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Love Lies Bleeding(러브 라이즈 블리딩)>(2024)
⚠️ 아래 영화 후기는 <Love Lies Bleeding(러브 라이즈 블리딩)>(2024)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1989년, 뉴멕시코. 루(크리스틴 스튜어트 분)는 한 짐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루를 짝사랑하고 관심을 보이는 데이지(안나 바리쉬니코프 분)를 적당히 거절하는 것도 일 중 하나다. 거절하는 이유는 대체로 언니 베스(지나 말론 분)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베스의 남편 JJ(데이브 프랭코 분)은 손버릇이 아주 못돼서, 집안일도 별로 안 도와주는데 아내를 때리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클라호마 주 출신인 재키(케이티 오브라이언 분)가 이 동네에 도착한다. 라스 베가스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에 참여하러 가는 길이었던 재키는 이 동네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한다. 그리고 어쩌다 만난 JJ와 자고 사격장 내에 있는 식당에서 서빙하는 일자리를 얻는다. 다음 날, 재키는 짐에 갔다가 루를 만나고, 둘은 첫 만남에 곧장 잠자리까지 가게 되는데…
쇠질하는 여자들의 범죄 스릴러 로맨스라고 해야 할까. 근육질 여자들의 레즈비언 로맨스라니, 이건 귀하네요… 레즈비언 영화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영화다. 아마 그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결말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처음엔 벙쪄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일단 엔딩(까지에 이르는 줄거리)을 발설하자면 이렇다.
재키가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루는 재키에게 스테로이드를 주는데, 루마니아인지 어디인지에서 만든 거라 출처가 수상한 거였다. 이 약물을 주사로 맞게 된(처음엔 루가 권하지만 나중에는 자기가 알아서 주사로 놓음) 재키는 근육이 빨리 자라긴 하지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감정이 격해지면 근육이 헐크처럼 울룩불룩해지면서 정신을 놓는데, 베스가 JJ에게 가정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루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재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루의 차를 몰고 베스와 JJ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JJ를 발견하자마자 그를 때리다가 마침내 JJ를 죽이고 만다. 테이블에 어찌나 세게 내려쳤는지 아래턱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분노에 제정신을 잃어 사고를 쳤음을 깨달은 재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집 욕실에 앉아 있다가 재키를 찾으러 온 루에게 발견된다. 루는 재키가 저지른 짓을 보고 아연실색하지만 어쩌랴. 이미 JJ는 죽었다. 그래서 JJ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 밀어넣고 처리하러 가는 길에 데이지와 마주치고 만다. 적당히 말을 돌리고 그 자리를 벗어난 루는 JJ의 시신이 든 차를 통째로 태워서 골짜기에 던져 버린다. 이 골짜기로 말할 것 같으면, 루의 아버지이자 재키의 고용주 되는 루 시니어(에드 해리스 분)가 자기의 비밀(자세히는 안 나오지만 뭔가 마피아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인 듯)을 발설할 것 같은 자나 배신자들을 ‘처형’하는 곳이었다. 어쨌든 JJ가 사라졌으니 경찰들이 수사에 나선다. 루는 우리가 의심받을 수 있으니 숨죽이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재키는 이를 듣지 않고 보디빌딩 대회에 참여하러 라스 베가스로 간다. 대회 시작 전에 예의 그 약을 주사한 재키는 대회 도중 자신이 루를 게워 내는 환영을 보고(사실은 그냥 구토한 것), 이를 비웃던 다른 대회 출전자를 때려눕히려다가 바운서에게 저지되어 구치소에 간다. 구치소에서 재키는 루에게 전화하지만 그 전화를 받은 것은 데이지. 루는 JJ의 시신을 버리러 가는 길에 데이지에게 들킨 게 마음에 걸려서 데이지에게 입막음을 시키려고 그녀의 환심을 사려던 것이었는데, 재키는 루의 마음이 변해 데이지랑 잔 거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루 시니어가 나타나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문제는 다 처리될 거라고 하며 재키에게 목격자(즉, 데이지)를 살해하라고 한다. 재키는 정말로 데이지를 뒤쫓아가 그녀를 쏘지만, 운명의 장난인 듯 데이지 바로 뒤에 루가 있었다. 루를 보고 놀란 재키는 도망가고, 루는 데이지의 시신을 처리하려던 와중에 FBI의 방문을 받는다. 대충 모르는 척을 하고 그 자리는 모면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 루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재키를 돌려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저지른 모든 범죄를 낱낱이 FBI에게 밝힌다고 협박한다. 