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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레일웨이 맨(The Railway Man, 2013) - PTSD를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을 고문한 이를 용서하는 일이었다

by Jaime Chung 2018.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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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레일웨이 맨(The Railway Man, 2013) - PTSD를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을 고문한 이를 용서하는 일이었다

 

 

 

감독: 조나단 텝리츠키(Jonathan Teplitzky)

 

1980년대 영국, 참전 용사들을 위한 향우회에 나와 오래된 기차 시간표만 읽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에릭 로맥스(Eric Lomax, 콜린 퍼스 분).

그는 어느 날 기차를 탔다가 한 여인의 반대편 자리(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 자리였다)에 앉게 된다. 차장이 그에게 기차표를 요구해 내어주자 '기차를 잘못 타셨다'고 한다.

그는 원래 타려던 기차가 연착된다 해서 이 기차를 타고 가서 중간에 내려 갈아타면 시간을 댈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한다.

기차에 대한 지식에 감탄한 그녀는 그에게 말을 걸고, 잠깐이지만 이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이름은 패티(Patti, 니콜 키드먼 분).

목적지에서 내린 후에야 자신이 패티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에릭. 며칠 후, 그는 그녀가 '수요일까지 에딘버러에 가야 한다'라고 말한 사실을 기억해 내고, 급히 에딘버러로 간다.

기차 플랫폼에서 다행히도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그. 그녀가 이 기차에 타실 거냐고 묻자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그녀는 '이 기차는 여기가 종점인데요' 하고 웃는다.

그렇게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른다. 결혼 첫날밤, 패티가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릭이 갑작스레 과거의 괴로운 기억이 떠올라 발작하듯 몸부림치고, 패티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남편이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에릭 로맥스(왼쪽)과 패티(오른쪽)

 

젊을 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전쟁 포로이던 시절의 에릭(제레미 어바인 분)

 

전우인 핀레이(오른쪽 검은 코트, 스텔란 스카스카드 분)가 에릭(오른쪽)을 도와주려고 설득하는 중

 

제2차 세계 대전 기념관 앞에 선 타카시 나가세. 에릭을 고문했던 통역관이다.

 

세월이 흘러 복수를 위해 나가세(왼쪽)를 다시 찾은 에릭(오른쪽)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영국군 에릭 로맥스(Eric Lomax)의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원작 회고록은 이미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레일웨이 맨>) 번역·출간됐다. 나는 일단 영화부터 봤고, 책은 이제 곧 천천히 읽을 생각이다.

영화는 참전 용사가 PTSD로 괴로워하다가 자신을 고문하던 일본군 측 통역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와 대면해 자신의 PTSD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렸다.

 

사실 이 영화는 빠른 진행을 위해 시간을 압축했다.

실제로는 에릭 로맥스와 패티(=패트리샤) 월레스는 1980년에 만났고, 1983년에 결혼했다.

에릭이 자신을 괴롭힌 통역관 타카시 나가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3년, 이 둘이 재회한 것은 1995년이다.

영화에서는 이 모든 일이 꽤 근시일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아무래도 그쪽이 각본 쓰기에도 편리했겠지. 그렇다고 뭐, 아예 없는 일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니 나는 이 정도 '시간 압축'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영화에서는 또한 패티가 에릭의 첫 번째 아내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이다.

첫째 아내 이야기도 사실 굉장히 찡하다. 그 첫 부인은 아그네스(Agens, 애칭은 '낸(Nan)')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는 포로의 상태에서 풀려난 지 3주 만인 1945년 11월 20일에 그녀와 결혼했다.

에릭과 낸은 (1941년에 에릭이 전쟁 때문에 떠나기 전부터) 원래 살던 에딘버러에서 연애를 하던 중이었고, 그가 군대를 위해 떠나야 하는 바로 전날 밤에 약혼했다.

1942년 싱가포르가 패배하고 그가 일본군의 포로가 된 후, 낸은 예비 신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3년 반을 기다려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마침내 결혼했고, 37년간 애도 셋 낳으며 함께했다.

책에서 에릭은 낸을 간단히 'S'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1981년에 그녀를 떠났다.

 

패티와 에릭의 첫만남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기차에서였다.

1980년 글래스고(Glasgow)로 가는 기차 안에서 당시 43세이던 패티를 만났고, 이때 에릭은 그보다 17세 많은 60세였다.

패티는 캐나다 출신이었는데, 에릭과 사랑에 빠지게 되자 아예 영국으로 옮겨 왔다.

