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Boy Erased(보이 이레이즈드, 2018) - 지옥의 '동성애 교화소'에서 아들을 구해 낸 어머니의 사랑
감독: 조엘 에저튼(Joel Edgerton)
미국 아칸소(Arkansas) 주의 한 마을. 이곳에 한 평범한, 아니 어쩌면 완벽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족이 살고 있다.
아버지 마셜 이몬스(Marshall Eamons, 러셀 크로우 분)는 자동차 딜러이자 교회 목사이다.
어머니 낸시(Nancy Eamons, 니콜 키드먼 분)는 역시 남편 못지않게 독실한 가정주부이다.
이들의 아들 자레드(Jared Eamons, 루카스 헤지스 분)는 다소 숫기가 없긴 하지만 참한 청년이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어머니가 차린 아침을 묵묵히 먹는 가족. 무슨 큰일을 앞둔 듯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식사 후에는 어머니가 모는 차에 자레드가 탄다. 어머니와 아들이 차를 타고 간 곳은 청소년 센터같이 생긴 건물로, 'Love In Action('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랑'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다.
사이크스 목사(Victor Sykes, 조엘 에저튼 분)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기독교적인 신앙에 따라 '동성애 교화(conversion therapy)'를 목적으로 한다.
즉, '게이/레즈비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며 이런 동성애적 성향은 의학으로 병을 고칠 수 있듯이 고칠 수 있다'라는 믿음에 기초해, 기독교적 가르침으로 이들을 치유해 준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자레드는 자신이 이곳에서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동성애라는 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자레드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채 이 낯선 곳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왼쪽의 초점이 맞은 애가 우리의 주인공, 자레드이다(오른쪽 뒤에 약간 흐릿한 건 게리)
자레드의 어머니 낸시(왼쪽)와 아버지 마셜(오른쪽)
게이 및 레즈비언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크스 목사
트로이 시반을 보고 싶어 하실 분들을 위한 게리 짤!
이번에는 자비에 돌란을 보고 싶어 하실 분들을 위한 존(왼쪽 검은 바지) 짤! 오른쪽 면바지는 자레드이다.
자레드(왼쪽)가 교화 프로그램에 입단하기 전 모습. 대학생 때 룸메이트(오른쪽)와 달리기 중.
2016년에 출판된 개러드 콘리(Garrard Conley)의 회고록 <Boy Erased>를 영화로 극화한 작품이다.
조엘 에저튼이 이 회고록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조연(사이크스 목사)을 맡았으며, 감독까지 했다.
주연 및 조연 중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또는 뉴질랜드 출신이 셋이나 보이는데, 일단 주인공 자레드의 부모 역할을 한 두 남녀 배우가 호주인이다(니콜 키드먼은 출생지가 호주이고, 러셀 크로우는 따지고 보면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인들은 그를 호주인이라고 여긴다).
또한 호주 출신 가수 및 유명인인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이 교화 프로그램에 참석한 게이 소년 '게리(Gary)'로 분했다.
그리고 호주나 뉴질랜드 출신은 아니지만 놀라운 캐스트로는 자비에 돌란(Xavier Dolan)과 플리(Flea)를 꼽을 수 있겠다.
자비에 돌란은 존(Jon) 역을 맡았다. 이 캐릭터는 역시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게이 소년(아니, 청년에 더 가까운가?)으로, 정말 사심 없고 단순한 신체적 접촉(악수라든가 슬픈 사람을 위로해 줄 때 어깨를 톡톡 치는 것 같은 행위)조차 거부하고 자제하려 한다(그런 단순한 행위로도 '죄스러운' 생각의 유혹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인사를 할 때 악수 대신에 경례를 하는데, 이 때문에 군인 출신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리고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베이시스트인 플리가 이 교화 프로그램에서 스포츠를 가르치는 강사 '브랜든(Brandon)'으로 나온다.
굉장히 남성성을 강조하는 인물인데, 다소 작긴 해도 다부진 몸매와 온몸의 문신 때문에 그 역이 아주 잘 어울렸다. 연기도 잘하더라.
나는 영화 초반에 배우들 이름 나오는 거 보고 '플리?????' 하며 놀랐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플리가 이미 연기를 종종 했었다네.
<Baby Driver(베이비 드라이버, 2017)>에도 나왔다는데 내가 아직 그 영화를 안 봐서...^^; 나중에 보면서 플리를 찾아봐야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실제와 다르긴 하지만(실제 주인공 이름은 자레드가 아닌 개러드, 어머니 이름은 낸시가 아닌 마싸(Martha), 아버지 이름은 마셜이 아닌 허셜(Hershel)이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사건은 실화와 아주 비슷하다.
