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Woman of the Hour(오늘의 여자 주인공)>(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Woman of the Hour(오늘의 여자 주인공)>(2024)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78년, ‘데이팅 쇼’라는 TV 쇼에 연쇄 살인범이 등장한다. 이 쇼는 한 여자 출연자가 파티션 뒤에 있는 세 명의 남자 출연자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대답을 들은 후 한 명을 고르게 되어 있다. 과연 여기에 숨어든 연쇄 살인범은 도대체 누구일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안나 켄드릭이 여주인공 셰릴 역을 맡으면서 이 영화로 감독 데뷔에도 성공했다. 위의 짧은 시놉시스에서 언급한 여자 출연자가 바로 셰릴이다. 셰릴은 배우가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왔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던 차에 일단 여기에 출연하면 사람들 눈에 ‘띌’ 기회가 될 거라는 에이전트의 말을 듣고 이 쇼에 출연하기로 한다. 셰릴이 고를 수 있는 남자 출연자 세 명 중 한 명이 바로 그 연쇄 살인범, 로드니 알칼라(다니엘 조바토 분)이다. 이 점을 언급하는 게 사실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영화가 시작할 때 이미 로드니가 이 쇼에 출연하기 전에 시도했던 범죄 당시의 장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그 연쇄 살인범이 누구인지 다 알고 시작하니까 이건 스포일러도 아니다(스포일러는 다음다음 문단에 있으니 참고하시라).
영화와 현실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실제 ‘데이팅 쇼’에서 알칼라는 남자 출연자 3번이 아니라 1번이었다는 것. 이건 뭐, 앞의 두 명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범인을 등장시켜야 더 극적으로 보이니까 이 정도 차이는 이해 가능하다. 또 다른 차이는, 여자 출연자가 남자 출연자를 고르면 둘이 받는 상품은 둘의 카르멜(인디애나 주에 있는 도시) 여행 비용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둘이 무료로 테니스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차이는 셰릴의 질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셰릴이 ‘어차피 나는 1회성 출연자이고, 진행자 에드(토니 헤일 분) 마음에 안 들어도 상관없잖아?’라며 정해진 질문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꽤 똑똑하고 페미니즘적이어서 이 영화가 더 주목을 받은 것 같다(물론 이 영화가 이런 면모를 보이는 건 이 장면만이 아니다. 이따 다시 언급할 예정). 하지만 실제 셰릴은 야하게 들릴 수 있는 말장난을 하면서 보통 이 쇼가 하던 대로 질문했다. 관객석에서 알칼라를 알아보고 쇼 관계자에게 알리려고 하던 로라(니콜렛 로빈슨 분)도 영화를 위해 창조된 인물이다. 켄드릭의 말에 의하면, 이는 알칼라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경찰 및 관계자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던 (그러나 그들의 무능력이나 무관심으로 인해 무시당한) 이들을 상징한다. 알칼라가 이 ‘데이팅 쇼’에 등장한 게 1979년인데 그는 이미 이 전에 두 여성에 대한 성폭행으로 (가석방되긴 했지만) 범죄 전과가 있었고, 성 범죄자로 등록돼 있었다. 그렇다면 ‘데이팅 쇼’ 제작진이 출연자들에 대해 배경 조사를 안 했거나, 했어도 이 정도 범죄 전과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제정신이냐 🤬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최고의 장면이자 제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3번 남자 출연자 알칼라를 선택하고 같이 한잔하러 갔다가 뭔가 쎄함을 감지한 셰릴은 전화 번호를 달라는 그의 말에 가짜 전화 번호를 적어 준다. 알칼라도 이를 눈치 챘는지, 바에서 나와 셰릴의 차가 주차돼 있는 스튜디오로 다시 걸어가는 길에 ‘전화 번호 혹시 다시 한번 말해 줄래?’라고 떡밥을 던진다. 과연 알칼라가 셰릴에게 해코지를 할 것인가? 셰릴은 그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https://www.tiktok.com/@netflix/video/7428646043069320494
영화 속 알칼라를 경찰에 잡히게 만든 건 에이미(어텀 베스트 분)라는 피해자인데, 이 등장인물은 실제로 알칼라에게서 탈출해 경찰에 신고한 모니크 호이트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결국 그녀의 신고로 알칼라는 꼬리가 잡혔고, 1979년 2월에 체포됐다. 문제는 재판을 기다리던 중에 보석으로 풀려났고, 이때 또 살인을 했다는 것. 1979년 7월 말에 12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게 마지막이었고, 종신형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가 2019년에 사형을 집행 중단하여 2021년에 자연사했다고. 이런 놈이 자연사라니. 교도소에서 수감자들끼리 폭력 사태 자주 일어나는 거 아니었나? 이런 놈들이 맞아 뒤졌어야 했는데.
어쨌거나 이 영화의 미덕은 위의 클립처럼 여성의 경험을 정말 리얼하게 잘 보여 준다는 것 외에도, 범인에게 이런저런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한 일이다. 어차피 범인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는 안 궁금하니까. 그런 게 오히려 범인에게 면벌부를 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게 정말 하나도 없어서 아주 깔끔하다. 감독이 여자인 덕분에 이런 점이 확실해서 좋았다. 안나 켄드릭은 이 영화로 얻은 수익을 모두 성폭력에 반대하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했다고 밝혔다(출처). 정말 멋지다! 여성주의 영화란 이런 거라고 보여 주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접근성도 좋아서 추천한다.
🐍 뱀발: 영화 제목을 적당히 번역해서 ‘오늘의 여자 주인공’이라고 한국 개봉명을 붙여 준 건 참 잘했다 싶다. <Love Lies Bleeding(러브 라이즈 블리딩)>(2024)처럼 음차하지 않고 한국어 제목을 지어 주니 듣기도, 부르기도 쉽고 좋잖아. 넷플릭스는 이런 데 좀 신경 쓰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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