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지원, <메모의 순간>

흥미로운 ‘해찰’을 제공해서 내가 이 블로그 글에서 소개하기도 한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운영했던(현재는 종료되었다) 기자 김지원의 에세이(김지원 씨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썼다). ‘메모의 순간’이라는 제목을 보고 메모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은 그러한 방법론을 다루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메모라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 그 순간에 머무르는 경험을 살아 볼 것을 권하는 인문 에세이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여러 유형이 있을 테지만, 나는 앤 패디먼이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 분류했듯이 책과 ‘궁정식 연애(courtly love)’를 하는 유형이다. 말인즉슨, 책은 구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기에 책 페이지를 접거나, 구석에 낙서를 하거나 하는 행위를 일절 하지 않고 책을 그 자체로 숭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같은 이유로 이북을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이라이트를 아무리 마음껏 해도, 메모를 아무리 길게 남겨도 원본은 절대 손상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종이책에다가요? 그래서 책 구석구석이나 카드 명세서, 신문 여백 등 어디든 가리지 않고 ‘메모’를 남기는 저자에게 감탄하는 동시에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책을 꼭 되팔려고 깨끗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이런저런 흔적이 남아 있으면 그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느끼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런 메모의 순간들을 사랑한다. 자신이 남기는 메모에 그 어떤 효용도 없더라도. 기자라면 메모를 가지고 기사를 쓸 것이고, 학자라면 논문을 쓸 것이며, 작가라면 책을 쓸 것이다. 하지만 메모라는 게 굳이 그렇게까지 어떤 ‘쓸모’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 애초에 우리가 메모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금 말했듯 직업적으로 필요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어딘가에 쓸 인용문을 남겨 두기 위해서? 남들에게 ‘내가 이만큼 안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지식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중에 읽지도 않을, 내가 저장해 두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기사들을 모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메모란 결국 무언가를 하기 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존재하는 지대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메모를 모을 것이다. 영화감독이라면 영화에 넣을 만한 것들을 갈무리해둘 것이고, 소설가라면 소설에 쓸 만한 것들을 갈무리할 것이며, 기자라면 기사로 쓸 내용을 준비하면서 메모를 해갈 것이다. 대체로 결국 메모는 메모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화化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감안하고’ 메모를 해갈 수 있다. 이런 메모는 꽤 실용적이며, 나 역시 특정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이같이 메모를 적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런 메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 나는 무언가가 굳이 될 필요가(의도가) 없는 메모, 무용한 메모에 무한한 호감을 갖는다. 그냥 별 이유 없이, 불현듯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메모다. 어쩌면 이런 메모는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조화, 시스템화된 ‘메모’라기보다는 잡동사니 ‘일기’나 ‘앨범’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메모는 쓰는 사람을 충분히 어떤 지점에 머무르게 하고, 음미하게 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각인시켜 의미 있는 기억이 될 수 있게 한다.
내가 제일 공감했던 부분은 이거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의 저장 강박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정말 그게 우리는 돕는 걸까? 우리가 이러는 일차적 이유가 ‘공포, 두려움'이라는 저자의 진단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과연 우리는 더 많은 걸 보고 기억할수록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게 될까? 그리고 여기서의 ‘더 많은 것’이란 무엇일까?
언젠가 포털 뉴스창을 켜놓고 한동안 멍하니 쳐다본 적이 있다. 그 복작대는 화면이 새삼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인데, 이유는 첫째, 그 모든 게 ‘현재 일어난 일News’에 대한 소식이라는 점(지구 반대편에 사는 연예인의 두 번째 이혼 소식에서부터 부동산 등락폭, 새로 나온 국산 자동차 소식까지)과 둘째, 그런 소식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그 낯섦은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졌다. 대체 왜 그 모든 소식을 다 알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도출된 질문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알다’라는 동사에 ‘~해야 한다’는 의무(‘알아야 한다’)가 익숙하게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공포, 두려움이다.
오늘날 우리는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최대 속력으로 달리는 사람처럼 최신 뉴스부터 시작해 밈, 트렌드 등을 죄다 섭렵해 시대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 관심사를 다루는 뉴스만 해도 너무 많아서 큐레이션 뉴스레터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그 뉴스레터마저도 너무 많아져서 뉴스레터들 중 정수만을 추려 소개한다는 뉴스레터의 뉴스레터를 본다. 이런 세상인 와중에 그 많은 볼 것들을 마구잡이로 욱여넣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언젠가 유용한 맥락에서 알차고 섬세하게 써먹기까지 해야 한다. 그 절호의 맥락이라는 게 몇 년, 몇십 년 후에 어떤 국면에서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마치 라켓은 하나뿐인데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을 모조리 쳐내야 하는 꼴이다. 여하튼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며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떠다니는 스티로폼 박스라도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악에 받친 듯 발장구를 치고 있다.
