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심조원,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우렁이 각시 이야기를 비롯한 우리나라 설화 및 옛이야기를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인문 에세이. 한국구비문학대계(gubi.aks.ac.kr)에서 제공하는, 이미 채록된 옛이야기를 부분부분 인용해서 보여 주기 때문에 생생한 입말로 이야기되는 읽는 재미도 있다.
제목의 ‘우렁이 각시’는 한국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아는 그 이야기다. 착하게 살면 참하고 예쁜 색시를 얻을 수 있다는,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교훈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민담을 저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아이 통쾌해!
색시에게 우렁이 껍질은 ‘자기만의 방’이다. ‘때가 되어’ 서로의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사랑조차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각은 ‘천하일색’인 겉모습과 밥상을 차리는 손에 안달을 낼 뿐 색시의 내면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 우렁이 껍질은 둘 사이를 가르는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흉물에 지나지 않는다. 생기발랄하던 처녀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그의 부엌에 갇혀 버렸다.
여성들은 이 이야기에서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힌 채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자신들을 위로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옛이야기는 대부분 여성들의 ‘말’이었으며, 남성의 문자로 재해석된 것에 한해 간신히 문학 대접을 받아 왔다. 그 과정에서 말한 당사자는 쉽게 지워진다.
더구나 어린이 교육용으로 재구성되면서 주류 사회의 교훈을 담는 수단으로 쓰이곤 했다. 그 과정에서 ‘묘령의 처녀가 몰래 밥을 해 주는’ 남성 판타지가 이야기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집단의 기억은 주류 남성들의 기획물이다. ‘효자로서,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다 보면 평생 말없이 밥해 주는 예쁜 여성을 얻는다’는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하나 한국인들이 아주 잘 알고 있을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은 어떨까? ‘우렁이 각시’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나 나무꾼이나 둘 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반려가 될 여성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다. 그의 내면, 성격은 어떻고, 무엇을 좋아하고, 가족 관계는 어떻고 등등 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니 그가 어떻게 상대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
그가 훔친 날개옷은 선녀의 얼굴이자 영혼이지만 사내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다. 그에게는 아내가 되어 줄 몸이 필요할 뿐 하늘과 땅을 오가는 자유로운 영혼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착한’ 나무꾼은 자기가 믿는 세상의 이치에 따라 망설임 없이 울고 있는 선녀를 가둔다.
대부분의 채록본에서 둘의 결혼 생활은 언급되지 않는다. 오죽 답답했으면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집을 나갔을까도 싶지만, 여자들은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행복하지도, 재미나지도 않다’고 구구절절 말한들 그의 꽉 막힌 귀가 새삼스레 열릴 리 없으므로 날개옷을 찾자마자 미련 없이 떠난다. 원통한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하늘 사람의 본색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날아간 것이다.
대부분의 채록본에서 둘의 결혼 생활은 언급되지 않는다. 오죽 답답했으면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집을 나갔을까도 싶지만, 여자들은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행복하지도, 재미나지도 않다’고 구구절절 말한들 그의 꽉 막힌 귀가 새삼스레 열릴 리 없으므로 날개옷을 찾자마자 미련 없이 떠난다. 원통한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하늘 사람의 본색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날아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의 의도와 목적은 좋으나 내가 아는 이야기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 중 내가 들어본 것은 솔직히 많지 않아서 매번 새로운 꼭지를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모르는 이야기, 낯선 이야기는 저자가 소개해 주는 내용에 의지해야 했는데 그러면 내가 전체 이야기를 모르니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사실 이건 작가가 이야기를 잘못 골랐다, 작가가 잘못했다기보다는 그냥 우리나라 민담, 설화가 다양하게 알려지지 않은 현실이 아쉬운 것인 듯.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팥이 영감과 토끼’, ‘돌 노적 쌀 노적’ 이런 걸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어야 했는데…
밀리의 서재에서 서비스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라. 이 책을 읽고 나니 생각난 책이 있는데, 구오의 <선녀는 참지 않았다>이다. 이것도 고정관념, 차별 없이 다시 쓴 전래동화라는 콘셉트로, 옛이야기를 현대적이고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비슷한 개념이니까 이것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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