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루만 알람, <세상을 뒤로하고>

줄리아 로버츠, 마허샬라 알리,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원작 소설(영화를 들여오면서 제목은 게으르게 그냥 음차한 거 봐라. 소설은 ‘세상을 뒤로하고’라고 잘 옮겼는데 영화는 왜 이래 놨을까? 소설 원작이랑 구분하기 위해? 그게 목표였다면 그냥 적당히 한국어로 새 제목을 지었어도 됐잖아!). 사실 영화가 흥미로워 보여서, 영화를 보려고 먼저 책부터 읽었다. 책을 끝낸 날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이제 둘 다 아니까, 아예 이 소설 리뷰에 영화 이야기도 해 볼까 한다.
일단 줄거리부터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맨다와 클레이(영화에서는 각각 줄리아 로버츠와 에단 호크가 맡았다)는 아들 아치와 딸 로즈를 데리고 휴가를 떠난다. 도시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그 호화로운 저택은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에서) 무려 ‘세상을 뒤로하고’라는 멋진 문구로 소개돼 있었다. 이 가족은 짐을 풀고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한 흑인 부부가 집 앞에 나타나 자기가 이 집의 주인인데, 지금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으니 집 안에 들어가 지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백인 부부는 자신이 집주인이라 주장하는 이 부부를 수상쩍게 여기는데, 남편 클레이보다 아내 어맨다가 더욱더 그러하다. 어찌어찌 G. H.(흑인 부부에서 남편 쪽)와 루스(아내)를 집에 들이긴 했는데, 과연 이들을 믿어도 될지, 그들이 ‘뒤로하고’ 온 세상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맨다와 클레이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가 원작 소설보다 나았다. 내가 정말 웬만해서는 원작인 책을 ‘기본’, ‘원전’으로 여기고 이걸 얼마나 잘 살렸느냐로 영화를 판단하는 편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건 책이 조금 별로였다. 뭔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뭔지 알 수는 없고, 또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건 또 너무 늦다. 책이나 영화나 결말은 똑같은데 책은 사건이 너무 늦게 시작해서 그 전까지 ‘빌드업’이 너무 쓸데없이 느리다는 느낌을 준다.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출판사 제공 카드 리뷰에 보면 휴대폰과 인터넷이 먹통이 되고 TV에는 긴급 상황이라는 단어만 뜰 정도로 위급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나오고, 이상한 자연 현상이 벌어질 뿐 아니라 아들은 갑자기 치아가 빠지는 공포스러운 상황까지 귀띔해 주고 있다. 그 와중에 딸은 어디로 간 건지 사라지고. 그래서 이 뒤에 뭔가 더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사실 카드 리뷰에서 한 80%는 다 말해 준 거였다. 이럴 수가!
전(前)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여름에 읽을 책으로 추천하기도 했고, 영화는 아예 버락과 미셸 오바마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이 소설 속 이야기에 웬만한 가능성이 있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종이라는 주제도 다루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내가 보기에 이 인종간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은근해서 그렇게 엄청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히 있긴 있는데, 어맨다나 클레이가 전면에 대놓고 ‘쟤네가 흑인이라서 이 집주인이라는 말 못 믿겠어!’라고 하지도 않고, G. H.나 루스가 ‘우리가 흑인이라서 못 믿겠다는 건가요?’ 하고 따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은근한 게 저자의 의도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쎄,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약하게 나갈 필요가 있었을까? 어쨌거나 인종이라는 주제가 언급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안녕 조설린—” 전화기가 발신자를 알려주면서부터 낭만이 사라졌다. 어맨다는 거래처 관리팀장이고 조설린은 거래처 관리 매니저, 현대 직장 용어로는 어맨다에게 속한 세 보고자 중 한 명이었다. 조설린은 부모가 한국인이었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는데, 어맨다는 돌려 말하는 이 여자의 화법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너무 인종차별적인 생각이어서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릴 죽인다면?” 어맨다가 느끼기에 남편은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왜 우릴 죽여?”
좀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람이 사람 죽이는 이유가 뭐겠어? 나야 모르지. 악마 숭배 의식? 이상한 페티시? 복수? 몰라!”
클레이가 웃었다. “이 사람들은 우릴 죽이러 온 게 아니야.”
“뉴스도 안 봐?”
“이런 게 뉴스에 나왔어? 늙은 흑인 살인자들이 롱아일랜드에서 돌아다니다가 순진한 피서객을 해친대?”
“무슨 증거라도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난 그 사람들 차 소리도 못 들었어. 당신은 들었어?”
“못 들었지.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부니까. 우린 텔레비전 보고 있었고. 그냥 우리가 못 들은 거 아니겠어?”
“아니면 일부러 몰래 왔을 수도 있지. 왜냐면…… 모르겠어. 우리 목을 찌르려고.”
“우리 좀 침착하게—”
“이건 사기야.”
