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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My Old Ass(마이 올드 애스)>(2024)

by Jaime Chung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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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My Old Ass(마이 올드 애스)>(2024)

 

 

⚠️ 아래 영화 후기는 <My Old Ass(마이 올드 애스)>(2024)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엘리엇(메이지 스텔라 분)은 대학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 짧은 자유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18살 생일날, 엘리엇은 친구 로(케리스 브룩스)와 루디(매디 지글러 분)와 같이 환각 성분이 있는 ‘버섯’을 차로 끓여 마신다. 두 친구들이 취하고, 엘리엇도 곧 놀라운 일을 겪게 된다. 웬 검은 머리 여자가 자기 옆에 앉아 있는데, 이야기해 보니 자기가 엘리엇의 나이 든 (무려 39살!) ‘미래의 엘리엇(오브리 플라자 분)’이라는 것이다. ‘미래의 엘리엇’은 현재 자기가 대학원생이며, 18살 엘리엇의 질문처럼 “행복”하지는 않지만 삶은 그처럼 단순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18살 엘리엇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는데, 그중 하나는 채드라는 남자애를 반드시 피하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환각에 빠진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엘리엇은 놀라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39살 ‘미래의 엘리엇’이 자기 전화 번호를 18살 엘리엇의 핸드폰에 남겼고, 둘은 이를 통해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웃에 진짜 채드라는 이름의 남자애(퍼시 하인즈 화이트 분)가 있다는 것. 심지어 그 애는, ‘미래의 엘리엇’ 말대로 피하려고 해도 계속 엘리엇에게 관심을 보이고, 생각보다 꽤 매력적이다. 18살 엘리엇은 과연 39살 엘리엇의 조언을 따르고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이 영화를 고른 건 첫째, 내가 좋아하는 오브리 플라자가 나오기 때문이고 둘째, 의외로 IMDB에서 평점이 높기(2024년 11월 중순 시점에서 7.0점) 때문이다. 그런데 음, 오브리 플라자는 괜찮았지만 영화는 그냥 그랬다. 사실 오브리 플라자가 더욱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초점이 39살 ‘미래의 엘리엇’이 아니라 현재 18살 엘리엇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만큼 오브리 플라자의 매력이 안 드러났다고 해야 하나. 18살 엘리엇이 별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첫 번째, 반전부터 까놓고 말하자면, 39살 엘리엇이 18살 엘리엇에게 채드라는 남자애를 피하라고 한 건 걔가 뭐 딱히 나쁜 일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엘리엇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떠난 것도 아니고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걔는, 39살 엘리엇의 말에 의하면, 엘리엇이 그와 사랑에 빠진 이후 죽는다. 아마 사고나 병에 걸리는 등,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모양이다. 39살 엘리엇도 노력해 봤단다. 하지만 채드의 죽음을 피할 방법은 없다. 이것까지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고, 나는 거기에는 별 불만이 없다. 근데 18살 엘리엇이 39살 엘리엇에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비밀을 알게 된 영화 극후반까지 “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하면서, 사랑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는 건 못 봐주겠다. 야, 18살짜리 너는 아직 그 경험을 안 해 봤지만 39살짜리 엘리엇은 이미 해 봤다니까? 정말로 사랑한 첫 남자(이에 대해서 잠시 후 더 이야기하겠다)를 죽음으로 떠나 보냈는데, 그 충격과 고통이 웬만하겠냐? 물론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지만 그건 말이 쉽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데! 스트레스 전문가 홈즈가 고안한 ‘스트레스 척도’에 따르면 (참고) 배우자의 죽음이 최고로 높은 100점이고, 채드의 죽음을 ‘정든 친구의 죽음’으로 봐도 50점이다. 18살 엘리엇이 겪어 봤을 만한 항목은 이보다 점수가 현저히 낮은데, 예컨대 '입학 시험, 취직 실패'는 37점이고 ‘개학, 종각/입학, 졸업’은 26점이다. 그건 아직 네가 경험해 본 것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큰 일이라니까? 아직 경험해 보지도 않은 게 어디서 그걸 경험한 사람에게 “그래도 겁을 내고 사랑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잖아” 어쩌고저쩌고 훈계질이냐! 게다가 39살 엘리엇은 대학원생이라고! 대학원생 학대를 멈춰 주세요 흑흑…

 

