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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Wicked Little Letters(X를 담아, 당신에게)>(2023)

by Jaime Chung 202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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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Wicked Little Letters(X를 담아, 당신에게)>(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Wicked Little Letters(X를 담아, 당신에게)>(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18년, 영국 서섹스의 리틀햄프턴이란 마을에 로즈 구딩(제시 버클리 분)이라는 아일랜드 여자가 낸시(알리샤 위어 분)라는 어린 딸과 같이 이사를 온다. 그녀는 흑인 남자 친구 빌(말라치 커비 분)과 같이 사는데 둘은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누가 봐도 낸시의 아빠도 아니다(피부색이 다르니까). 게다가 로즈는 입도 걸다. 반면에 바로 딱 옆에 붙은 옆집에 사는 이디스(올리비아 콜 분)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런 욕을 입에 담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어느 날, 이디스네 집에 온갖 욕이 가득 담긴 편지가 날아오는데 이디스는 이 육두문자가 가득한 편지는 로즈가 보낸 게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디스는 기독교다운, 거의 순교자적인 정신으로 로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경찰들과 신문 기자들에게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것만 들으면 세상에 이토록 고결한 순교자는 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디스에게도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 정말로 이 편지는 로즈가 쓴 걸까? 이 동네 최초의 ‘여자 경찰’인 모스 경관(안자나 바산 분)은 상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를 벌이는데…

 

1918년에서 1923년까지 영국 리틀햄프턴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로즈 구딩과 그 이웃 이디스 스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물론 어느 정도 ‘예술적’으로 극화를 한 면이 있긴 하지만 뼈대는 실화에 기반했다.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는 당연히 영화 버전이고, 실화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서 진짜 로즈 구딩은 아일랜드 이민자도 아니었고, 그녀의 남자 친구(후에 결혼해서 남편이 된) 빌은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었다. 진짜 최초 여자 경찰은 극 중 모스 경관 같은 인도인이 아니었고, 백인 여성이었다(참고로 영국 최초의 여성 경관은 1915년에 처음으로 임용되었다). 또한 로즈는 남친 빌뿐만 아니라 자매 루스와 루스의 두 아이와 같이 살았는데 영화에서 루스와 두 아이는 완전히 삭제되었다. 영화 속 이디스는 부모님하고만 함께 살지만, 실제로 이디스는 부모님뿐 아니라 두 형제들과도 같이 살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과거의 구시대적 모습을 부인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되, ‘예전엔 이랬는데 놀랍죠? 이게 얼마나 잘못됐고 구식이었는지 보이시죠?’ 하고 은근히 힌트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가장 좋은 게 ‘여자 경찰’이라는 구시대적 명칭으로 불리는 글래디스 모스 경관이 극 중에서 묘사되는 방식이다. 일단 현실과는 다르더라도 유색 인종(인도계 영국인)으로 설정되었으며, 게다가 여성이기까지 해도 이중으로 차별받는다. 여자 경찰이니까 진지한 사건 수사에는 함께할 수 없으며, 남자 경관이 이디스를 서에 데려와 이야기를 나눌 때 ‘여성이 감정적이 되어 눈물을 흘릴 경우에 대비해’ 한쪽에 앉아 있는 게 그녀가 하는 역할의 전부다. 상사(아마 부서장 정도?)에게는 차를 끓여 오라는 명령이나 받으며 이에 질색팔색한다. 이것만 봐도 과거에 얼마나 여성이 많은 억압을 받았는지 볼 수 있는데, 로즈를 통해 모스가 더욱 자신감을 가진, 유능한 경관으로서 거듭나는과정은 또한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자유분방한 로즈는 자신을 ‘여자경관(woman police officer)’이라 소개하는 모스에게 ‘여자인 건 딱 보면 알겠는데?’라며 그냥 경관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나중에 모스가 따라 하기도 한다.

 

솔직히 이 영화는 올리비아 콜맨의 뛰어난 연기가 없었으면 완성되지 않았을 것 같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저속한 욕을 편지에 써서 보내는 이디스의 위선적인 면이나 로즈의 솔직함을 좋아하면서 어떻게든 ‘그래도 너와 나는 다르지’라며 도덕적 우월감을 내보이는 이중적인 면 등은 콜맨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살리기 어려웠을 듯하다. 그 오묘한 표정과 섬세한 몸짓이라니! 이 영화는 물론 제시 버클리도 연기를 잘했지만 올리비아 콜맨이 악역(이라고 하기엔 나름대로 조금 이해가 되는 다면적인 인물)을 제대로 연기한 덕분에 완성됐다.

실제로 올리비아 콜맨도 입이 걸고, 인터뷰에서 욕을 자연스럽게 하기로 유명하다고. 또한 이 영화에서 상대역을 맡은 제시 버클리와도 친한 친구라고 한다. 둘이 다코타 패닝과 같이 출연한, 매기 질렌할이 감독한 <The Lost Daughter(로스트 도터)>(2021)에서 만나 친해졌다나(이 영화 내에서 둘이 같이 나오는 장면은 없지만). 이 영화는 현재 국내에서 상영 중이라고 하는데 나는 호주 아마존 프라임으로 봤다. 이 영화를 들여오면서 게으르게 음차하지 않고 적당한 개봉명을 지어 준 게 마음에 든다. ‘X’는 주로 욕을 대체할 때 쓰는 문자 ‘X’와 영미권에서 주로 편지 말미에 키스를 대신해 쓰는 ‘X’,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이중적으로 의도한 것인 듯. 잘 지은 제목이다. 영화도 제목만큼 재미있다. 굿!

 

🤓 이 영화의 기반이 된 실화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기사들을 참고하시라.

https://www.forbes.com/sites/monicamercuri/2024/08/01/is-wicked-little-letters-based-on-a-true-story-the-1920s-libel-scandal-explained/

https://www.radiotimes.com/movies/wicked-little-letters-tru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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