아버지는 그러라며 루를 도발. 루는 재키를 찾으러 아버지네 집에 가고, 손발이 묶여 있던 재키를 발견한다. 발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자 도망가는 재키에게 루는 진실을 모두 밝힌다. 루가 마음이 변해서 데이지랑 잔 게 아니었고 여전히 재키를 사랑한다고. 재키도 이를 이해하고 루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문제는 루가 재키에게 먼저 도망가라고 했는데, 루를 발견한 루 시니어가 루의 다리에 총을 쐈다는 것. 루가 자기는 이미 FBI에게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놨으니 곧 그들이 와서 아버지를 구속할 거라고 말한다. 루 시니어는 루가 방금 총을 맞은 곳에 손가락까지 집어넣어 휘저으면서 루를 괴롭힌다. 이 모습을 보고 분노한 재키는 예의 그 약의 힘으로 헐크로 변하고(비유적인 의미다), 엄청난 거인이 된다(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거대해진 재키가 루 시니어를 간단히 제압하는 동안 루는 그를 쏠까 고민하다가 경찰차 소리를 듣자 총을 거둔다. 마치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라는 자신의 말을 지키는 것처럼. 경찰들이 알아서 루 시니어를 데려가도록 놔두고 루와 재키는 도망친다. 마지막 장면은 이것이다.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는 사막, 끝없어 보이는 도로를 달리는 루. 재키는 옆에서 자고 있는데, 차 뒤에 던져 놓은, 몰래 처리하려던 데이지의 시신이 움직인다. 데이지가 아직 죽지 않았던 것. 잠시 고민하던 루는 데이지를 목을 졸라 죽이고 이제 진짜 숨을 거둔 데이지의 시신을 질질 끌어서 사막에 버린다. 재키가 평화롭게 차 안에서 자고 있는 사이에.
이게 영화 전체의 이야기인데,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무슨 결말이 이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5분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감독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 이야기는 폭력의 순환이라고 이해하는 게 맞는 듯하다. 영화가 시작할 때 루는 딱히 행복하거나 삶에서 잘나가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어도 적어도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담배도 끊으려고 노력했고(금연용 최면 테이프를 듣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재키를 만나 폭력에 휘말리면서 마침내 자기도 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전에는 재키가 죽인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만 했다면, 마지막에 데이지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이 그녀가 폭력에 발을 들였음을 보여 준다. 폭력은 절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물들인다.
아쉬운 건, 뭔가 이러이러한 느낌이다, 하고 추측이 되긴 하지만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게 있다는 점. 첫째, 그래서 루의 아버지의 정확히 뭐지? 마피아? 대충 범죄 집단의 리더격이라는 건 알겠는데 무슨 일을 했기에 딸인 루가 ‘처형’을 하듯 한 남자를 쏘아 죽여야 했는지 사연을 모르겠다. 둘째, 재키가 ’휴이’라는 이름의 남동생으로 추측되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마”라며 우는 장면이 있는데, 재키가 전화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엄마가 “너는 괴물이야, 다시 전화하지 마라”라며 전화를 끊는 장면이 있다. 도대체 재키가 오클라호마에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엄마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을까? 이렇게 궁금하게 만들기 있냐고요!
참고로 제목으로 쓰인 ‘love lies bleeding’은 아마란스라는 꽃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기사 출처). 아마란스의 꽃말은 ‘희망 없는 사랑’이라고. 또한 ‘Love Lies Bleeding’이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시도 있다(참고).
개인적으로는 일단 레즈비언 영화라는 점에서 참 보기 드문 영화를 봤다 싶고, 마지막 한 5분의 전개를 생각해도 역시 참 보기 드문 영화를 봤다 싶다.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하고, 여러 모로 신기한 영화… 아마존 프라임에서 이용 가능하니 관심이 간다면 한번 보시라.
※ 사족: 영화 제목을 그냥 음차하는 거 말고, 적당히 어울리는 제목을 지으면 안 되나. <러즈 라이즈 블리딩>이라니, 영어 제목 그대로 갖다 발음 나는 대로 쓰기만 할 거면 영화 배급사가 도대체 왜 있는 거지? 한국어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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