 

에릭 로맥스는 20살이던 1941년 당시, 영국군 통신병으로 동남아시아에 파견되었다.

그와 그가 속한 소대는 전쟁 포로로 일본군에게 붙잡혔고, 버마(Burma)에서 시암(Siam, 현재의 태국을 가리킨다)을 잇는, 후에 '죽음의 기차(Railway of Death)'를 건설하는 노역장에서 강제로 일하게 된다. 이 기차는 당시 일본군에게 물자 보급을 위한 용도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인들이 이 노역을 하다가 과로,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죽어 갔다.

 

실제 에릭은 전쟁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상처를 돌보아야 했을 뿐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이라 부를 곳이 없어서 자신의 약혼녀인 낸과 그녀의 부모님(에릭에게는 장인, 장모님)과 함께 지냈다.
에릭은 영국 식민성(the Colonial Office)에서 일했고, 서아프리카에서 현재의 가나(Ghana)를 횡단하는 600마일(=약 965km) 기차 건설을 도왔다.

첫째 아내 낸과 그 사이에서 얻은 딸 린다(Linda)도 같이 서아프리카로 갔다.

그곳에서 아들 에릭 주니어(Eric Jr.)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이 아기는 난 지 4시간 만에 사망했다.
1955년에 이 가족은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돌아왔고, 에릭은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Strathclyde University)에서 강의했다.

둘의 결혼생활에 감정적 간극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에릭은 감정적으로 멀어졌으며,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일, 예를 들어 고지서를 납부하는 일 등을 점차 힘겨워했다.

 

에릭 같은 전쟁 포로들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차마 말로 하기 힘든 끔찍한 일들을 견뎌야만 했다.
일본군의 전쟁 포로 대우는 그냥 형편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젊은 일본군들은 일왕을 숭배하도록 세뇌되었고, 그들 역시 힘든 훈련을 받았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도 곧바로 가장 잔인한 행위를 적에게 저지를 수 있는 군인을 길러내기 위함이었다.

에릭은 책에서 데이빗 린(David Lean)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같은 영화가 전쟁 포로의 삶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고 썼다.

"그렇게 잘 먹은 전쟁 포로를 누가 봤다는 말인가?(Who ever saw such well-fed POWs?)"라고 말이다.

전쟁이 끝났을 당시 에릭은 오직 105파운드(=약 47.6kg)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는 전쟁 전 기준으로 봐도 평균보다 60파운드(=27kg)이나 적은 몸무게였다.

일본군에게 억류된 6만 명 이상의 연합군 중 약 1만 2천 400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에릭 로맥스의 젊을 적 사진. NCIS에서 더키 검시관 할배 조수이던 남자가 딱 이렇게 생겼는데! 제레미 어바인과도 싱크로율 100%.

 

에릭과 여섯 전우는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강제 노역 중에도 몰래 이런저런 재료를 구해 라디오를 만들었다.

1943년 8년, 이 라디오가 발각되어 여섯 전우는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이고 물이나 음식 없이 서 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일본군은 그들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폭행했고, 이때 두 명은 사망했다.

라디오를 제작한 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에릭은 이틀이나 땅바닥에 누워 지내야 했다. 갈비뼈에 금이 가고 팔과 골반이 부서졌다.

일본군은 그를 취조하고 고문했다. 관만 한 크기의 우리에 그를 가뒀다(영화에서 닭장처럼 얼기설기 대충 만든 이 우리를 볼 수 있다).

그는 '반(反)일본 행위'를 한 죄로 5년의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다. 그는 병균이 득시글한 감옥으로 보내져, 전쟁이 끝낼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아, 그리고 영화에는 에릭이 시간을 나타내는 수와 운율을 잘 맞춘 시를 읊는데, 이 시는 전적으로 에릭 로맥스 본인이 창작한 시다. 영화 각본가들이 쓴 시가 아니라는 말씀!

At the beginning of time the clock struck one
Then dropped the dew and the clock struck two
From the dew grew a tree and the clock struck three
The tree made a door and the clock struck four
Man came alive and the clock struck five
Count not, waste not the years on the clock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에릭의 (두 번째) 아내 패티는 그에게 악몽, 분노, 고독감 등의 심적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도움을 청해 보라고 권유했다.

만약에 그러지 않는다면 자기는 그를 떠날 거라고 나름대로 위협도 해 보았단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실제 에릭 로맥스는 고문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의학 협회(Medical Foundation for the Care of Victims of Torture, Freedom from Torture라고도 알려져 있다)의 도움을 받았다. 이곳은 고문의 피해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영국의 자선 단체이다.

