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Mary Shelley, 2017)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과 관련된 외적 사건에만 집중하다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Haifaa Al-Mansour)
어머니의 무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열여섯 살의 소녀 메리(Mary Wollstoncraft Godwin, 엘르 패닝 분). 그녀는 비가 내릴 듯한 천둥 소리가 들리자 곧장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는 그녀의 의붓 자매 클레어(Claire Clairmont, 벨 파울리 분)가 집안일을 하며 메리에게 '어머니가 널 기다리고 계셨어' 하고 말해 준다.
이 어머니라는 것은, 메리의 친어머니이자 <여성의 권리(A Vindi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쓴 혁명적인 페미니스트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craft)가 아니라, 메리의 친아버지 고드윈 씨(William Godwin, 스티븐 딜레인 분)의 새 아내 메리 제인 클레어몬트(Mary Jane Clairmont, 조앤 프로갯 분)이다. 메리에게는 계모인 셈. 메리의 친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어쨌거나 메리의 계모는 메리의 문학적인 기질이나 감수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스코틀랜드에 여행을 가게 된 메리. 그녀는 고드윈 씨의 친구들의 방문을 받는데 이곳에서 21세의 젊은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che Shelley, 더글러스 부스 분)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얼마 후, 런던으로 돌아온 메리는 예기치 못하게 퍼시와 다시 만나게 되고(퍼시는 고드윈 씨의 제자가 되어 그녀의 집을 방문한 구실이 많았다) 그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도 없는 사이인 클레어와 외출해 시간을 보내던 메리는 퍼시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집으로 달려가는 메리.
왼쪽이 메리, 오른쪽이 메리의 의붓 자매인 클레어.
믿기 힘들겠지만 퍼시 (비시) 셸리임...
퍼시와 메리의 나름대로 행복한 한때.
믿기 힘들겠지만2222222 이게 바이런 경이다. 대충격. 내 마음속 바이런 경은 꽃미남이라고!
저 유명한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해 보자!' 장면. 맨 오른쪽 푸른 조끼를 입은 남자는 바이런 경의 주치의인 폴리도리 박사이다.
다들 잘 알고 있을, SF 소설의 시초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저자 메리 셸리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
영화 제목에 이미 <프랑켄슈타인>을 집어넣었지만, 그래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사랑해 마지않는 나는 이걸 다소 기대하고 봤지만, 사실 이 영화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온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녹색 얼굴에다가 관자놀이에 못 박힌 괴물은 전혀 안 나온다는 말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괴물 이름이 대중문화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이를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소설 속에는 그저 '괴물(monster)'이나 '생물(creature)', '동물(animal)' 정도로만 지칭되고, 이 괴물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럼, 너무나 유명하고 또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메리 셸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영화가 되었는지 살펴보자.
(당연한 이야기라 굳이 안 해도 되겠지만 혹시 몰라서 쓴다. 메리 셸리는 19세기 사람이다(1797–1851). 따라서 이 아래부터 인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영화에서 이것이 어떻게 잘 또는 잘못 묘사되었는지를 논하더라도 스포일러는 될 수 없다! 그러니 '스포일러 있음!'이라는 말을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이 부분을 스포일러 경고라고 생각하시라.)
나는 영화가 더 어둡고 암울할 거라 기대했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더라.
메리 셸리는 어머니가 자신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고, 또 자신의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사실 이 아이는 팔삭둥이였다) 죽은 사실 등으로 인해 그녀의 곁에는 늘 죽음의 이미지가 맴돌았다는 것이 그녀에 대한 내 인상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어두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말도 안 되게 가볍고 발랄한 건 아니다. 다만 '내 생각만큼' 암울하지 않았다는 거지.
여기에서 내가 이 영화에 만족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드러난다. '별로 정확한 거 같지 않은데?'
그래서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하고 좀 찾아봤다.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의 교수 앤 K. 멜러(Anne K. Mellor)는 이 영화가 '기회를 놓쳤다'고 평했다.
