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Kenny(케니, 2006) - 이동식 화장실을 청소하는 현자

by Jaime Chung 2018. 11. 7.
반응형

[영화 감상/영화 추천] Kenny(케니, 2006) - 이동식 화장실을 청소하는 현자

 

 

감독: 클레이튼 제이콥슨(Clayton Jacobson)

 

영화는 케니(Kenny, 셰인 제이콥슨 분)가 사무실에서 의뢰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행사에서 알코올 또는 식사가 제공되는지 케니가 묻자, 상대방은 알코올이 제공되며 식사는 커리가 나온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케니는 그럼 평소보다 이동식 화장실(porta-loo)가 몇 대 더 필요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 케니는 이동식 화장실 대여업자인 '스플래시타운(Splashtown)'에서 일하고 있다.

카메라는 케니가 이 행사 저 축제 가리지 않고 이동식 화장실을 대여해 주고 더러운 화장실 청소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보러 찾아가는 모습, 이제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잔소리하는 아버지의 말을 묵묵히 듣는 모습 등을 쫓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케니에게서 비록 냄새 나는 곳에서 더러운 일을 해도 불평 한마디 않고 만족하며 사는 현자를 본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동식 화장실이 케니의 생계 수단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다 각본이 짜여진 일반 코미디 영화이다.

감독인 클레이튼 제이콥슨은 주연 셰인 제이콥슨의 형인데, 영화에서 케니의 형 '데이브(Dave)'로 잠깐 등장한다.

그리고 극 중 케니의 아버지도 실제 셰인 제이콥슨의 친아버지 로널드 제이콥슨(Ronald Jacobson)이며, 케니의 아들도 실제 그의 친아들 제시 제이콥슨(Jesse Jacobson)이 연기했다.

이건 뭐, <수퍼내추럴(Supernatural)>의 윈체스터(Winchester) 형제 뺨치는 '패밀리 비즈니스'다.

(셰인 제이콥슨은 <오드볼(Oddball, 2015)>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 소개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

2018/10/22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Oddball(오드볼, 2015) - 펭귄을 지켜 주는 개 '오드볼' 이야기)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옛말을 영화로 옮기면 딱 이 영화겠지 싶다.

케니는 남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배관공(plumber)'이라고 소개하지만, 그건 자신의 직업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게 그냥 단 한 번에 바로 사람들에게 자기 일을 이해시킬 수 있는 설명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 일이 부끄럽지도 않고, 남의 일을 부러워해 본 적도 없다. 이게 멋진 일이 아니니 남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하고 말한다.

일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형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그런 작업복 차림으로 오면 어떡하냐는 핀잔을 듣지만 케니는 그저 사람 좋게 '미안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러면 일 나가기 전에 잠을 몇 시간 못 자거든' 하며 사과한 후 주중에 연락할 테니 나중에 보자고 하고 그냥 그 자리를 뜰 뿐이다.

이혼한 아내도 자기에게 친절하지 않고, 아들(=아버지 입장에서는 손자)을 데리고 아버지(=케니 아들에게는 할아버지)를 뵈러 가도 또 거기서도 '네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런 민망한 일 좀 그만둘 수 없냐' 하는 잔소리를 듣는데도 어쩜 그렇게 케니는 일관적으로 착한지.

보다 보면 케니라는 인물을 동정하게 되는 동시에 존경하게 된다.

애초에 남들이 하고 싶어하기는커녕, 언급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인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않다니.

그는 회사를 운영하며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 무척 긴장하는 직원 달래 주랴, 일 안 하고 뻗대는 직원 관리하랴, 어쩔 수 없이 직원 해고하랴 바쁘지만 '그래도 우리 입장을 알아 주는 상사가 있으니 다행이지 않느냐' 하며 안도한다.

이건 진짜 인간의 수준이 아니다. 거의 성자다. 하지만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 법해서 더 놀랍고 마음도 찡하다.

 

이렇게 고생한 케니에게 한 동료가 미국 테네시(Tennessee) 주 내슈빌(Nashville)에서 열리는 엑스포(Expo)에 가 보라며 비행기표를 선물한다. 

