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무려 132쪽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 나의 사랑스러운 이웃님이 읽으시는 걸 보고 나도 따라서 읽었다. 내가 보기엔 큰 갈등이나 사건 없이 소소한 이야기였는데, 마침 극 중 배경이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아주 시기적절하게 잘 읽었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빌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무려 네 명의 딸과, 부유하지는 않아도 소소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크리스마스 즈음 해서 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창고에 갇혀 있던 한 어린아이를 보게 된다. 어르고 달래서 창고에서 나오게 해 수녀원의 수녀님들에게 아이를 맡겼지만, 한동안 그 아이가 눈에 밟혀 결국엔 그 아이를 다시 찾아서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짧은 소설이라 이야기는 이게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수녀원을 맡아 관리하는 선한목자수녀회는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직업 여학교도 운영했다. 또 수녀원에서는 세탁소도 겸업했다. 직업학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지만, 세탁소는 평판이 좋았다.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요양원, 병원, 사제들, 부유한 집에서는 전부 세탁물을 거기로 보냈다. 사람들이 말하길 침대보 더미든 손수건 몇 장이든 거기로 보내면 새것처럼 깨끗해져서 돌아온다고 했다.
그곳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직업학교에 있는 여자들은 알려진 것처럼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어서 교화를 받는 중이라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거라고 하기도 했다. 동네 간호사가 말하길, 호출을 받아 수녀원에 가서 열다섯 살 아이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빨래통 앞에 서서 너무 오래 일한 탓에 정맥류가 생겼더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뼈 빠지게 일하는 쪽은 수녀님들이라고, 그들이 아란 패턴 스웨터를 뜨고 구슬을 꿰어 묵주를 만들어 수출한다고, 정말 마음 좋은 분들이지만 눈에 문제가 생겨 고생이라고, 수녀님들은 말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할 수 있게 되어 있고 한나절 동안 빵과 버터 외에는 아무것도 안 먹다가 일을 마친 다음에야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이 그냥 모자 보호소라고, 가난한 집의 결혼 안 한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가족이 미혼모를 그곳에 보내 숨기고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는 부유한 미국인에게 입양시키거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고 그렇게 외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수녀들이 상당한 돈을 챙긴다고, 그게 수녀원에서 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 이야기를 다 하고 그중 절반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 동네에는 할 일 없는 사람도 많고 온갖 뒷소문도 넘쳐났다.
나는 이 책을 예전에 어딘가에서 소개받은 적이 있어서, 이 소설이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은폐, 감금, 강제 노역 등)에 기반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짧은 분량 안에 어떻게 그 사건들의 전모를 다 밝히려나 생각했더랬다. 사실은 전혀 안 그랬다. ‘그 수녀원의 비밀~’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것들이 암시되기는 하는데 정확히 어떤 구조로 그런 일이 돌아가고 있었는지, 경찰이 출동해 관련자들을 심문한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약간 잘못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당신도 그건 잘 알겠지.”
강한 타격은 아니었으나, 그때까지 아일린과 같이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당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아일린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그 애들 부모는 애들을 멋대로 풀어놨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모른 척 등을 돌려버렸겠지. 자식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미시즈 윌슨이 우리처럼 생각하고 걱정할 게 많았겠어?” 아일린이 말했다. “그 큰 집에서 연금 받으면서 편히 지내는 데다가 농장도 있고 일은 당신 어머니하고 네드가 다 해줬는데.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아니었냐고.”
펄롱은 자기 아버지를 모르는 채, 엄마의 고용주 미시즈 윌슨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타락한 여자들’이라는 소리가 있는 수녀원의 여자들에게 동정적이다. 반면에 같은 여자인 아일린은 ‘그런 여자들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며 거리를 긋는 모습을 보인다. 따지고 보면 펄롱이 결론적으로는 선한 일을 한 것이 맞는데, 나는 심적으로 아일린에게 더욱 공감한달까, 그녀를 비난하기 어려웠다. 펄롱은 남자라서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정숙해야 한다, 몸가짐이 발라야 한다는 여성 혐오적인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 그런 게 내면화된 상태에서 내 평판(내가 정숙한 여자인지에 관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잘 처신하면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다’라는, 다소 피해자를 탓하는 것 같은 사고방식도 아일린 같은 소시민에게는 ‘이렇게만 하면 나도 괜찮을 거다’라는, 일종의 효능감 또는 통제감을 주는 역할을 할 거고. 아일린도 여성 혐오라는 큰 체제 안에서 피해자였기에, 펄롱처럼 곧바로 그 여자들을 동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나라도 펄롱처럼 아이를 구해서 집에 데려오는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첫째, 나는 겁이 많은 소시민이요, 둘째,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키울 생각도 없다. 기껏해야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가 나에게는 최선 아니었을까. 경찰이 그 일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글쎄, 그건 또 경찰의 문제가 되겠지.
책 끝에 ‘옮긴이의 글’을 보니 작가가 첫 문단부터 엄청 의미를 꾹꾹 눌러담아 쓴 게 보였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이 소설의 첫 문단이다. 첫 문단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에 대해 클레어 키건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북슬북슬하다’, ‘끈’, ‘흑맥주’, ‘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의 암시를 의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독자가 처음에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일지라도 도입 부분에서 어떤 것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첫 문단이 적절하게 느껴지고 이어질 이야기를 암시한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저는 두 번 읽어서 결말 부분이 앞으로 밀려와 다시 서사가 한 바퀴 돌아가기 전에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번역가님은 이렇게 세세하게 주문과 설명을 받아서 번역을 하셨다고. 와, 진짜 뿌듯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너무 좋았을 것 같다. 문학 작품 번역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걸 이렇게 하나하나 조언을 받아 가며 할 수 있다니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 의도가 담긴 조언 글을 나도 읽어 보고 싶다. 그러면 비유 하나하나, 언어 구조에 담긴 의미를 다 이해해 가며 읽을 수 있을 텐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는데, 무슨 문학 작품 읽는 것까지 수능 국어 또는 대학교 전공 수업 공부하는 것처럼 하려고 하는지 나 자신에게 환멸이 느껴졌다. 꼼꼼하게 읽는 건 좋지만 그렇게까지 공부하며 읽듯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성실함이 즐거움을 망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킬리언 머피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도 있다. 이웃님은 이것까지 보셨다고 해서 나도 따라서 봤다. 소설에 충실하게 잘 만들었더라. 영화까지 보고 나니 왜 이 소설을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언급 없이, 허구의 인물을 가지고 썼는지는 알 것 같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발굴해 진실을 밝히는 것도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겠으나, 클레어 키건은 그 과정에서 상처받을 수도 있는 실존 인물들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소소하지만 울림 있는 소설을 원하는 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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