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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I Capture the Castle(성 안에 갇힌 사랑)>(2003)

by Jaime Chung 2024.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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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I Capture the Castle(성 안에 갇힌 사랑)>(2003)

 

 

1930년대, 다 허물어져 가는 성으로 이사 가게 된 모트메인 가족의 이야기로, 화자는 17살 카산드라(로몰라 가레이 분)다. 아빠인 모트메인 씨(빌 나이 분)는 작가인데 지난 12년간 한 글자도 못 썼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토파즈(타라 피츠제럴드 분)라는 새엄마가 있는데, 이전에 누드 모델이었다. 통 글을 못 쓰는 주제에 생활력도 없는 남편 때문에 미칠 지경이어서 나체로 일광욕을 하곤 한다. 그러면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나. 어쨌거나 카산드라의 언니 로즈(로즈 번 분) 역시 가난에 질린 지 오래다. 그런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이 모트메인 가족이 사는 성의 주인(즉, 모트메인 가족이 월세를 내야 하는 집주인)은 미국인 코튼 형제이다. 형 사이먼(헨리 토머스 분)과 동생 닐(마크 블루카스 분). 로즈는 이 부유한 미국인 집주인들을 보고, 그중에 사이먼을 자기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결혼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후, 카산드라에게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하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원작이 되는 소설을 쓴 도디 스미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 원작 소설은 국내에 <성 안의 카산드라>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으나 현재는 품절 상태다. 아쉽다.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원작 소설도 구해서 읽어 보고 싶다. 검색하다 보니 이 소설은 동명의 뮤지컬로도 제작돼 선을 보였다고 한다(가디언지의 뮤지컬 리뷰).

이런 소설 또는 영화는 참 충격적인 게, 완전 흥미롭게 시작해서 엄청 배배 꼬인 줄거리(대체로 연애 관계)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이 소설/영화도 그렇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로즈는 사이먼의 콧수염을 못 봐주겠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유혹해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청혼을 받는 데 성공한다. 로즈 자신도 사이먼과 첫 키스를 하고 나서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카산드라에게 말한다. 반면에 청혼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이먼의 동생 닐은 로즈가 돈만 밝히는 여자라면서 못마땅해한다. 로즈는 사이먼과 결혼을 위해 런던으로 옮겨 가고, 성에 가족과 홀로 남은 카산드라는 언니를 그리워한다. 그러다가 결혼을 앞두고 사이먼이 모트메인 성에 들르고, 카산드라와 이야기하면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카산드라의 재치 있음에 끌렸던 자기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카산드라에게 키스한다. 카산드라는 자신이 사이먼, 그러니까 형부가 될 사람과 사랑에 빠졌음에 자책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 사이먼은 그냥 네가 너무 재미있어서(funny) 키스했다고 말하는데 이게 또 카산드라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언니의 남자를 넘보게 된 꼴이 된 자신의 처지를 한심해하면서도 로즈를 그리워하던 카산드라는 이제 또 모트메인 집안의 하인(가난한데 어떻게 하인이 있겠느냐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그러하다)인 스티븐(헨리 카빌 분)과 키스를 한다. 스티븐과는 이전부터 약간 썸이 있었는데 카산드라가 사이먼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스티븐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티븐은 카산드라에게 키스하더니 미안하다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려다가 갑자기 멈춘다. 당연히 혼란스러워진 카산드라. 스티븐은 레다(사라 우드워드 분)라는 연상의 여인(직업은 사진가이고, 코튼 형제의 친척이다)과 같이 살러 간다. 레다가 자기에게 영화 배역 한 자리를 줄 거라나. 어쨌거나 로즈의 초대를 받고 런던에 가 보니 사실 로즈는 사이먼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자기네 가족이 너무너무 가난해서 못 볼 꼴을 다 보게 되니까 자기가 사이먼이라도 어떻게 꾀어서 가난을 면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그리고 또 런던에서 스티븐을 찾아가 만난 카산드라는 진짜로 그가 레다와 같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근데 또 웃긴 게, 카산드라가 그간 있었던 일을 스티븐에게 다 말하니까 카산드라보고 자기랑 같이 살자고… 이 소설 등장인물들은 왜 자기 마음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이러는 걸까요?

그리고 또 거기서 이어지는 나름대로 긴 얘기를 요약하자면, 로즈가 진짜 사랑하고 마음을 나눈 건 닐이었다는 반전! 어쩐지 닐 이 새끼가 로즈를 미워하는 게 ‘음, 그래도 이렇게까지 싫어한다고?’ 싶었는데, 역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었다. 그래서 사이먼과의 결혼을 앞두고 로즈는 파혼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무슨 농장이었나 뭔가 일이 있다고 했다) 닐을 따라 미국으로 간다. 그러면 혼자 남게 된 사이먼과 로즈가 이제 짝짜꿍하면서 잘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사이먼은 자신이 배신당한 셈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마음은 그렇게 쉽게 정리가 되는 게 아니라며, 아직도 로즈를 사랑한다고 카산드라에게 말한다. 그래서 둘의 해피 엔딩으로 영화가 끝나지는 않는다. 그냥, 카산드라만 혼자 바보 된 거… 영화는 그럼 어떻게 끝나냐고요? 아까 말했듯 사이먼이 자기는 아직도 로즈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그래도 자기가 괜찮아지면 돌아오겠다는 대화를 나눈 후, 카산드라가 성의 꼭대기에 올라가 자기 일기장(이 소설/영화는 카산드라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을 들고 대략 이렇게 내레이션 한다. ‘이제 마지막 페이지만 남았다. 나는 이렇게 쓸 것이다. 나는 사랑했다.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하는 와중에 카산드라는 12년간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아버지를 붙잡고 글을 쓰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아버지에게 화도 내 보고, 애원도 해 보고, 아버지가 뭐라도 쓰는지 감시하겠다며 아버지의 비밀 작업실에서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그래도 모트메인 씨는 제대로 된 문장이란 걸 못 썼다), 마지막에는 성의 감시탑 같은 곳에 아버지를 가둬 두고 50쪽을 쓰기 전에는 못 나온다고 단단히 엄포를 놓는다. 대충 먹을 거랑 필요한 것들이 든 가방과 타자기, 라꾸라꾸 침대 같은 것만 주고서. 근데 12년간 글을 쓰겠다 하고서 못 썼는데, 다른 직업을 알아보거나 어떤 식으로도 자기 가족을 먹여살릴 노력을 안 한 아버지라면 이런 꼴을 당해도 싸다. 1-2년 해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접었어야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카산드라는 로즈만 좋은 일 시켜 준 셈이다. 사이먼 이 자식은 왜 카산드라 마음을 가지고 노냐? 로즈는 사이먼을 유혹해 놓고 정작 자기는 닐과 사랑에 빠지다니… 얘가 제일 팔자 좋은 듯… 어쩌다 보니 줄거리 이야기만으로도 리뷰가 길어졌는데 이런저런 사건이 많아서 그렇다. 국내 출간된 원작 소설 표지에 “영국 BBC 선정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국인들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삼각관계를 좋아하나…? 그래서 <클로저> 같은 게 나왔나…? (연극 <클로저>는 아시다시피 영화 <Closer(클로저)>(2005)의 원작이고, 영국 극작가 패트릭 마버가 썼다.) 인물들이 얼키고설키는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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