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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액스>

by Jaime Chung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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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액스>

 

 

다들 아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2025)의 원작이 되는 소설.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정식 이북으로 발매되지는 않았는데 밀리의 서재에서 서비스하길래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바로 읽었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장장 23년간을 근무한 제지 회사에서 해고된 후, 버크 데보레는 지난 2년간 재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동종 업계에서 다시 일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어느 날, 한 잡지에 실린 업튼 레이프 팰런의 인터뷰를 읽고 그는 영감을 받는다. 데보레 본인과 같은 제지 업계 전문가들을 찾을 만한 이 업계 바닥은 좁으니까,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들을 제거하자! 그는 가짜 제지 회사의 구인 광고를 지어내어 신문에 내고, 이 광고에 응답한 이들 중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은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한 명씩 없애기로 결심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신선한 설정의 소설이 1997년작이라는 게 제일 놀라웠다. 이런 다크 코미디, 풍자라니.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아내 마저리도 있고, 각각 고등학생 아들 빌리과 대학생인 딸 벳지가 있다. 먹여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기에, 다시 취업을 할 수 있다면 살인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영화 제목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듯.

하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코네티컷으로 돌아온 나는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편의점을 겸한 주유소로 들어간다. 차에 기름을 넣은 후 여행 가방에서 루거를 꺼내 조수석에 잘 개어놓은 레인코트 밑으로 밀어 넣는다. 주유소는 썰렁하다. 야한 잡지와 군것질거리로 덮인 카운터는 파키스탄인 점원이 지키고 있다. 순간 이것이 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강도 짓. 루거를 쥐고 안으로 들어가 파키스탄인 점원으로부터 현금을 빼앗아 나오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안 될 게 뭐 있어? 매주 그렇게 한두 번씩 그 짓을 해대면 대출금을 갚고, 벳지와 빌리의 학자금을 대고, 저녁 식탁에 다시 양고기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연금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가끔 집을 나와 먼 동네를 돌다가 한적해 보이는 편의점을 털면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편의’ 그 자체다.

 

먹고산다는 게 뭔지. 그는 23년간 제지 업계에 있었고, 그래서 종이에 관해서라면 전문가이지만 그가 다닌 회사에게 그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충성심보다는 비용 절약을 위한 해고가 더욱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는 나름대로 배려를 해 준다고 퇴직금도 주고, 의료보험 혜택도 일정 기간 누리게 해 주었다. 해고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재교육’이니 ‘재훈련’이니 하는 것이 행해졌지만, 그걸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데보레는 2년간 재취업을 하지 못했다.

재훈련. 그것은 회사의 퇴직 패키지의 일부였다. 그들이 얘기하는 재훈련은 비참하고, 부적절하게 들렸다. 나는 재평가를 의미하는 다른 적절한 표현을 듣고 싶다. 그들이 얘기하는 재훈련은……

물론 그들이 실직자들을 모욕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표현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차분하고, 기대에 부푼 상태로 유지시키려 애썼을 것이다. 그래서 퇴직금이니 격려 미팅이니 재훈련의 기회니 하면서 우리를 달랬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재훈련이라는 아이디어에 혹했다. 재훈련에 관한 거라면 모든 것들을 읽었다. 사람들은 미래의 신세계에 적응하려면 재훈련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새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했고, 특히 쉰 살 넘은 남자들이 새 기술을 익히는 데 소극적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런 일반론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여기 적응 가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번 써보세요.

데보레가 받은 재훈련은 심지어 에어컨 수리 훈련이었다. 생각해 보라. 23년간 제지 업계에서 일하던 사람이 2개월짜리 에어컨 수리 코스를 수료한다고 에어컨 수리 기사로 취업이 되겠는가?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는 둘째치고, 데보레처럼 (업계만 다르지) 이미 몇 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고작 2개월 코스로 배운 데보레를 쓸 에어컨 수리 서비스 회사의 사장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래 놓고서는 회사는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어쨌다 하겠지.

 

데보레가 자기 경쟁자들을 살인하는 것은 분명한 범죄이고 잘못된 일이지만, 그를 그렇게까지 하도록 몰아넣는 기업 또는 자본주의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며 비난받을 만하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정말이지, 먹고산다는 게 뭔지. 23년이나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의 충성심을 이런 식으로 배신하다니. 데보레가 아내 마저리와 함께 부부 상담을 받는데 거기에서 하는 말이 이 분노의 핵심인 듯하다.

“데보레 씨, 당신이 이 메시지를 허튼소리로 받아들이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요지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붙여준 전문가들의 요지도 그게 아니었을 거고요. 이 메시지의 요지는 바로 이겁니다. 당신은 일자리가 아니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그는 여전히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자리와 동일시합니다, 데보레 씨. 마치 사람과 일자리가 동일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직장을 잃으면 그들은 마치 스스로를 상실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존재 가치의 상실.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좌절감 말입니다. 그렇게 자학이 시작되는 겁니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우울하고 화가 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당신의 일부를 앗아 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나요?”

그가 말했다.

“그들이 앗아 간 건 내 인생입니다. 내가 아니고요. 그들은 내게서 융자를 갚을 능력, 아이들을 돌볼 능력,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여유를 앗아 갔습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입니다. 직장은 내가 아니라고요. 퀸란 씨, 지난 5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한때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온 동료들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해고된 수백 명의 직원 말이죠. 우린 항상 그 신뢰를 앞세워 함께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 적이 됐습니다. 서로 경쟁해야 하는 관계가 돼버렸으니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카운슬러들은 절대 이런 얘길 하지 않죠. 우리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

나는 말했다.

 

이 소설이 나름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까지가 다크 코미디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버전도 한번 보고 비교해 보고 싶다. 영화에 관심이 없더라도 밀리의 서재를 사용한다면 굳이 책을 구입할 필요도 없으니, 한번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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