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리베카 리, <편집 만세>
작가가 글을 쓰고, 편집자가 이를 받아 교열을 보고, 각주를 달고, 색인을 만들고, 번역을 하고, 표지와 커버, 텍스트 디자인을 결정하고 인쇄해서 세상에 내놓은 후, 절판되기까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거의 모든 단계를 다룬 에세이이다. 저자는 무려 펭귄 출판사의 편집장.
나처럼 교열과 문법, 문장 부호, 철자까지 꼼꼼히 따져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린 트러스의 <먹고, 쏘고, 튄다> 이후로 이런 책을 계속 찾아 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가 그랬거든요. 변태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로 그런 거 너무 재밌다고요! 여러분이 ‘엔 대시(n dash; ‘-’ 이렇게 짧은 대시)’나 ‘엠 대시(m dash; ‘—’ 이렇게 긴 대시)’를 구분해서 쓰고, 말 줄임표(ellipsis, ‘…’)를 표시하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다면, 꼭 좀 이 글 아래에 댓글을, 또는 제 블로그 안부 게시판에 글을 남겨 주세요. 저는 문법과 편집의 원칙에 헌신하는 영혼을 만나기를 갈구합니다. 같이 덕 토크를 나누어 보아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인쇄물에 줄임표를 표시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이건 너무 절제된 표현 같은데, 나만 해도 이 주제를 가지고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몇 번이나 했는지 셀 수조차 없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각각의 점 사이에 줄 바꿈 없는 공백을 설정해 줄임표를 쓸 것인지(・・・), 아니면 공백을 생략하고 점들을 다닥다닥 붙여 쓸 것인지(…) 말이다. 많은 격렬한 논쟁이 그렇듯 이 논쟁 또한 별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하다. 사실 크게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중요하다. 나는 점들이 보기 좋게 균일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 줄임표를 보면 마음이 심히 불편해진다. 다른 방식은 너무… 짓눌린 느낌이 든다. 폐소공포증을 야기한다고나 할까. 생각이 저 멀리 사라지는 느낌을 내려면 줄임표 역시 좀 여유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반드시 공백이 없는 줄임표를 써야 한다면 일관되게 사용해야 한다. 최악은 동일 문서에 공백이 있는 줄임표와 없는 줄임표를 섞어 쓰는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인용문도 보여 드리고 싶다(아래 볼드체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참고로 나는 아래 보기 중에서 2번이 제일 상식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3번도 나쁘진 않지만 2번이 제일 상식적이지 않나요. ‘베니스의 상인’은 잘 알려진 작품이니까 <>라든지 ‘’, 또는 이탤릭체 등 어떤 표시 없이 사용해도 대부분 알아듣겠지만, 작품 제목이 생소하면 독자들이 이를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이건 확실히 <가디언>이 잘못했다. 참고로 제 블로그는 책이나 영화 제목은 <>(꺽쇠괄호)를 사용해 표기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탤릭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 영화, 예술 작품의 제목, 선박 이름을 부각하는 데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는 출판물이 너무 많다는 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디언》은 자체 편집 매뉴얼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책, 영화 등의 제목에는 정체를 사용한다. 유일한 예외는 《리뷰》와 《옵서버》인데, 이 두 매체에 한해서만 조지 버나드 쇼의 적절해 보이는 다음 조언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특별히 허용한다.
1.나는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있었다.
2.나는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있었다.
3.나는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있었다.
이 중 1번이 가장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만 써도 충분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잃어버린 개를 찾는 전단지나 철물점 카탈로그를 제외한 어떤 글도 발행하거나 쓰면 안 된다. 문학은 그런 사람이 건드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외국어 단어와 구에는 이탤릭체를 사용하되, 괄호 안에 정체로 번역을 넣도록 한다. 시와 학명에도 이탤릭체를 사용한다.
외국어 단어와 구에는 이탤릭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면서, 독자에게 제목이나 이름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하는 것은 만류하는 행태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두 곳은 다른 규칙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해서 자기들이 만든 규칙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꼴이라니. “일부 영국 신문, 특히 《가디언》은 제목에 이탤릭체 사용을 중단했는데, 내가 볼 때 이 결정은 독자들을 훨씬 힘들게만 할 뿐, 그 어떤 보상도 없다”는 트러스의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탤릭체는 독자를 돕기 위해,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위 두 인용문들을 보고도 마음에 별 동요가 일어나지 않거나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지 않아?’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이 책은 대체로 여러분께 지루하고 골치 아프게 느껴질 것이며, 편집자 및 교정교열자들은 쓸데없이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이들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습니다.
