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Children Act(칠드런 액트, 2017) - 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준 여인을 사랑하게 된 소년
감독: 리차드 이어(Richard Eyre)
피오나 메이(Fiona Maye, 엠마 톰슨 분)는 59세의 판사이다. 그녀는 현재 샴쌍둥이에 대한 사건을 맡아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어느 날 밤, 남편 잭(Jack, 스탠리 투치 분)은 일에 매진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보고 싶다고.
충격에 빠진 피오나는 남편의 대담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한다. 그는 그렇지만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눈 게 언제인지 기억하느냐고. 피오나가 대답하지 못하자 잭은 우리는 더 이상 입맞춤조차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피오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남편이 나가 버리자 이 혼란 속에서 그저 판결문을 쓰는 데에 집중하기로 한다.
다음 날, 어제 쓴 판결문을 읽어 판결을 내린 후 피오나는 새로운 일을 맡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인 환자의 치료를 위해 급히 수혈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피오나는 부모와 병원 측 변호사의 주장을 귀담아 들은 후, 직접 병원으로 가서 우리가 말하는 '그 소년', 아담 헨리(Adam Henry, 핀 화이트헤드)를 만난 후 판결을 내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만남이 이 소년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일을 가져올지 모르는 채 병원으로 향하는데...
왼쪽이 피오나, 오른쪽이 남편 잭
피오나를 스토킹하다가 딱 걸린 아담(왼쪽)과 적당히 잘 타일러서 보내려는 피오나(오른쪽)
내가 엠마 톰슨을 좋아해서 한 짤 더 ㅎㅎㅎㅎ
법원에서 피오나를 기다리는 아담
얼마 전에 포스팅한,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동명 소설 <칠드런 액트>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2018/11/12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 2017)>에서도 그랬듯이 원작 소설의 저자 이언 매큐언이 영화 각본 작업도 맡았다.
(2018/08/22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On Chesil Beach(체실 비치에서, 2017) - 섹스 없는 사랑, 가능할까?)
<체실 비치에서>와 이 <칠드런 액트>를 비교하자면, 이번에는 그래도 저번처럼 작품 해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엉뚱한 걸 집어넣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다.
책과 영화의 자세한 비교는 아래 짤 이후부터 하겠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스크롤을 쭉쭉 내려서 <칠드런 액트> 원서와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 사진이 나온 이후부터 읽으시면 된다.
영화가 확실히 책보다 피오나와 아담 사이의 로맨스(라고 해 봐야 아담이 일방적으로 피오나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품는 거지만)에 더 집중한다.
피오나가 순회 재판을 갔을 때 거기까지 쫓아와서 그녀를 만나게 된 아담은 마침내 '마이 레이디(My Lady, 법원에서 여성 판사인 피오나를 이렇게 부르고, 아담도 그 말을 배워서 자기가 그녀를 이렇게 불러도 되느냐고 허락을 받았다)와 같이 살고 싶다' 하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솔직히 아담 역의 배우가 그 앞에서나 이 뒤에도 잘생겼다 느껴지지 않았는데, 딱 이 장면에서는 정말 잘생겨 보였다.
피오나의 판결로 수혈을 포함한 치료를 받게 되자 백혈병이 나았는데, 이제는 사랑의 열병에 걸리게 된 소년 같았다.
어쨌거나 피오나는 그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고, 법원 서기 나이절(Nigel Falling, 제이슨 왓킨스 분)을 불러 아담을 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아담은 택시를 타고 떠나기 전 그녀에게 키스한다.
사실 피오나는 그냥 서양에서 흔히 인사할 때 하듯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려는 거였는데, 딱 그 순간 아담이 고개를 돌려 입술이 맞닿은 것이다.
이때가 영화에서 제일 '하아' 소리 나오는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실망하거나 짜증 났을 때 하는 한숨 말고, 귀여운 거나 로맨틱한 거 보면 몰입해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하아' 하는 소리 말이다. 숨을 살짝 멈췄다가 (대리적) 만족감에 내뱉는 한숨.