덕분에 에릭은 마침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전에 자신을 고문했던 이를 만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1989년에 에릭 로맥스는 자기와 같은 전쟁 포로 출신 전우에게서 일본 통역가 타카시 나가세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받는다.

그는 다른 일본군들이 자신을 고문하는 동안 나가세가 자신을 스파이로 몰아가며 부족한 영어 솜씨로 쏘아대던 사실을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에릭 로맥스가 나가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서는 나중에 마음을 바꿔 그를 살려 주고 용서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에릭은 복수보다는 이 모든 일에 끝을 내고 마음의 안정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곳이 영화와 실제가 제일 차이가 나는 부분인데, 이건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 그렇게 각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긴 하다 사실 그렇게 자기를 괴롭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실제로는 에릭의 아내 패티가 (당시) 71세이던 나가세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가세 씨, 그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이 '용서받았다'고 느낄 수 있겠어요?' 하고 패티가 편지를 쓰자, 나가세는 '당신의 편지라는 단검이 내 마음 깊숙이 박혔습니다'라고 답장했다.

역시나 영화에서처럼 나가세가 에릭이 올 줄 몰랐다는 것은 그냥 영화적 각색이고, 패티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므로 나가세도 에릭의 방문을 예상했을 것이다.

 

에릭과 나가세는 1993년 3월 26일, 태국의 칸차나부리(Kanchanaburi)에 있는 제2차 세계 대전 기념관에서 재회했다.

패티가 에릭과 동행했고,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팀 스태프들도 그 자리에서 이 만남을 녹화했다.

에릭은 나중에 이 만남이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해결을 가져다주었다'고 썼다.

에릭과 패티는 나가세와 나가세의 아내 요시코를 만났고, 이후에도 전화와 편지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 제국군이자 통역가였던 나가세는 콰이 강까지 속죄의 의미로 60번이나 순례했고, 신실한 불교도가 되었다.

역시나 속죄하는 의미에서 콰이 강 다리 근처에 있는 불교도 사원을 짓는 일을 후원하기도 했다.

에릭은 자서전에 '나가세를 만난 일은 그를, 우정이 불가능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적에서 피를 나눈 형제로 바꾸어 놓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이들의 얼굴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그 얼굴 뒤에 상처받은 삶이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의미 없는 과거에서 악몽이 계속되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에릭 로맥스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경험을 4만 단어짜리 원고로 탈고시켰고, 나가세와의 화해 후 자신의 회고록을 손봐서 자서전 <레일웨이 맨>으로 출간했다.

그는 2012년 10월 8일에 사망했다.

 

왼쪽이 실제 에릭 로맥스, 오른쪽이 실제 타카시 나가세. 책이 출간된 후 다시 만나서 찍은 사진인 듯(첫 만남 때는 책이 출간되기 전이었으니까).

 

영화와 실제 사건은 지금까지 비교해 알아보았으니 이제 내 감상을 써 볼까 한다.

(실화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기사를 참고하시라. http://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railway-man/)

얼마나 큰 괴로움을 당했든 간에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리고 인정하지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는 영화 속 나가세가 에릭을 대면했을 때까지도 솔직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고 본다.

나가세가 쓰는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다. 나가세는 일본군이 패한 후 연합군의 편에 살짝 붙어서 자기는 고문은 안 했고 그저 통역만 했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연합군이 죽은 군인들 시신을 발굴하는 일은 도우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killed) 줄은 몰랐다'라고 말한다.

이에 에릭은 분노를 간신히 참으며 '죽은 게 아니라 살해당한(murdered) 것이지'라며 고쳐 준다. '죽이는 일을 네가 도왔던 그 사람들의 시신을 찾는 일을 도와준 것이냐'라면서.

그런데 이 말을 듣고도 아직도 자기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나가세는, 전쟁을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도 간단히 할 수 있는, 편하디 편한 말을 또 주워섬긴다. '전쟁의 비극이(tragedies of war)'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에릭은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고쳐 준다. 전쟁이 '비극적(tragic)'인 게 아니고 네놈이 '범죄자(criminal)'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라, 전쟁이 비극인 걸 누가 모르나? 그건 전쟁을 안 겪어 본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건 전쟁을 직접 겪어 보았을 뿐 아니라, 그중 가해자의 편에 섰던 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전쟁을 비극으로 치부해 버리면, 자신이 해 온 짓의 극악함과 잔인무도함은 살짝 덮고 '우리 모두 힘들었죠. 전쟁 벌인 놈이 나빠요 잉잉' 하면서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거랑 똑같다.

