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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박정훈,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by Jaime Chung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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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박정훈,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여기에서 ‘나쁘다’는 선악의 개념이 아니라 무언가를 잘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번역을 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은 페미니스트’, ‘나아가는 중인 페미니스트’ 정도로 했으면 이해가 쉬웠을 텐데)’라고 칭하는 마당에, 왜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는가.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가져온 것 같은, 동명의 꼭지에서 이렇게 썼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남편’ ‘좋은 남자친구’의 역할을 하려는 남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라이프 스타일에서 페미니즘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도 종종 목격한다. 그러나 나는 남성들이 추구하는 성평등이 ‘사적인 실천’에 그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적인 실천에 그치는 성평등은 ‘이쯤이면 됐잖아’ 식의 현상 유지를 위한 방법으로 오용될 여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남성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남자들을 잘 알고, 그래서 더욱더 통렬하게 여성 혐오에 빠진 남자들을 비판한다. 내가 제일 공감한 대목 몇 가지만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남자들이 자기가 (아내 또는 여자 친구에게) ‘잡혀 산다’라고 말하는 걸 (심지어 농담조라 하더라도) 극혐한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 여성은 곧바로 ‘악처’ 또는 ‘악녀’가 되어 버리고, 남성 본인은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며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이 핍박받는 척하는 게 정말 핍박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잡혀 산다’는 말이 유머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남성의 젠더 권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잡혀 산다’는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극히 드물 것이다. 여성에게 ‘잡혀 산다’는 말은 사실상 억압과 굴종의 상태에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실제로 ‘잡혀 사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절대로 ‘잡혀 산다’고 동네방네에 말할 수가 없다. 그를 ‘잡고 있는’ 남성이 여성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스스로 ‘잡혀 산다’고 말하는 수천수만의 남자들이 실제로 잡혀 산다면 대체 어떻게 동네방네에 ‘나 잡혀 삽니다’라고 떠들 수 있단 말인가. 말 하나하나가 전부 아내나 여자친구에 대한 푸념이나 비난에 가까울 텐데 말이다. 그래서 ‘잡혀 산다’는 말에는 역설적으로 시혜적 태도, 즉 “우리가 져줘야, 잡혀 살아줘야 관계나 집안이 평안하니까~”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젠더 권력의 우위를 가진 남성의 여유를 상징하는 말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성인 한 사람으로서 왜 그런 존재로 자신을 설명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해보건대 자신은 ‘그냥 철없이 제멋대로 살 테니까 네가 뒤치다꺼리 (돌봄) 좀 계속해달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신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게으름이나 절제되지 않은 행동들에 대해 면죄부를 받고, 역으로 그런 행동을 돌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아내가 ‘내가 아들 두 명을 키운다’라거나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우쭈쭈’ 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내나 여자친구와 자신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굳이 여성에 비해서 자신을 부족하거나 의존적인 존재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철없다’ 같은 말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던 남성에 대한 돌봄을 내심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닐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들은 전략적으로 ‘약자 되기’를 선택하고 있다.
약자가 아닌 사람이 약자 행세를 하면, 상대방은 ‘가짜 강자’가 된다. 그런데 가짜 강자는 불리하다. 가짜 강자가 실질적인 힘이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설득하면, 상대방은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약자인 척하면서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척, 열심히한 척, 기죽은 척. 남성은 그렇게 약자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과시한다. 가부장의 권력을 교묘한 방식으로 지켜내는 셈이다.
남자들은 흔히 여자들이 잔소리가 많다고 투덜대고, 심지어 잔소리가 억압의 상징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제로 한 공간을 쓰거나, 함께 행동할 때의 기본적인 예의나 규칙을 누가 쉽게 어기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함부로 행동해도’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존재가 누구일지 생각해 보면, 잔소리로 고통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시각인지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교과서 등지에서 ‘유관순 누나’라는 호칭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어떠한 남자 위인이나 독립운동가에도 ‘형’이라는 호칭이 붙지 않는다. 윤봉길 의사도 사망 당시 겨우 25세였지만, 아무도 ‘윤봉길 형’ ‘윤봉길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규정지어질 필요가 없는, ‘보편형의 인간’인 남성이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가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비교적 눈에 띄는 점은 ‘어린 여성’이라는, 그의 성별과 나이다. 그 때문에 이승만 정부를 통해 3﹒1 운동의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는 ‘민족의 누이’ ‘독립운동의 꽃’이라는 성별화된 존재가 됐으며, “’곱고 여란’ 여학생을 일제가 참혹하게 고문해서 죽였다”라는 식의 희생자 서사가 더 강조되기도 했다.
’누나’라는 호칭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그가 온전한 역사의 주체로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한다. ‘누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가족(가부장제) 안에서의 남성이 그를 관계 속에서 호명할 때만 가능해진다. 이렇게 그는 남성의 시선에서 ‘영웅’이 아닌 ‘여성’으로, 또한 ‘사적인’ 존재로 대상화됐다. 남성으로 표상되는 국가와 가족이 그를 독립운동가라고 부르는 대신, ‘소녀’로 포박한 것이다.