문장 부호에 관한 꼭지 중에서 내가 제일 크게 웃었던 부분은 이거다(역시나 볼드체 강조는 내가 했다). 테리 프래쳇 씨 너무하시네…
『나야 나, 마침표This is Me, Full Stop』에서 필립 코웰과 카즈 힐드브란드는 느낌표를 ‘문법계의 셀카’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이 21세기에 느낌표가 누리는 과도한 인기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또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그레천 매컬러는 이제 느낌표가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기보다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보디랭귀지, 어조, 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온라인 세계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소설가 테리 프래쳇은 “느낌표 다섯 개는 정신이 나갔다는 확실한 징조”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말을 듣고 온라인 세계에 범람하는 오늘날의 느낌표들을 보니 우리네 정신 상태가 과연 괜찮은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와 교정교열 전문가가 열심히 눈을 부릅뜨고 찾았겠지만, 그래도 오탈자 및 오류가 몇 개 발견됐다. 예를 들어, ‘여덟 개 중 여섯 개를 맞췄는데’라는 맥락에서는 ‘맞췄는데’가 아니라 ‘맞혔는데’가 옳다(네이버 사전 ’맞히다’ 항목 참고). ‘이런일러두기가’라고 띄어쓰기가 잘못된(’이런 일러두기가’가 되어야 옳다) 곳도 있었고, ‘활판 인쇄용 폰트는 (…) 얇게 디자인된 편이죠’라는 문장에서는 ‘얇게’가 아니라 ‘가늘게’가 적절하다(네이버 사전 ‘가늘다’ 항목 참고). 100%의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탈자 몇 개쯤이야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이걸 알아 두어야 다음 판에서는 고칠 수 있을 테니까.
오탈자 및 오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두 인용문도 역시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내 경험상 정말로 내가 작업한 책이 실제로 인쇄돼서 나오면 한동안 펼쳐보지 못하는 거 100% 실화… 만약에 봤다가 뒤늦게 오류나 오탈자가 보이면 접시에 코 박고 죽고 싶을까 봐… 🫣
“우리는 오류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오류를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지 너무 잘 알면서도, 그를 동정하는 동시에 비웃는다.” 이는 마틴 토슬랜드가 『스테로이드가 지구를 강타하다A Steroid Hit the Earth』 서문에서 한 말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쁘다. 보통 실수를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기획 편집자, 저자, 동료, 평론가, 마음씨 좋은 친구, 목소리 큰 인터넷 블로거, 화가 잔뜩 난 독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발견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나와 일해본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나는 내가 작업한 책의 가제본이 나오면 한동안 그것을 보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일단은 원고 더미 밑에 묵혀놓았다가 아무도 무언가를 지적하지 않으면 그제서야 가제본을 펼쳐 들여다보고는 한다.
‘킹 제임스 성서(King James Bible)’은 1611년에 출판된, 초기 현대 영어로 번역된 성서의 한 판본인데, 영어권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여겨진다. 이 대단한 판본에도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아래 강조도 내가 했다)! (이 점이 이 책을 번역 및 편집한 분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킹 제임스 성서에 실린 몇몇 오류는 너무 악명이 높아서 해당 인쇄본이 오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중 ‘사악한 성서Wicked Bible’가 널리 알려졌는데, 십계명에 not이 빠진 탓에 독자에게 간음을 저지르라고 말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식초 성서Vinegar Bible’에는 포도원vineyard 대신 식초vinegar 비유가 등장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인쇄업자의 성서Printers’ Bible’에는 ‘고관들Princes’ 대신 “인쇄업자들Printers이 부당하게 나를 핍박하오나”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한다.
책 읽기나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라면 이 책을 즐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 만드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도 권한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아무에게나 다 추천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 책은 아닌 듯. 하지만 저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잘 보았으니 OK입니다 👍 편집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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