이때까지도 아담은 정말 잘생겨 보이더라. 그렇지만 이후 아담은 다시 병자 꼴을 하게 된다...
연말 연주회(피오나가 내내 연습해 왔던) 장면은 영화가 얼마나 로맨스에 집중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원작 소설에서는 피오나가 이 연주회를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나중에 아담이 백혈병이 재발했으나 치료를 거부해 실질적인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울고, 다음 날 남편은 자세한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도 피오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피오나가 (본문의 표현대로)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다정한 그 소년이 지녔던 삶의 열정과 그의 죽음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은 끝이 난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아담의 입장을 조금 더 보여 준다. 순회 재판에서 키스를 시도했다가 까이고 난 후, 아담은 부모님과 예배당에 가기를 거부한다.
사실 나는 아담이 자신의 종교를 거부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영화가 아담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 놀랐다. 왜냐하면 책은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피오나를 따라다니는 듯, 피오나의 생각과 그녀의 행동만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어쩌다가 그녀에게 연심을 품게 되었는지 우리 독자들은 추측만 할 수 있지, 직접적인 묘사는 들을 수 없다.
그런데 영화는 (바탕이 된 책이 그러하듯) 피오나의 삶을 묘사해 오다가 딱 이때만, 피오나가 없는 아담의 삶을 한 조각 보여 준다.
나는 책이 아담의 입장을 보여 주지 않고 피오나만 보여 주었기 때문에 피오나가 이 소년의 애정의 대상이 되었음을 깨닫는 그 당혹감을 독자가 잘 느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가 피오나의 삶에 초점을 맞춰 오다가 여기에서 변칙적으로 아담이 종교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나이절이 '아담의 백혈병이 재발해 입원 중인데 치료를 거부 중이다'라고 쓰인 쪽지를 피오나의 연주회 때 들고 오게 만든다.
그래서 피오나는 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가 없게 되고, 같이 연주회를 준비한 변호사 마크 버너(Mark Berner, 안소니 캘프 분)와 미리 계획해 둔 앵콜곡이 아니라 자신이 아담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시인 예이츠(Yates)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곡)를 부르게 된다.
그 노래를 부른 후 피오나는 허둥지둥 연주회를 떠나 아담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아담은 치료를 거부한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밝히고 눈을 감는다.
이거야말로 영화가 둘의 로맨스(라고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아담이 일방적으로 연모한 것뿐)에 방점을 찍었다는, 아주 직접적인 증거이다.
다행히 이 이후 결말은 원작의 궤도로 돌아온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피오나는 남편에게 아담에 대해 이야기하며 운다. 다음 날, 잠에서 깼을 때 남편은 다정하게 '당신 잠 자는 거 보고 있었어' 하고 말한다. 모든 사연을 알게 되어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냐는 피오나의 질문에 그는 미소 짓는다.
피오나와 남편 잭이 아담의 장례식에 참가한 후 그들이 아주 작아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까지 그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다.
책에서는 피오나가 아담을 병실에서 처음 만날 때 '이 애가 정말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나' 살펴보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애의 대답과 상태에 맞춰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이 장면을 좀 집중해서 봤는데, 피오나가 아담의 상태를 꿰뚫어보려고 노력하는 면이 잘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그냥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이지, 피오나가 아담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엠마 톰슨 정도의 배우면 그 정도의 연기는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감독이 그런 식으로 연기 지시를 하지 않은 걸까? 감독은 이 장면에서 피오나의 그런 면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다.
이게 딱히 나쁜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사실 영화와 책은 완전히 다른 미디어(media)이기 때문에 묘사할 수 있는 대상과 그 묘사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책에서는 피오나가 샴쌍둥이를 분리해야 하느냐 또는 둘 다 죽게 놔두어야 하느냐 하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리고 내리고 나서도 자신이 그 결정으로 인해 얼마나 큰 책임감과 일종의 죄책감(한쪽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쪽을 죽게 했다는), 무력감을 느끼는지 그를 자세히 묘사한다.