어떻게 에릭에게 그딴 짓을 해 놓고도 잘도 그런 말을 주절일 수가 있을까. 그것도 이제 자기는 그때 일이 괴롭고 후회한다는 사람이 말이다. 사실 진짜 후회를 하든 안 하든 간에, 자기를 진짜 죽일 수도 있는 상대가 자기 눈앞에 있는데 그러면 적어도 정말 진심으로 후회하고 깊이 뉘우치는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나.

이 새끼가 이렇게 자기 주제 파악을 못 하니까 에릭이 그를 끌고 가서 닭장 같은 우리에 넣어 버리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도 이놈은 남 탓만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they lied to us)'라고. '그들'이 누구인가? 영어에서는 보통 사람들, 구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어떤 소문이나 소식의 원천이 되는 집단을 가리켜서 그냥 'they'라고 한다. 'They say life is short(인생은 짧다고들 한다).' 할 때처럼.

일본군이면 일본군이라고 정확히 말을 해야지, 그냥 추상적으로 '그들' 이러는 꼬라지를 봐서는 얘는 아직도 반성이 안 된 거다.

'us and them'('우리'와 '그들')이라고 할 때처럼 'they'를 쓴다는 점에서도 역시 '편 가르는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도 알 수 있고 말이다.

'그들'이 다 잘못했으면 '우리', 즉 나가세 본인은 죄가 없다는 것인가? 진짜 아주 우습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그는 남의 말을 '빌려서' 옮겨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원어민이 아니고,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이다. 그는 남의 말을 (정확히가 아니라) 대충 옮겨 주면서 기회주의자로 살아왔다. 에릭이 물고문을 당하고 나서 '너희 일본군은 지고 있고, 민간인인들은 굶어 죽어 가고 있다'고 진실을 폭로하는데 나가세가 진짜 통역관이라면, 자기 주장대로 '고문은 하지 않고 통역에만 관여했'다면 이 말도 그대로 자기 일본군 상관에게 전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네 말은 거짓말이야!'라며 그와의 입씨름만 계속한다. 상관이 '저놈이 뭐라는 거냐?'며 나가세에게 묻는데도 말이다. 그는 사건을 제대로 묘사할 줄 모른다. 정확한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른다. 그가 구사하는 말이나 그의 사고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에 에릭은 원어민이고, 나가세가 하는 틀린 말('죽다'-'살해되다', '비극적'-'범죄자' 등)을 고쳐준다. 이는 에릭이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능력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주관적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끔찍한 경험을 당했지만 그것을 내적으로 극복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은 이렇게 언어를 자기 기준에 따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서 유래한다.

둘째, 나가세는 이렇게 틀린 언어를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영어 발음이 유창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가 아직도 제대로 된 표현을 쓸 줄 모른다는 의미이다. 전쟁 시기나 그 이후에서도. 에릭의 면전에서 끊임없이 말 실수를 하는 것을 보아 아직 그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진심으로 속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로 자신의 일을 후회하는 사람이라면 에릭 앞에서 그런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실존하던 나가세 본인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영화 속 나가세는 아직 100% 온전하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는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영화에서는 에릭이 그를 우리에서 풀어 주고 칼도 집어 던진 후 떠나가는데, 이때 나에겐 나가세는 용서받을 자격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자비에 대한 포샤(Portia)의 연설 내용처럼, "자비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자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빗방울이 땅에 살포시 닿듯이 (자비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자비는 또한 '그것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를 축복한다. 포샤는 이렇게 샤일록(Shylock)에게 '그대는 비록 정의를 요구하나, 이것(=앞에서 말한 자비에 관한 내용)을 고려해 보라'고 말한다.

포샤의 말이 이 상황에도 꽤 들어맞는 것 같다. 상대방이 자비를 받을 가치가 없는 자일수록 내가 베푼 자비는 오히려 귀하게 그 값이 올라가는 것이니.

 

괴로운 기억을 정화하고, 떠나 보내고, 더 이상 그것 때문에 괴롭지 않으려면 일단 최소 한 번은 그것을 직면해야 한다.

에릭 로맥스는 그 힘든 일을 해냈다. 또한 자신에게 큰 죄를 지은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풀어주었다.

고문 장면은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감동적이고 뜻깊어서 생각할 거리도 주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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