 

하나만 더 공유한다면 이걸 꼽겠다. 남성의 성은 자연스러운 것, 당연하고 해결되어야 (분출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여성의 성은 그것이 남성들이 이용해 먹기 좋을 때에만 ‘성해방’이니 뭐니 하면서 받아들이는 게 아주 우습고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

한국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성욕’이 억압받는다는 느낌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러한 정서는 과거에는 공개적으로 ‘남자의 아랫도리 일은 불문율’이라는 말로 일컬어졌고, 2000년대 이후부터 남성들은 ‘성적 엄숙주의’를 깬다면서 섹스와 성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게 ‘쿨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이택광 교수는 ‘성해방’을 외쳤던 진보 남성의 성의식을 성해방과 사회해방을 동일시했던 ‘푸로이트적 좌파 담론’이라고 일컬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남성의 성욕은 매우 자연스럽고 긍정적이며 종종 ‘분출해줘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소위 ‘야동 문화’는 지상파에서도 공공연히 등장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동시에 남성들은 겉으로는 여성에게도 ‘성해방’을 허했다. 쿨하게 섹스하고, 성욕을 드러내면서, 포르노를 함께 보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성해방은 젠더에 의한 위계, 정조 관념,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당시 남성들이 말했던 ‘성해방’은 지극히 남성들만을 위한, 남성들의 그릇된 욕망과 그로 인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목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은 성인사이트에 대한 단속과 규제 등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고 ‘야동(여기서 야동은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에서 만든 성인물과 불법촬영물 등의 전부를 통칭)을 못 보면 어디서 성욕을 푸느냐’고 이야기해왔다. 심지어 야동이 성범죄를 줄인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야동을 보며 성욕을 해소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이고 공공연한 행위로 정착되어 갔다.

 

책 뒤로 갈수록 다소 ‘정치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행과 관련한 내용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오해 마시라, 대체적으로 이들을 (공개적으로) 추모하는 건 ‘2차 가해’, 즉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말은 없다. 아무리 같은 정치적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이라도 공개적으로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주의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나도 공감한다. 엄연히 피해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추모하면 안 됐나? 자기가 공인, 정치인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연히 그 권위를 이용해 가해자를 추모한 건… 솔직히 ‘피해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신경 안 쓰겠다’라고 말하는 거나 다를 바 없지 않나. 더 길게 이야기해 봤자 나만 분노에 가득 찰 것 같으니 더 길게 말하진 않겠지만, 어쨌거나 확실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안티-페미니즘을 외치는 이들, 특히 20-30대 남자들이여, 여자들 말을 안 들을 거면 같은 남자들 말이라도 들어라… 듣고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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