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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뮤리얼 스파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by Jaime Chung 2026.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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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뮤리얼 스파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스코틀랜드 작가 뮤리얼 스파크의 대표작 중 하나. 매기 스미스가 제목에도 있는 진 브로디 선생 역으로 분한, 동명의 영화 <The Prime of Miss Jean Brodie(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1969)의 원작이기도 하다.

 

진 브로디 선생은 자신이 가르친 몇몇 여학생들을 철저하게 자기 편으로 ‘교육’시켜서 자기 ‘시녀’들로 만든다. 이들은 성장하고 나서야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결국 이들 중 한 명이 그녀를 ‘배신’하고 만다. 간단하게 이렇게 두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인데, 읽다 보며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왜 이 브로디 선생이, 작가 소개 말마따나 ‘일종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걸까?

 

클로드에게 물어보니 시대적 타이밍(1960년 출간 당시는 권위에 대한 의문, 개인의 자유, 교육의 목적 같은 주제들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였던 시기), 원형적 매력(’카리스마 넘치지만 위험한 스승’이라는 보편적인 유형을 극도로 선명하게 구현), 그리고 도덕적 복잡성(단순히 영웅이나 악당으로 분류할 수 없음) 등의 요소가 겹쳐진 결과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영화에서 진 브로디 선생 역을 맡은 매기 스미스 여사의 뛰어난 연기도 이 캐릭터의 카리스마에 기여했을 거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인물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적어도 대중의 큰 공감에 기반한 인물이라고 보기엔 어렵지 않나 싶다. 차라리 코미디언 강유미가 연기한 중년 ‘남미새’ 같은 캐릭터는 대중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있지만, 브로디 선생 같은 인물 어디서 보신 분? 보수적인 여학교에서 파시즘을 가르치는 여선생? 자기 시녀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자기 사상을 주입하는 여선생? 자기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자기 파벌을 만들어서 대리고 다니는 여선생? 에이, 차라리 파벌 만들기 좋아하는 남자라면 모를까.

 

읽는 내내 나는 브로디 선생이 참 짜친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일 때부터 시작해서 이 학생들이 자라 성인이 된 시기까지 다루는데 브로디 선생은 이 아이들에게 자기 연애 이야기(첫사랑인 휴부터 시작해 같은 학교 선생인 로더 선생과 로이드 선생들까지!)를 늘어놓는다. 수업도 제대로 안 하고 사담을 늘어놓는 브로디 선생이 파시즘을 아이들에게 주입했다는 혐의로 잘리기까지 오래 걸린 게 신기할 정도다. 제목에도 나오는 ‘전성기’는 브로디 선생의 입버릇인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브로디 선생 본인만이 알 것이다. 또한 자기 팬들 무리를 ‘크림 중의 크림’(대충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이라고 부르는데 그냥 자기 무수리들이니까 추어올려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방금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브로디 선생은 같은 학교 선생인 로더 선생과 로이드 선생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있다. 미술 선생인 로이드 선생은 유부남이어서, 브로디 선생은 그를 (자기 말마따나) ‘단념’하고 로더 선생과 사귄다. 이런 얘기를 다 자기 학생들에게 하는 게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학생들은 이제 막 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 나잇대 아이들답게 둘이 잤을까 안 잤을까, 둘의 사랑은 어떨까 상상하며 로맨스 소설을 지어내기까지 한다. 이거야 뭐, 약간 께름칙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걸 굳이 학생에게 털어놓은 브로디 선생 잘못이니 누굴 탓할까.

 

그리고 이 책에서 제일 짜치는 건, 이 브로디 선생의 무리 중 한 명인 로즈 스탠리라는 학생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로즈가 아마 이 중에 제일 예쁜 아이인 것 같은데, 이 특정한 학생을 설명할 때마다 꼭 성적 매력에 대한 묘사가 뒤따른다. 심지어 맨 처음에 소개될 때 멘트도 이렇다. “로즈 스탠리는 성적 매력으로 유명했다.” 이 묘사가 나올 때 얘네는 기껏해야 열여섯 살이다. 미성년자 얘기를 하는데 왜 굳이 성적 매력을 언급하냐고! 로즈에 대한 이런 서술도 있다. ““이번엔 어떤 무리죠?” 섹시하기로 유명한 로즈의 질문이었다.” ““조용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의미합니다, 선생님.” 육 년 뒤 성적 매력으로 유명해질 로즈 스탠리가 대답했다.” 애가 커서 섹시한 여자가 되었을 수는 있는데 그걸 굳이 애가 미성년자인 시점에서 말해야 할까? 로즈만 언급됐다 하면 자꾸 섹시 어쩌고 해대서, 뮤리얼 스파크가 썼다는 걸 모르고 읽었으면 늙은 남자가 쓴 줄 알았을 거다. 1960년대의 성인지 감수성은 심지어 여성 작가도 이런 점에 무지하게 만든다…

 

원서도 짧은데 내가 읽은 번역본도 (종이책 기준) 188쪽에 불과하다. 200쪽도 안 되는 부담없는 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지만,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조종하고 싶어 하는, 정말 찌질한 성인 여성이라는 소재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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