두 번째 이유는 조금 더 진지하다. 엘리엇은 채드를 만나기 전까지 첼시(알렉산드리아 리베라 분)라는 여자애와 썸을 타고 있었다. 중 2 때부터 엘리엇이 썸을 타고 있었다고 하는 여자애다. 그렇다, 엘리엇은 (중성적인 이름에서 감을 잡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레즈비언이었다. 내가 적당히 에둘러 말하느라 썸을 탄다고 했는데 사실 엘리엇은 첼시를 열심히 꾀어서 키스도 하고 하룻밤도 보낸다. 영화 후반에 나오는, 엘리엇이 중딩 때 가지고 있었던 비밀스러운 환상은 저스틴 비버의 “One Less Lonely Girl”을 자기 애인(이 환상 속에서는 채드)에게 불러 주는 거였다. 이해가 되시나? 엘리엇의 환상은 자기가 저스틴 비버가 자기에게 이 노래를 불러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그만큼 ‘멋진’ ‘남성성’(표현이 좀 부적절한 것 같긴 하지만. 여튼 박력 있고 대담하고 뭐 그런 거.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 가진 게 아니고, 부치 여자들도 가질 수 있는 그러한 자질)을 가진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니까! 그런 진성 레즈비언이, 채드라는 ‘남자애’한테 사랑에 빠져서 내가 바이인가, 팬섹슈얼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데, 하… 차라리 ‘남미새'였던 여자애가 한 여자애랑 사랑에 빠져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이렇게 되는 이야기라면 모를까, 진성 레즈비언이 남자애를 만나 사랑에 빠져 바이가 되었습니다? 이 플롯은 어째 입맛이 쓰고 레즈비언들 입장에서 불쾌하게 여겨질 구석이 있다. 엘리엇은 이제 18살이고,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애가 남자애랑 사랑에 빠져서 진짜 사랑의 슬픔(상대의 죽음만큼 진짜 슬프고 ‘진지해’ 보이는 게 어디 있겠나?)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레즈비언을 이성애로 ‘교정’해 ‘정상성’을 회복시킨다는 의미로도 읽힐 우려가 있다. 그 전까지 여자들과의 연애는 장난이었고? 그게 너무 께름칙한 거다.

레즈비언 여자가 이성애자 남자랑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이미 케빈 스미스 감독의 <Chasing Amy(체이싱 에이미)>(1997)에서 했잖아! 게다가 그 영화는 그렇게 자기 자신의 오랜 신념에 반해 자신이 ‘바이섹슈얼'이 됐구나 생각하고 자기 삶의 스타일을 전부 바꿨는데 그 상대라는 남자 새끼가 알고 보니 정신적으로 게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폭로함으로써 반전도 주고 깨달음도 준다. 이거야말로 섹슈얼리티에 대해 비비 꼬는 이야기이자 정확하게 ‘(최소한 가부장제하의) 남자는 여자는 사랑 안 해, 오직 남자만 사랑해’라는 현실을 꼬집는 풍자지! 이 영화보다 뭐 더 새롭거나 확실하게 재미가 있다고 굳이 이런 설정을 또 써 먹지? 21살이나 차이 나는 어린애가 치기로 훈계질하는 모습은 귀엽게 봐줄 수도 있지만, 남의 성적 기호를 ‘진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건 귀엽게 봐 주기 어렵다. 이걸 꼭 레즈비언 여자애가 남자애랑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로 만들어야 했을까? 이성애자인 줄 알았던 여자애가 여자랑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만들면 이유 1번은 그대로 유지될지언정, 이유 2번은 싹 사라질 텐데. 이쪽이 오히려 자기 발견이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삶과 사랑을 직면할 용기 같은 주제와 더 잘 어울린다. 자기가 레즈비언인 걸 알게 되었고, 자기의 소중한 연인이 죽은 이후 삶에 찌든 어른으로 살던 39살 엘리엇이 18살 어리던 자기가 사람들, 세상들 눈도 신경 안 쓰고 동성 연인을 사랑하던 모습을 보고 다시 사랑을 믿고 다시 사랑할 용기를 낸다? 이게 더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30년 이상 살아온 이성애자 여자로서 단언하건대, 내 인생을 뒤바꾸어 줄 그런 대단한 남자는 없고, 진짜로 내 인생을 뒤바꾸려 든다면 오히려 위험하니까 피해야 하며, 무엇보다 내 인생을 뒤바꿀 가치가 있는 남자는 절대 없다. 여자들이 가부장제를 박살 내고 진짜로 남자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기 전까지 이런 줄거리는 쓰지 맙시다. 오케이?

 

아마존 프라임에서 본 거라 내가 가욋돈을 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내 돈 주고 사서 봤으면 욕할 뻔했다. 영화 자체가 쓰레기라기보다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가 묘하게 신경을 건드린달까. 오브리 플라자가 아니었으면 안 봤을 수도 있는데, 쳇,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기용해서 나를 유혹하다니.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겠어! 이 각본가이자 감독은 다음부터 자기 이야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 수도 있는지 조금 더 고려하고 써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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