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Boy(보이, 2010) -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소년은 성장한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Taika Waititi)
영화는 주인공 소년의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이름은 '알라메인(Alamein, 제임스 롤스턴 분)'이지만 모두들 그냥 '보이(Boy)'라고 부른다.
보이에게는 동생 로키(Rocky, 테 아호 에케톤-휘투 분)가 있고, 현재 할머니와 켈리(Kelly, 쉐릴리 마틴 분)를 비롯한 조카 여러 명과 같이 살고 있다.
그의 우상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다. 그는 집에 그의 사진도 있고, 그의 춤도 따라 춘다.
그렇지만 마이클 잭슨 못지않은 우상이 또 있으니, 이는 바로 그의 아버지(타이카 와이티티 분)이다.
보이의 아버지 이름은 아들과 똑같이 '알라메인'이다. 그는 지금 교도소에 있는데, 보이는 아버지가 곧 자기를 보러 올 거라고 믿고 있다.
'교도소에 있는데 어떻게 널 보러 오냐?' 하는 뒷자리 킹이(Kingi, 마니헤라 란기우아이아 분)의 태클에 '아버지는 숟가락으로 땅을 파고 그 숟가락으로 교도관들을 제압했어' 하고 대답한다.
물론 킹이는 이 말을 믿지 않고, 둘은 싸우게 된다. 억울하게도 보이만 교장실로 불려간다.
벌로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보이에게 '네 아버지를 안다. 같은 학교를 다녔거든. 가능성(potential)'이 많은 사람이었지' 하더니 '가능성'이 무슨 뜻이냐는 보이의 질문에 대답도 안 하고 휭 퇴근해 버린다.
보이가 집에 와서 애완 염소 리프(Leaf)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반쯤 지어내서 이야기해 주던 중,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로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의 같은 무리인 것 같은 남자 둘과 같이 온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 즉 보이의 할머니가 어디 계시느냐 묻는다.
할머니는 장례식에 참석하러 도시로 가셨고,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우실 예정이라고 보이는 대답한다. 아버지는 그럼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한다.
보이는 벌써부터 아버지와 함께할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행복하다. 아버지가 할머니 댁으로 돌아온 진짜 목적도 모른 채...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보이
왼쪽에 초점이 약간 빗나간 소년은 동생 로키, 오른쪽 인생 2회차 같은 표정의 소년이 보이
내가 이미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뉴질랜드(New Zealand) 출신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2010년 작이다.
(그의 다른 영화 리뷰는 아래 포스트들을 참고하시라.
2018/07/30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Breaker Uppers(브레이커 어퍼스, 2018) - 대신 헤어져 드립니다
주인공 '보이' 역의 제임스 롤스턴은 사실 원래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을 예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촬영 일주일 전, 와이티티는 자신이 '보이' 역으로 고른 아역으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촬영 사흘 전, 세트장 주변에서 놀고 있던 '엑스트라' 역의 이 소년이 그의 눈에 띄였고 와이티티는 그에게 주인공 역을 맡긴다.
롤스턴은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후에 그는 와이티티 감독의 (위에도 언급한) <브레이커 어퍼스>에도 (참 해맑은 의뢰인 '조던(Jordan)' 역으로) 다시 출연하게 된다.
정말이지,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 원래 엑스트라 역할이었고 그냥 세트장 주변에서 놀고 있었을 뿐인데 덜컥 주연으로 캐스팅되다니 말이다.
물론 본인이 노력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기에 그다음에도 연기 인생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거겠지만, 애초에 운이 억세게 좋지 않았다면 첫 번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역시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보이는 아버지를 만나자 몹시 기뻐한다. 소년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너무나 멋지다.
아버지는 보이가 모르는 영화 <E.T.>도 네 번이나 보았고, 'Crazy Horses'라고 쓰인 멋진 재킷도 입고 있다(그게 아버지가 속한 갱의 이름이란다).
심지어 아버지가 모는 차도 멋져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서 아버지 뒤를 쫓아다닌다.
그렇지만 사실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온 건, 아버지가 땅에 묻어 두었던 큰돈을 다시 찾아서 떠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가 이곳저곳을 삽질하며 돈을 찾으려고 애쓸 때, 보이도 삽을 들고 그를 돕는다. 그 돈을 찾으면 아버지랑 자기랑 크고 멋진 차를 타고, 도시로 가서 살 거라고 상상하며.
보이의 동생 로키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이다. 이 아이는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으며, 그 힘이 너무 강력해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믿는다.
취미는 그림 그리기. 어머니 묘지에서 비석에 대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나오는데 이때부터 가슴 한켠이 아리더라.
아버지랑 보이, 로키가 바닷가에서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를 총이라고 상상하고 노는 장면도 있는데, 두 아들의 창의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아버지도 참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잘 논다. 이건 좀 귀여움ㅎㅎㅎ
대략 이러고 논다.
스포일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여기에 쓰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 하고, 아버지를 사랑해 마지 않는 두 소년 중 그래도 몇 살 더 많은(그래 봤자 11살이다) 보이가 먼저 현실을 깨닫고 철이 드는데 이게 이 영화의 주제인 것 같다.
이 포스트 부제처럼,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소년은 성장한다'.
그러고 나서는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자기 동생과 조카들을 돌보는 모습이 참 대견하면서도 불쌍했다.
나는 원래 '애어른'을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애들은 애답게 순진무구하게 아무 걱정 없이 놀아야 하는데, 너무 일찍 철이 들게 하는 현실을 보면 그저 먹먹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나름대로 해피 엔딩인 것 같으니 다행이다.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추상적으로 썼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소리가 나올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보시면 이해가 될 것이다.
영화 끝에 보이와 아버지를 비롯한 거의 모든 캐스트들이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뮤직 비디오풍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카(haka,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족의 전통 춤. 원래는 부족 간 전쟁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같은 춤을 추는데 진짜 귀엽고 재밌다.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포이 에(Poi E)'라는 곡이다. 1984년에 '파테아 마오리 클럽(Patea Māori Club)'이라는 그룹이 낸 유일한 히트곡인데, 가사는 마오리 족의 언어로 되어 있다.
이 영화가 뉴질랜드에서 크게 성공함에 따라 이 노래는 다시 인기를 얻어 2010년 5월에는 차트를 역주행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이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는, (위에서 말한 그) 보너스 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아 진짜 너무 귀여워서 엄마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ㅎㅎㅎㅎ
(아, 이 영상이 끝난 후 정말 영화의 맨 끝에, 모든 크레디트가 올라간 끝에, 보이의 애완 염소 '리프'가 잠깐 나온다. 그러니 끝까지 꼭 보시라.)
영화를 보는 내내 보이와 동생 로키가 참 귀엽고, 짠하고, 불쌍하고, 너무 대견해서 안아 주고 싶었다.
러닝 타임은 87분밖에 안 되지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볼 가치가 있는 소년의 성장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