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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Happy Prince(더 해피 프린스, 2018) - 오스카 와일드, 그의 마지막 나날들

by Jaime Chung 2018.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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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Happy Prince(더 해피 프린스, 2018) - 오스카 와일드, 그의 마지막 나날들

 

 

 

감독: 루퍼트 에버릿(Rupert Everett)

 

1895년, 아일랜드(Ireland)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중대한 외설 행위(gross indecency) 혐의로 체포되었다.

와일드는 당시 알프레드 '보지' 더글라스(Lord Alfred 'Bosie' Douglas, 콜린 모건 분) 경과 연애 중이었는데, 이 사실을 '보지'의 아버지, 퀸즈베리의 후작(Marquess of Queensberry)인 더글라스 경이 알게 된 것이다.

더글라스 경은 와일드의 글에 나타난(그는 이때 이미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와 연극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등으로 유명했다) 외설적인 표현과 '보지'에게 쓴 편지 등을 모두 모아 그를 고소했고, 이에 와일드는 명예 훼손(libel)이라며 더글라스 경을 맞고소했다.

결국 와일드는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간수를 따라 교도소로 가는 길에(둘은 기차를 타고 갔다) 그는 플랫폼에서 그를 구경 나온 사람들이 그에게 뱉어 대는 침과 모욕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견뎌 내야 했다.

그런 2년이 흐르고, 그는 출소한다. 다행히 그를 아끼는 좋은 친구인 레지(Reggie Turner, 콜린 퍼스 분)와 그의 전 애인이기도 한 로비(Robbie Ross, 에드윈 토마스 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을 떠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알아본 호텔 직원에게도 싸늘한 대접을 받고, 길가에서 그를 대놓고 모욕하는 젊은이들 무리들에게 둘러싸이기도 한다.

게다가 부인 콘스탄스(Constance Lloyd, 에밀리 왓슨 분)는 변호사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내걸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두 아들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한다.

모욕과 가난함, 아들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쓰라린 와중에 그는 옛 애인 '보지'가 보고 싶다는 그리움에 휩싸이는데...

 

이렇게 신수가 훤했던 오스카 와일드가

 

감옥에서의 고생 끝에 이렇게 팍삭 늙었다...ㅠㅠ

 

와일드의 아내 콘스탄스

 

와일드가 잊지 못한 알프레드 '보지' 더글라스. 잘생기긴 했다.

 

와일드를 물심양면 도와주는 충실한 친구 레지 터너

 

옛 애인 로비(=로버트 로스)와 같이 해안을 걷는 와일드

 

우리에게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1997)>으로 잘 알려진 배우 루퍼트 에버릿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으며 감독까지 한 영화이다.

루퍼트 에버릿이 이 영화를 만들 생각만 10년을 했는데, 영화 만들기 전부터 친한 친구인 콜린 퍼스(아래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이 둘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와 에밀리 왓슨에게 '너희들에게도 한 자리 줄게' 하고 약속했단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를 만들 준비가 진행될 때 '아, 콜린 퍼스가 저랑 계약했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할 거예요' 하고 말해서 영화에 투자도 받고 다른 배우들도 영입했다고 ㅋㅋㅋㅋ

어쨌든 이 포스트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아일랜드의 자랑인 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3년 남짓의 시기를 다룬다.

흥미롭게도 루퍼트 에버릿은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 <이상적인 남편(An Ideal Husband)>을 영화로 옮긴 버전(1999년)에서 아서 고링 경(Lord Arthur Goring) 역을 맡았다. <임포턴스 오브 비잉 어니스트(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2002)>에서는 친구 콜린 퍼스와 함께 출연했다. 콜린은 잭(Jack) 역, 루퍼트 본인은 앨지(Algy) 역이었다.

위에 쓴 시놉시스 요약이 8줄인데, 그중 4줄은 영화 시작할 때 자막으로 간단하게 설명되는 내용이므로 진짜 내용은 그 아래 4줄(과 그 이후)이라 할 수 있겠다.