회고록의 저자 개러드 콘리는 19세에 이 동성애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사이비 과학적인 수단을 이용해 개인의 성적 지향성을 바꾸는 걸 목표로 했다.
일단 첫 2주 동안은 오리엔테이션처럼 입문 과정('The Source'라고 불렸다)을 거치고, 그다음에 소위 '치료사(therapist)'라는 사람와 일대일로 치료를 받는 식이었다(그는 이 과정을 관둘 때까지 '치료'를 6개월이나 받았다).
이 치료사라는 작자는 개러드에게 성적 환타지를 물어보고 그가 대답을 하면 "그거 역겹구나(That's disgusting)." 하며 "신께서는 그런 걸 좋아하시지 않는다(God doesn't love that)."라고 했단다.
뭐 이런 변태 같은... 그런 말을 할 거면 애초에 남의 성적 환타지를 꼬치꼬치 물어보는 게 더 역겹지 않나.
이 사이크스 목사라는 자는 본인도 '게이 출신(ex-gay)'이라며, 그렇지만 이 '동성애적 성향'이 다 나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영화 끝난 후에 자막이 뜨는 걸 보면, 그는 2007년인가에 이 'Love In Action' 과정을 그만뒀고, 지금은 자기 남편과 살고 있단다(!).
영화를 보면 교화 프로그램에 참석한 게이 소년들 중 하나인 캐머론(Cameron, 브리튼 시어 분)에게서 동성애적 성향을 몰아낸답시고 강의실에 관을 가져다 놓고(참고로 개신교에서는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관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등의 스턴트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성경책으로 애를 마구 때리며, 욕조로 데려가 그 안에 들어가게 하는(이는 세례를 연상시키는데, 역시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라는 의미다) 등의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개러드의 말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게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고. 캐머론 진짜 불쌍함ㅠㅠㅠㅠ
동성애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 11일 만에 개라드 콘리도 어머니에게 자신이 '정신적 고문'을 받았으며 자살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게이 및 레즈비언들에게 정신적 및 신체적 상처만 주고 효과는 전혀 없는 이런 프로그램이, 얼척 없게도, 또 엄청 비쌌다고 한다.
2004년 당시에 이 프로그램을 1주일 듣는 데 1,500달러나 낸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거 완전히 사기 아니냐ㅡㅡ
이 아래는 (영화 결말 포함) 스포일러가 난무할 예정이니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Boy Erased> 커버 사진이 나올 때까지 스크롤을 쭉 내려 주시라!
영화의 바탕이 된 회고록 <Boy Erased>의 저자 개러드 콘리
개러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자신이 남자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그는 19살 때 성폭행을 당했는데, 이 사실을 알릴까 두려워한 이 성폭행범이 개러드의 부모님에게 개러드를 아웃팅했다.
영화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남성 성폭행 장면에서 나는 정말 '내가 뭘 본 거지'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어쨌거나 개러드의 부모님은 그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위에서 말한) 동성애 교화 프로그램에 들어가든가, 아니면 가족의 인연을 끊고 앞으로 안 보고 살든가.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테네시(Tennessee) 주에 있는 'Love In Action'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개러드의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였는데, 영화에서는 마셜(=자레드 아버지)은 자레드처럼 게이인 소년을 교화 프로그램으로 보냈다는 다른 장로의 말을 듣고 자레드를 그곳에 보낸 것으로 나온다.
본인이 목사인데, 자기 아들이 게이라고 하면, 그리고 그런 게이 아들을 그냥 놔두면 교회 내에서 자기 체면과 입지가 뭐가 되겠나.
분명 그렇게 자기 안위를 걱정하는 면이 이 결정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그가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은 그 '치료사'라는 사람이 자기 앞에 빈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 생각하고 화를 내 보라고 시킨 때였다고 한다(이 역시 영화에 나온다).
그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이곳은 분명히 기독교 단체인데, 도대체 왜 내가 '치유'받기 위해 누군가를 증오한다고(hate) 말해야 한다는 거지? 그건 기독교 정신에 완전히 반대되는 짓이야." 하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바로 프로그램을 관두고, 자기 개인 소유물을 보관한 방(매일 학생들은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 같은 개인 소지품을 데스크에 맡겨 두어야 했다)으로 달려가서 휴대전화를 찾아 어머니에게 지금 당장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전화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바로 달려가 아들을 구출해 주었다. 아직도 개러드는 "어머니가 제 목숨을 구해 주셨어요"라고 말하며, 어머니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진짜 다행...