어맨다가 아직도 그녀에게 팔을 올리고 안도감으로 멍해져 있던 남편에게서 몸을 떼고 G. H.를 들여다보았다. “저, 덴절 워싱턴이랑 좀 닮으셨어요.”
G. H.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게다가 이 말을 들은 게 처음도 아니었다.
“누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게다가 성이 워싱턴이라니! 친척이에요?” 어맨다가 남편을 보았다. “성함이 조지 워싱턴이시래. 몰라—죄송해요, 실례했어요.” 그녀가 웃었고, 그들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인용문은 약간 애매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흑인이기에 조금 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과 의심이 강해진 거라고 본다. 같은 백인 부부였다면 어맨다가 특히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지는 않았을지도.
소설에서는 흑인 ‘부부’로 나오는 G. H.와 루스가 영화에서는 아빠와 딸로 설정이 바뀌었다. 전쟁일지 테러인지 모르겠는 끔찍한 상황이 닥쳤을 때라도 ‘어쨌든 온전한 가족이 뭉쳐 있는 상태(어맨다와 클레이 부부 및 아들과 딸)’와 ‘한 명(엄마)가 빠진 상태(G. H.와 루스)’를 비교해서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G. H.의 직업도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조금 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설정되었고, 어맨다와 클레이보다 확실히 G. H. 쪽이 더 수입이 많은 쪽, 진짜 부유한 중산층에 가까울 거라는 점, 그래서 ‘인종’이라는 면에서 보면 어맨다와 클레이가 우위를 점하는 것 같지만(물론 인종차별적인 사고에서만 그렇겠지), 사실은 G. H.네가 더욱 부유하고 그래서 이 어맨다와 클레이네 가족은 그 아래에 있다는 점을 더 확실히 보여 준다. 애초에 소설에서도 G. H.와 루스는 필하모닉 공연을 보러 갔다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생기자 빠져나와 근교에 있는 이 집(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 주는 집)에 온 것이다. 어맨다와 클레이는 이 집을 잠시 빌려서 지낼 뿐, G. H.네가 원한다면 그 집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G. H.는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기 때문에 비용의 절반을 환불해 주겠다고 하는데… 아니, 원래 흑인들이 살던 곳에 백인들이 살러 왔는데 흑인들이 다시 나가라고 한다? 백인은 이를 거부하고? 이거 아메리카 대륙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짜잔, 인종간 갈등에 대한 비유가 여기 또 있었습니다! 아, 영화에 보면 한 유조선이 해변가에 와서 부딪치는데, 이 유조선에는 ‘White Lion’이라는 선명(船名)이 쓰여 있다. ‘White Lion’은 아프리카 노예들을 식민지로 실어온 첫 번째 사나포선의 이름이다(위키페디아 페이지 참고). 이것도 인종간의 갈등이라는 주제에 기여하는 작은 세부 사항 중 하나다.
솔직히 결말만 따지고 보면 둘 다 똑같이 비현실적인데 그래도 영화는 소설에서 흐릿하게, 막연하게만 묘사하던 걸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고 묘사해서 좋았다. 영화 쪽이 좀 더 ‘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진짜 무섭겠다!’ 하는 느낌이 있달까. 소설에서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겠는 것도 무섭긴 한데 영화는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무섭달까. 게다가 아치의 이가 숭덩숭덩 빠지는 걸 글로 읽는 거랑 진짜 영상으로 보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지요… 나는 이 장면 보다가 헛구역질까지 했다. 엄청 기괴한 건 아닌데 내가 이거 볼 때 기가 허했는지 정말 너무 징그럽게 와 닿아서… 😵
영화가 소설보다 더 나은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영화는 성적인 느낌이 그래도 좀 덜했다는 거. 이상하게 작가가 휴가에 대한 뭔가 로망이 있는지 ‘휴가는 사람을 쉽게 꼴리게 한다.’라고 하기도 하고, 전지적 작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인 아이들을 약간 성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영화 속 아치가 루스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루스도 (대학 교수인) 클레이에게 ‘당신 학생이랑 자 봤냐’ 같은 성적인 말을 하기도 하는데(그래 놓고 나중에 자기 아빠 G. H.한테 그 남자가 자기랑 자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무섭다는 식으로 말한다. 애초에 성적인 멘트 날린 건 너잖아?) 적어도 루스는 아직 어려서(나이는 대학생 정도로 추측) 성급하고 톡 쏘는 면이 있다고 받아들일 여지나 있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왜 그런 글을 쓰신 건가요?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영화가 나았던 몇 안 되는 드문 경우였다. 영화는 시작한 지 15분 만에 유조선이 해변에 와서 쿵 부딪치는 데서 이미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느낌을 확 줘서 좋았다. 소설은 내가 보기에 ‘진짜로 뭔 일 난 거 아냐?’라고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는 느낌… 하지만 취향에 따라 다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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