 

보통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면 날카로운 위트와 그의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만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 외에 사람들이 잘 몰랐던 면모까지 보여 준다.

영화는 (위에서 이야기한 자막 이후에) 그가 두 소년에게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소년들은 그의 환상 속에서는 옷도 깔끔하게 잘 차려입고 따뜻한 방,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는 도련님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와일드가 유럽 등지를 여행하다가 만난, 가난한 형제들이다. 꽃을 팔던 형을 와일드가 술을 사 주겠다 해서 같이 술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와일드가 술을 마시고 뻗어서 형이 자기 (초라한)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동생도 만나게 된 것이다.

와일드는 거지 소년들을 자기 친아들처럼 아껴서, 보고픈 친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행복한 왕자' 이야기를 이들에게 해 준다.

"세상은 무대이지만, 거기에서 펼쳐지는 극은 캐스팅이 형편없다(The world is a stage, but the play is baldy cast.)" 같은 위트를 날려 대던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면도 있었다니,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준 왕자 동상의 이야기 따위를 어떻게 통렬한 풍자극 또는 탐미주의적인 소설의 저자가 쓴 것인지, 아직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좀 얼떨떨하다.

 

그리고 나는 오스카 와일드가 그냥 어릴 적부터 게이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는 결혼도 했다!

콘스탄스 로이드(결혼 전 그녀의 성)는 똑똑하고 와일드와 말이 잘 통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와일드와의 사이에서 애도 둘 낳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와일드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니, 그는 젊을 적에는 여자들과도 시시덕거리고 연애도 곧잘 했다고.

사실 결혼 전에 플로렌스 발콤(Florence Balcombe)이라는 여인을 좋아했는데, 후에 그녀는 <드라큘라(Dracula)>를 쓴 브람 스토커(Bram Stoker)와 결혼하고, 와일드는 콘스탄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잘 해냈고 아이들도 잘 돌봐 줬단다. 결혼하고 나서 첫 몇 년 동안은 그의 말대로 '더 없이 행복했다(blissfully happy)'고.

그의 '게이성'이 발현된 것은 1886년, 또는 1887년에 첫 동성 애인인 로비 로스(위에 언급한 그 로비가 맞는다)를 만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호, 그건 몰랐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작자 지금 뭐 하는 거야?'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도 그럴 것이 (경제적) 도움은 레지와 로비에게 받으면서도 자기가 애초에 교도소에 가게 된 원인인 '보지'를 못 잊고 두 애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로비에게는 "'보지'가 그리워. 너는 날 사랑하지만, 걔가 날 사랑해 주는 방식으로는 사랑해 주지 못해." 이러고, 나중에 '보지'랑 만나 이런저런 꼴을 겪고(아래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둘 다 돈이 없어 힘들었다) 나서는 "네 사랑은 로비의 사랑과 같지 않아." 이런다.

어쩌라는 건지? 두 명 중에서 한 명만 골라라, 좀!

내가 와일드의 삶을 연구한 학자도 아니고, 그래서 이건 그냥 정말 선무당질에 불과하지만 이유를 대략 추측해 보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보지'를 처음 만났을 때 와일드는 38세, '보지'는 22세였다(무려 16살 차이!). 그리고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약간 '꽃미남' 과였다.

 

  

왼쪽 흑백 사진에서는 왼쪽 줄무늬 양복이 오스카 와일드, 오른쪽에 모자를 쓰고 새침하게 돌아 앉은 쪽이 '보지'이다. 오른쪽 누런 사진은 조금 나이 들었을 때의 '보지'.

 

이건 젊을 때의 더글라스 형제들. 왼쪽이 프랜시스 더글라스, 오른쪽이 알프레드 '보지' 더글라스이다.