우리는 한사코 한 지점에 붙박인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또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24/7(24시간 주 7일)의 중단 없는 자기계발적 의지와 이어진다.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으려 하고, 그 모든 유용한 정보들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섭렵하려고 하는 것들은 대체로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지 못한 채 단지 현재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방식의 것들뿐이다.
나는 이런 두려움을 안다. 나는 특히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최고의 책 100권’ 같은 목록을 보면서, 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저장해 둔 보관함을 보면서 ‘이 책을 다 (또는 상당히) 읽고 나면 나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희망에 부푼다. 내가 더 유식하고 대단하고 개짱센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될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고, 지금의 나를 무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생각에서 의식적으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이제 평생 죽을 때까지 단 한 글자도 안 읽어도 여전히 좋고, 대단하고, 멋진 사람일 거야’라고 나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메모와는 살짝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두려움, 현재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는 같은 맥락인 것 같아서 말해 봤다.
사실 저자는 무분별하게 독서를 권유하는 것이 아예 책을 안 읽는 것보다 더 해롭다고 말한다. 책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저자가 하는 말을 10시간 동안 내리 듣기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 저자 한 명의 개인적 견해와 생각, 그것이 아무리 옳거나 신빙성이 있다 해도, 그것에만 주야장천 매달려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건강한가? 상대방의 말을 어느 정도 듣고 나서 나도 말하는 것이, 탁구를 하듯 공을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것이 건강한 대화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딴짓’을 하는 것이(메모도 이에 포함된다) 책에서 말하는 한 가지 의견에서 벗어나 다른 의견도 생각해 보게 하는 자유를 준다. 따라서 읽지 않는 것, 딴짓하는 것은 건강하고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속시원할 수가!
그간 나는 여러 자리에서 독서의 즐거움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왔음에도, 실은 무분별한 독서 권유가 독서 안 하기보다 훨씬 해롭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전자에는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해도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독서는 존재 기저의 괴로움이라든지 피하고 싶은 의무처럼 붙박여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메모에 대한 강박이 활자화된 ‘유용한 정보’(그 정점에 있는 상징으로서의 책) 그리고 그것을 쌓는다는 강박과 떼어놓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을 몇 권 읽고, 그것을 모조리 기억하기 위해 남겨두고, 최첨단의 수단을 동원해 분류하고자 하는 이 모든 강박적 행위 안에 인간적인 순수한 즐거움이나 어떤 사람의 성격적 단점과 불행을 보여주는 맹렬한 집착, 발랄한 엉뚱함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다. 무분별한 독서 권유에 사람들은 시무룩해진다. 여기에 대고 읽지도 않을 책이라도 일단 많이만 사두면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출판계 역시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는 과도한 독서 예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애초에 사람은 그렇게 많은 유익한 책들(‘피와 살이 되는 책’들)을 다 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할 때 대체 ‘더 많은 메모를 하고 또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선전하는 각종 서비스와 강의의 본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식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소화제를 처방하는 꼴이 아닐까? 오히려 더 많이 먹으라고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허기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것을 근원적으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파고드는 대신 말이다.
이런 유행에서는 메모가 무엇에 대한 메모인지, 그 정보가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지, 어떤 식으로 스스로에게 작용하는지 등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유의 메모 관련 도서에서는 정보가 대체로 우리의 의식과 별개인 외부의 돌멩이 같은 것으로, 한사코 우리의 바깥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마치 시스템의 신처럼 ‘관장’하는 자리에 위치한다.
우리는 왜 한사코 ‘안 읽기/딴짓’의 유익함과 즐거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기본적으로 한 책을 오래 붙잡고 읽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일방적, 강압적인 경험이다. 입을 닫고 10시간 동안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내리 그저 듣기만 해본 일이 있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대체로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지 않지만 책을 읽을 때는 익숙하게 한다.
오늘날 걱정 많은 작가들은 참을성 없고 조급한 요즘 젊은이들이 심지어 ‘영화마저’ 빨리 감기로 본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상은 자고로 정속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야 참맛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저자’가 의도한 속도와 리듬을 따르는 방식의 감상이다.
물론 그런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단지 보는 데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여백이 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고 싶다. 이는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고 해서 저절로 자기 나름의 생각이 ‘태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억지로라도 감상문을 써낼 수야 있겠으나 이는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원전의 열화 버전에 가까울 것이다. 글로 화할 만큼 뜨겁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쓰기에 재미가 없기 때문에 마치 깜지를 채우듯 꾸역꾸역 채우는 것이다. ‘훌륭한 책을 기껏 읽었으니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성실한 일인데, 텍스트와 저자에서 ‘벗어나는’ 것을 죄악시하고 무엇이든 흡수한 것은 일단 의문을 갖지 않고 달달 욀 것을 강요받아온 대한민국 공교육 방식에서의 성실함이다.
더 많이 기억해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하며,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효용성 없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 그냥 즐기는 것, 그게 메모와 삶 모두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나처럼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는 이들이나 취미조차 생산성 있는 것으로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이들(한국인들!!)이 읽고 마음을 조금 편하게 가질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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