소설에서는 이런 감정 묘사가 얼마나 길어지든 상관없다.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묘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하는지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런 속내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굳이 드러내게 하려면 첫 번째, 다른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직접 '언어화'하게 하거나, 아니면 두 번째, 등장인물 본인이 직접 내레이션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방법들은 잘못 썼다간 정말 영화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어떤 감정은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법인데, 그걸 굳이 관객들에게 보여 주려고 하다가는 너무 직접적이 되어 버려서 영화가 단번에 유치해질 수가 있다. 그래서 못 할 거 같으면 그냥 안 하는 게 낫다.
이 영화는 섣불리 그런 미묘한 감정, 깊은 내면(법의 효용성에 대한 고뇌 같은)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에 피오나가 순회 재판을 가서 대표 판사가 판사로서의 맹세를 하는 동안 그걸 뒤에서 바라보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피오나를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게 차라리 훨씬 깔끔하다. 원작을 읽은 사람은 피오나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이미 알 것이고, 안 읽어서 모른다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영화는 그런 깊은 고뇌보다는 로맨스에 조금 더 중점을 뒀으니까.
책에서는 아담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 한 편의 시가 쓰여 있는데, 이 시는 종교적 색채가 다분하다.
시에는 피오나를 가리키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예수께서 물 위에 서서 말씀하셨네. / '그 물고기는 사탄의 목소리였나니, 너는 대가를 치르리라. / 그 여자의 키스는 유다의 키스, 내 이름을 배반한 키스였으니'" 운운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는 이런 표현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담의 시를 전혀 보여 주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언급 정도가 나오긴 하지만.
아담은 그래도 여전히 "비슷한 판례를 다 읽어 봤는데, 이런 경우(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아동의 생명에 피해가 가는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냥 아동의 목숨을 살리는 쪽으로 판결을 내리고 말지, 직접 아동을 만나 보는 적은 없었다"며, 왜 굳이 자기를 만나 자기를 살린 거냐고 묻는다.
나도 왜 피오나가 굳이 이 판결을 내릴 때 아동을 만나 보겠다고 결심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남편의 바람 선언으로 이해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에서 잠시 숨을 돌릴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아담을 만나러 가는 짧은 시간이나마 이런 외출이 필요했다고 피오나가 생각하는 구절이 있다) 하고 그저 추측해 보기만 할 뿐. 아니면 워낙에 피오나가 어릴 적부터 병원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었고 병원을 꺼리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에 가 본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아담을 어떻게 꼬여 내서 그의 종교에서 떨어져 나오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은 명백하지만, 갑자기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살아나게 된 경험을 한 소년~청년은 많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담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깊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피오나가 아동을 보러 가야겠다 생각한 건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그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왼쪽이 <칠드런 액트> 원서 표지, 오른쪽이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
이 영화 리뷰 글의 부제를 뭘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은 영화의 시놉시스에 제일 가까운 현재의 것("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준 여인을 사랑하게 된 소년")으로 정했다.
사실 이는 소년, 즉 아담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 영화나 원작 소설의 시점을 생각하면 살짝 핀트가 빗나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나 소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 영화 전체 내용을 요약해 보여 주기에는 이게 제일 적절해 보여서 이걸로 정했다.
아래는 내가 고려했던 부제들이다.
- 내게 생명을 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아담의 시점이다)
- 우연이 가져온 사랑, 그러나 보답할 수 없는 그 감정(완전히 피오나의 시점이다)
- 원작의 고뇌는 덜고, 로맨스에 집중하다(이 영화를 소설과 비교해 설명했다)
- 과연, 엠마 톰슨의 인생작(주연 배우에 집중했다)
이 모두 각자 다른 포인트에 집중하지만 동시에 나름대로의 진실을 보여 주기에 하나를 고르기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감상 포인트가 있는 영화였다. 원작 소설을 읽고 가도 좋고, 영화를 본 후에 읽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