 

영화에서도 '보지' 역 배우는 꽃미남스러운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몸매도 날씬하다. 로비와는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다.

로비가 '첫사랑'이긴 하지만 워낙에 탐미주의자였던 와일드가 '보지'의 얼굴에 반해서 그렇게 목을 맨 게 아닌가, 하는 게 내 추측이다.

아니면 말고!

 

어쨌거나 이런 '보지'와 와일드가 다시 만났을 때, 보지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누구랑 어울리고 다니는지 알게 되자 용돈을 탁 끊어 버렸다.

그래서 환락의 게이 파티(...)를 벌이고 남창과 놀다가도 돈을 낼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와일드의 아내가 죽었다. 로비는 와일드의 아내 콘스탄스와도 가까운 사이여서, 그녀의 법적 대리자가 되어 주기도 했는데 와일드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결국 '보지'와 와일드는 헤어지는데,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는 해도 싸우기는 했으나 그래도 서로 감정이 크게 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게좋게 헤어진 듯. 난 이게 더 놀랍다...

 

'보지'와 헤어져서(그와는 이탈리아에 있었다) 프랑스로 간 와일드는 그곳에서 아까 말한 그 거지 형제들을 만난다.

그리고 한 카페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 결과, 가까스로 로비가 지나가는 걸 붙잡을 수 있게 된다. 로비는 천사인지 보살인지, 자기에게 그렁 망발을 하고 떠나간 옛 애인을 다시 도와준다.

그에게 술도 사 주고, 우연히 '보지'를 다시 만나게 된 자리에도 나가고('보지'는 '미안하지만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거든!' 하며 자기는 와일드처럼 글도 안 쓰고 돈도 안 벌고 놀고 먹을 수 없다며 화를 벌컥 내고 나간다) 그를 부축해 그의 방에도 눕혀 준다.

심지어 로비는 의사도 불러서 와일드가 피를 흘린 쪽 귀에 수술도 하게 해 줬으나 그는 결국 감염으로 인한 수막염으로 사망한다. 이는 1900년, 그는 향년 46세였다.

다행히 로비가 친구 레지도 불렀고, 성직자도 불러 주었기에 와일드는 죽기 전에 고백 성사를 할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와일드의 장례식이다. 그곳에서 '보지'는 로비를 도발한다. 그는 "그(와일드)는 너를 사랑한 적 없어."라고 말하며 와일드의 옛 애인에게 침을 뱉는다.

결국 로비는 눈물을 흘리며 장례식을 떠난다. 이는 와일드의 사망 후에 이어진 이 둘의 분쟁을 나타내는 장면인 듯싶다.

 

영화는 와일드의 위트가 담긴 명언("나는 분수에 넘치게 죽어 가는 중이야(I'm dying beyond my means."))들도 적절히 인용한다.

루퍼트 에버릿은 이 영화에서 오스카 와일드를 더 닮아 보이기 위해 코와 턱에 보형물을 대서 분장을 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익숙하지만 정작 이 작가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또는 보고 나서도 그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라.

니콜라스 프랭클(Nicholas Frankle)이라는 학자가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연구해서 쓴 책(<Oscar Wilde: The Unrepentant Years>)과 로라 리(Laura Lee)라는 학자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산에 대해 쓴 책(<Oscar’s Ghost>)을 적절히 요약한 <가디언(The Guardian)>의 리뷰인데, 영화에 나오는 시기의 내용도 상당 부분 담고 있어서 참고가 된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7/nov/15/oscar-wilde-the-unrepentant-years-and-osscars-ghost-review-wilde-after-prison)

 

참고로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와 주드 로(Jude Law) 주연의 영화 <와일드(Wilde, 1997)>도 역시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다룬다.

둘 다 보고 나면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그의 작품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도 <와일드>를 보려고 스트리밍이 가능한 곳을 찾는 중이다. 아시는 분 있으면 저에게도 제보 부탁드립니다(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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