영화에서도 사이크스 목사가 자레드를 붙잡고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어머니 낸시가 와서 아들을 데려가려 할 때 목사는 이를 강하게 제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낸시가 "당신 무슨 자격으로 이래요? 여태껏 그걸 안 물어봤네." 하며 도대체 무슨 권리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 물으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낸시가 "그럴 줄 알았어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하며 폭풍같이 차를 몰고 멀어지자 목사는 무력하게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 이후에 뭔가 더 강력한 액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목사나 직원들이 자레드(=이들의 돈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격렬하게 저항을 한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자레드 측에서 '이런 사이비스럽고 인권을 무시하는 짓으로 돈을 번다는 이 부정한 기독교들을 폭로하겠어!' 할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낸시가 '아버지랑 이야기해 봤는데, (그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네. 하지만 나는 너를 절대 돌려보내지 않을 거다' 하고 모자가 감동적인 포옹을 하더니 정말 그다음에 바로 '4 Years Later'라는 자막이 뜨면서 4년을 타임 워프하더라.
4년이 지난 후의 자레드는 유명지에 동성애 교화 프로그램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고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뉴욕에서 살며 좋은 애인을 만나 동거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자레드의 글을 읽었지만, 아버지는 아내에게 그 글을 받고도 읽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가 걱정되어 고향 집을 찾아간 자레드는 아버지에게 '내가 게이라는 사실, 내가 당신 아들이라는 이 두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그걸 인정할 수 없으시면 그냥 앞으로 이야기하지 말고 살아요' 하고 제안한다.
그래도 목사 앞에서 아버지에게 분노하기를 거부했던 그 소년의 모습이 자레드에게 아직 남아 있어서,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 어머니를 초대할 건데 아버지도 오셔도 돼요' 하고 덧붙인다.
그러고 나서 다시 차를 몰며 떠나는 자레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사이비 목사의 행태를 고발하고 이에 공감하는 동성애자들의 목소리, 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 '~4년 후~' 자막 이후로 이야기가 굉장히 개인적으로 변한 것에 당황했다.
물론, 게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만, 나는 뭔가 더 공적이고 약간 정치적인 항의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달려와 자레드를 구출하고 정말 격앙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떠나는 게 이 영화에서 최고로 극적인 장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지점이었는데 이 이후로 딱히 '와, 이제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하고 기대되는 전개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너를 그런 곳으로 보내서 미안하다' 하고 사과받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나마 한) 폭로가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든지 그런 묘사도 없고 말이다.
나는 낸시 아주머니가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사용한 거대 기업과의 법적 분쟁을 일으켜 승소한 인물. 동명의 영화가 이 이야기를 담았다)'만큼은 아닐지라도 뭔가 더 멋진 액션을 더 해 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니, 배우가 니콜 키드먼인데? 당장 신문사에 가서 이 사실을 다 밝히고 기사를 써 달라고 요구해도 놀랍지 않은데?
아버지가 결국 개러드/자레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회고록/영화 제목이 'Boy Erased('지워진 소년')'가 된 거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다만, 그래도 클라이막스 이후 이야기가 급하강하는 게 내 기대에 못 미쳤다.
나만 자레드/낸시가 공동체적인 액션을 취할 거라고 기대한 건가? 하지만 나는 그 중요한 장면, 그러니까 낸시가 사이크스 목사에게 '당신 자격이 뭐요?' 하고 묻는 장면을 영화 트레일러에서 봤기에, '설마 트레일러에서 나온 장면이 끝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단 말이다! 정말 그게 영화의 최고 절정이자 긴장의 끝일 줄이야!
트레일러를 잘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트레일러 사기를 당했다고 해야 할지...
두 가지 버전의 <Boy Erased> 책 표지
한 집계에 따르면 약 7만 명의 미국인이 이러한 '동성애 교화'를 받았다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아직도 미국에는 이런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를 금지한 곳이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버몬트(Vermont), 캘리포니아(California), 뉴저지(New Jersey), 일리노이(Illinois), 오레곤(Oregon) 주, 그리고 워싱턴(Washington) D.C.가 전부다.
나머지 주는 아직도 이렇게 의학적 근거가 없는 믿음에 기반한 소위 '치료'를 허용하고 있다.
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이 사이비스러운 행위를 모두 금지해야 할 텐데 말이다.
타고난 모습 있는 그대로 (나 자신과)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진정한 종교인이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부모님의 사랑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아, 이 영화로 러셀 크로우와 니콜 키드먼이 오스카 후보에 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는 중이다.
개러드 콘리 본인과 영화의 기반이 된 실화 정보는 아래 사이트를 참고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 보셔도 좋다.
https://people.com/human-interest/boy-erased-gay-conversion-therapy-gerrard-con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