저자의 삶에 대한 해석이 정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나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https://www..com/news/truhollywoodreportere-story-mary-shelley-how-accurate-is-biopic-1116219)
메리 셸리가 이 시대에 공격적인 페미니스트였던 것처럼 영화에서는 묘사되는데, 글쎄... 나는 그녀가 어머니와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불안(anxiety)을 끌어안고 산 여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멜러 교수 말마따나, 페미니스트를 그리고 싶었다면 메리 셸리 대신에 그녀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 됐을 텐데.
메리 셸리는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이긴 하지만 딱히 페미니스트다운 면모는 못 봤는데(그렇다고 여성 혐오자라거나 명예 남성이라는 건 또 아니다. 그냥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흔히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요즘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적인 면에 초점을 둔 영화도 많으니까, 이렇게 해서 영화가 좀 더 잘 알려지고 메리 셸리가 주목을 받게 된다면 그건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전기 영화라면 역시 세부적인 사항을 정확하게, 기록된 대로 따라가는 게 맞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영화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데, 사실 메리 셸리는 런던에서 살다가 의붓 자매 클레어와 같이 바이런 경(Lord Byron, 영화에선 톰 스터리지 분) 무리가 있는 제네바 호수(Lake Geneva)로 갔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야, 우리 돌아가면서 무서운 얘기 하나씩 하고 제일 무서운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자' 하는 제안이 나왔고, 메리는 간밤에 꾼 귀신 이야기와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이런 경은 양성애자(bisexual)로 묘사된다. 뭐, 그의 삶을 연구한 학자들이 단순히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라는 틀로 그를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양성애자였을 수 있다고 하니 바이런 경이 대놓고 양성애자로 묘사된 것도 아주 크게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대놓고 퍼시에게 키스를 하지는 않았다. 바이런 경은 퍼시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었다.
이 외에도 멜러 교수는 '정식 전기를 살펴보면 다 알 수 있는 사건들'이 틀렸음을 지적한다(예를 들어 셸리의 첫 번째 아이는 합병증으로 2주 만에 사망했다).
영화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의 내용보다는 메리 셸리가 어떻게 <프랑켄슈타인>을 쓰게 되었는지에 집중한다(그래서 이 영화 리뷰 부제도 이렇게 붙였다).
나는 이 점이 제일 아쉬웠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 흥미로운 디테일이 참 많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의 1부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을 구해 준 선장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 꼬라지가(...) 되었는지는 대략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2부부터가 우리가 잘 익히 잘 아는, 인간이 감히 신이 된 것처럼 '인간'을 만들어 내고, 그 창조물을 유기한 후, '무책임하게 자기 창조물을 유기한' 결과 창조물의 미움과 원망을 사게 되어 파멸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1부에 맨 처음 등장하는 편지의 날짜와 1부 끝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편지 날짜를 잘 보시라. 각각 "Dec. 11th, 17—"와 "August 19, 17—"이라고 되어 있다.
12월 11월부터 8월 19월이라고 하면 대략 9개월 간이다. 9개월은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엥, 열 달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한국에서는 1달을 약 28일로 쳐서 임신 기간 약 280일을 10개월로 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같은 임신 기간 약 280일을 1달에 30일로 쳐서 9개월로 본다).
크으, 기가 막히지 않는가?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뜸들이는 이야기, 즉 1부가 시간상으로는 9개월에 걸쳐 진행된다니!
이 외에도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관계는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 또는 신(창조주)과 인간(창조물)의 관계와 같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소설 초판본에 메리 셸리는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을 인용해 넣은 것이다.
Did I request thee, Maker, from my clay
To mould Me man? Did I solicit thee
From darkness to promote me?
John Milton, Paradise Lost (X. 743–5)("창조주시여, 진흙으로 저를 빚어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그대에게 부탁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이끌어내어 달라고 제가 그대에게 간청이라도 했습니까?"
살면서 한 번쯤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내가 언제 엄마아빠보고 나 닿아 달랬어? 마음대로 낳아 놓고는!" 하고 화를 낼 때가 있는데, 밀턴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 놓고 신에게 이렇게 말하게 만들었다. 크으, 진짜 표현이 기가 막힌다.
