 옷장 실천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 추천’이라는 꼭지가 있다는 것. 이 책에서 다루는 이슈들과 관련한 책들과 영화를 소개하는데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책 소개’가 반가울 것이다. 나도 이제 이제 더 이상 쓸모없이 기분 전환용으로 옷을 사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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