그러고 나서 케니가 (난생처음으로 타 보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에서 열린 엑스포에 참여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부스를 보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장실 변기가 그렇게 다양할 수 있는지 나도 놀랐다(참고로 영화에는 케니가 일본에서 일하는 자기 친구가 보내 준 사진이라면서 비데 사진을 몇 장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온다. '비데가 한국에서는 흔한 건데 케니는 왜 그렇게 놀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2018년에도 호주에서는 비데가 절대 흔하지 않다. 공공장소 화장실에서는 물론이고 내 호주인 친구 중에서도 집에 비데가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 한국인들이 보기엔 이 사실이 더 놀라울 것이다).

이 엑스포는 '펌프차 운전자와 청소부 박람회(Pumpers and Cleaners Show)'라고도 불리는데, 실제로 존재한다!

요즘에는 이름을 바꿔서 '물, 폐수 설비, 처리 및 수송 박람회(Water & Wastewater Equipment, Treatment & Transport Show)'라고 불린단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아래 링크를 확인해 보시라.

(https://www.tsnn.com/events/water-wastewater-equipment-treatment-transport-show-2018-formerly-pumper-cleaner)

사실 이 엑스포 외에도 이 영화에 나오는 축제, 행사, 경주 등등은 전부 진짜다. 영화 찍는다고 꾸며낸 게 아니고 진짜 실재하는 곳에서 실제로 진행될 때 촬영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니 아직도 셰인 제이콥슨을 보고 '그 화장실 배관공!'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게 벌써 12년 전 영화이고 요즘 셰인 제이콥슨은 다른 영화 및 TV 광고(어제도 울워스(Woolworths, 호주의 대형 마트 브랜드) 광고에서 봤다)에 출연하는데 말이다.

 

이 영화를 재밌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동식 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라는 주인공 설정뿐만이 아니라 셰인 제이콥슨의 말솜씨이다(각본에 클레이튼과 셰인 제이콥슨 형제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는 화장지를 'poo ticket'이라 부르고, 자신의 어머니를 묘사하는 데 '냉장고에 머리가 달린 것 같은 몸매의 여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버지가 다정한 성격이 아니라 다소 무뚝뚝한 타입이라는 말은 '아버지의 감정 계좌에는 2센트밖에 없었다(He had only 2 cents in his emotional bank account)'라고 말하는데 진짜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표현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관객은 케니의 입담에 웃고, 케니의 직업 윤리 및 삶에 대한 태도에 감탄할 뿐 아니라, 케니가 난생처음 타 본 비행기에서 화장실을 고쳐 준 일로 스튜어디스랑 친해지는 등 의외로 낭만적인 사건도 일어나므로 이에 흥미를 가지고 둘이 잘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이거 의외로 꽤 귀여움ㅎㅎㅎ

 

이 작품은 호주에서 호평을 받았고 IMDB에서도 무려 7.3점을 받은 뛰어난 코미디 영화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것이 사실이다.

어느 정도로 낯선가 하면, 네이버 영화에도 아직 이 영화 정보가 없다! 셰인 제이콥슨의 필모그래피가 고작 <네 얼간이와 장례식(A Few Less Man, 2017)>, <오드볼(Oddball, 2015)>, 그리고 <드레스메이커(The Dressmaker, 2015)> 이 세 편밖에 없을 정도니까.

(<드레스메이커>는 리뷰를 쓴 적이 있다.

2018/06/04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추천] The Dressmaker(드레스메이커, 2015) - 화려한 패션과 그보다 더욱 눈부신 복수)

생각해 보니 셰인 아저씨가 나온 건 <That's Not My Dog!(2018)>도 봤구나.

그렇지만 이건 진짜 대놓고 코미디언들의 농담들을 얼기설기 영화라는 틀 안에 엮어 넣은 형태인 데다가 그 농담이라는 게 원래 문화적이고 언어적인 이해가 있어야만 웃을 수 있는 거라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이 0%라고 장담할 수 있다.

어떻게 이 영화를 DVD라든가 구글 플레이 등으로 접해서 보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워낙에 아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어디 가서 봤다고 말하기도 겸연쩍은 게 사실이다(그렇지만 보신 분이 있다면 댓글 달아 주세요. 우리끼리라도 한번 입을 털어 봅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 영화를 보신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사실 호주 내에서는 그다지 구하기 어렵지 않다. 구글 플레이에서도 팔고 나는 스탠(Stan.)으로 봤다) 한번 보시면 절대 후회하실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디 가서 '나 호주 영화 좀 봤네' 자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걸 제일 먼저 보시라. 코미디 중에선 이게 최고다.

게다가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강력 추천하는 영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