여튼 이렇게 <프랑켄슈타인> 소설도 찾아보면 흥미로운 디테일이 참 많은데, 영화에서는 이 소설의 내용보다는 오히려 메리 셸리가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을 수도 있는 외적 사건(예를 들어 '판타즈마고리아(Phantasmagoria)'라고 하는 19세기의 '공포 쇼' 같은)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영화의 끝은 '이 소설(<프랑켄슈타인>)은 메리의 작품이 맞습니다!' 하고 저작권을 따지는 문제 해결로 끝나고. 그래서 되게 '응? 그래서? 그게 끝이라고?' 싶다.
그녀가 쓴 이 소설의 내용이 그녀의 인생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서 무척 아쉽다.
<프랑켄슈타인> 소설 하나만 들입다 파도 이야기는 충분할 텐데. 실제로 학자들이 여태껏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논문을 얼마나 써제꼈는데도 아직도 단물이 안 빠지지 않나.
조금 더 소설 내적인 면과 메리 셸리의 삶과 영감을 연결 지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그녀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시는 것이 나을 듯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의 BBC 다큐멘터리(약 1시간 4분)도 참고하시라.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만든 교육용 다큐도 내가 나중에 보려고 일단 링크해 둔다.
메리 셸리의 삶에 대해 간단하게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기사도 괜찮다.
https://newrepublic.com/article/101435/mary-shelley-frankenstein-godwin-bodleian-oxford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잘 모른다, 제목만 들어 봤다 하시는 분들을 위한 기초 특강:
http://mentalfloss.com/article/69171/10-monstrous-facts-about-frankenstein
이렇게 다양한 소스에서 메리 셸리의 삶에 대해 공부하면 굳이 이 영화를 안 봐도 될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덧붙이자면 첫째, 이 영화의 배우들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한 인물들의 이미지랑 별로 안 닮았다(특히나 바이런 경을 그렇게 flamboyant한 게이 스타일로 묘사한 게 너무 어이가 없음).
그리고 이건 영화 자체보다는 메리 셸리 본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16살 때 21살 남자를 만나 유부남인 걸 알고서도 계속 사귈 뿐 아니라 도망치기까지 했다는 게 너무나 놀랍다. 문학 하는 사람의 사고가 범속한 사람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린 게 참 이렇게까지 당돌할 수가...
셋째,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고 나서 남편인 퍼시와 친구인 바이런 경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고쳐라 하고 조언을 해 줬다고 한다. 이 '도움'의 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과연 메리가 이걸 혼자서 쓴 게 맞느냐 하는 의문도 있었는데 본문은 메리가 다 썼고, 다른 작가들의 조언도 어디까지나 간단한 도움에 그칠 정도로 크지 않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넷째, 까먹고 이야기 안 하고 넘어갈 뻔 했는데 영화에 '폴리도리(Polidori) 박사(극 중에서는 벤 하디 분)'를 빼먹지 않고 넣은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는 바이런 경의 주치의로, 바이런 경의 더러운 성격을 다 받아 내야만 했던 불쌍한 인물이다. 사실 바이런 경은 외모와 체중을 아주 중시했는데(이 당시 시인이란 락 스타처럼 인기가 많은 존재였다) 사실 어릴 적에는 통통한 편이었기에 더욱더 체중에 집착하게 되었다.
조금 살이 붙었다 싶으면(자기 손으로 손목을 감싸 보고 손목이 잘 안 감싸진다, 손가락 끝끼리 닿지 않는다 싶으면 살이 찐 것으로 판단했다) 폴리도리 박사를 닦달해서 지사제 같은 걸 처방하게 해서 먹었다. 그리고 술 외에 식사에는 손도 안 대는 이상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했다.
안 그래도 인기가 많아서 안하무인 격이던 바이런 경이 다이어트 때문에 성격이 더 날카로워지면 정말 어땠을지...
나중에 폴리도리는 '피를 빨아먹는, 안색이 창백한 한 귀족 남자'의(제목은 <뱀파이어(Vampyre)>)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이건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Dracula)> 이전에 이미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뱀파이어의 원형적인 특징을 그려냈다고 평가받는다.
영화에서도 이 <뱀파이어>라는 단편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ㅎㅅㅎ 배우도 내가 생각한 폴리도리처럼 되게 순둥순둥하고 심약하게 생김ㅋㅋㅋㅋ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내가 생각한 실제 인물과 (외적) 이미지가 어울린 유일한 캐스트.
- 사실 정확한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n Prometheus)>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