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Your Monster(유어 몬스터)>(2024)

겉은 공포 영화,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건 본질적으로 한 여자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로라(멜리사 바레라 분)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최근엔 수술까지 받았다. 로라의 남자 친구 제이콥(에드먼드 도노반 분)은 로라의 수술 직후 ‘더 이상 네 곁에 있을 수 없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로라가 퇴원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건 그나마 하나 있는 친구 메이지(케일라 포스터 분). 메이지는 로라를 엄마네 집(엄마는 여행하느라 집에 안 계시다)에서 데려다주고 나서, 제이컵이 만드는 뮤지컬 <House of Good Women(착한 여자 기숙사)>에 오디션을 보러 가야 한다며 가 버렸다. 이 뮤지컬로 말할 것 같으면, 로라가 제이콥과 사귀는 5년간 제이콥이 곡을 쓰고, 각본을 쓰는 동안 로라가 상당히 많이 도와준 작품이다. 애초에 이 뮤지컬의 여주인 로리 프랜시스(심지어 캐릭터 이름도 로라 프랭코와 비슷하다) 역은 로라를 위해 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제이콥도 원래는 이 역을 로라에게 맡겼더랬다. 로라가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그런데 로라가 이제 수술받고 퇴원하고 나왔더니, 자기에겐 일언반구도 없이 제이콥이 오디션을 열어 버린 것이다. 로라는 그 사실에 엉엉 울다가, 자기 방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로라의 옷장에 살던 ‘괴물(토미 드웨이 분)’이었는데…
괴물 분장도 못생겨 보일지언정 무섭지는 않다. 이 괴물은 로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 스스로를 집어넣고 살기 위해 외면해야 했던 그의 분노를 상징한다. 로라는 이 괴물을 다시 만남으로써 자기가 받는 거지 같은 취급에 대해 분노하고, 스스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건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한 여성이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일부분인 ‘분노’를 다시 되찾음으로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여성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제이콥이라는 자식은 그야말로 개자식의 전형이다. 그는 로라가 암(정확히 어떤 종류의 암인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수술 후 붙이는 커다란 반창고가 로라의 배에 붙어 있긴 하다) 수술을 받고 난 직후 떠났다. 이런 얘기를 할 때 늘 언급되는, ‘여성 암 환자는 남성 암 환자보다 이혼율이 4배 더 높다’라는 보도(YTN 뉴스)는 거짓말이 아니다. 이 뉴스에서 지적하듯, 암 환자는 “아픈데 살림과 자녀 교육까지” 떠맡는다. 로라와 제이콥 사이에 애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애가 있었으면 로라가 그 애까지 돌봤어야 했을 거다. 게다가 이놈은 그렇게 ‘헤어져’ 놓고(이걸 두 성인이 합의한 ‘이별’이라고 볼 수 있다면 말이지) 또 다른 여배우 재키(메건 파히 분)에게 작업을 건다. 나중에 밝혀지듯, 재키는 제이콥이랑 로라가 사귀었던 것도 몰랐고, 이 뮤지컬이 로라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몰랐다. 자기가 여주로 캐스팅되었는데 감독이란 자가 작업을 거니까 거절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적당히 맞장구 쳐 줬던 거였다. 이거 직장 내 괴롭힘 아니냐? 재키가 딱히 제이콥에게 엄청난 호감을 가지고 같이 시시덕거린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대시를 받은 것뿐인데. 어쨌거나 제이콥 이 자식은 그런 주제에 또 로라의 친구(였던) 메이지랑 같이 잤다. 진짜 개놈들은 한 가지만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개자식 🤬 이러니 로라가 화를 안 낼 수가 없다.
제이콥의 위선은 무려 <House of Good Women(착한 여자 기숙사)>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만드는 주제에, 첫 대본 읽기 모임에서부터 ‘이 뮤지컬은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억압받을 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데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 뮤지컬은 대략 여주 로리 프랜시스가 ‘베이커 씨의 착한 여자 신부 수업 학교(Mr Baker’s Good Women Finishing School)’에 보내진 후 ‘착한 여자’라는 것이 사실은 여성들을 억압하는 수단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는 내용인 듯하다(자세히는 안 나오지만 추측해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이걸 로라의 도움을 많이 받아 완성한 주제에 자기가 뭐 여성을 대단히 돕는 지지자인 척하는 위선이라니! 진짜 여자들을 위한 작품이라면 왜 네가 그렇게 나서서 거들먹거리는데?
메이지도 사실 로라를 좋아해서, 로라를 아껴서 그의 친구로 지냈다기보다는, 그냥 로라가 쉬우니까 내킬 때만 로라 곁에 있었던 것뿐이다. 퇴원한 로라를 집에 데려다 주자마자 오디션 보러 간 일이나, 며칠 지나서 또 로라의 오디션에 같이 가 주나 했더니 그냥 자기 가라테 수업 있다고 휭 하고 가 버리는 일 등. 애초에 로라를 진짜 친구로 생각했으면 로라의 남친(이었던 남자)이랑 안 잤겠지.
사실 로라는 괴물이 ‘수술 직후에 그놈이 널 그렇게 버린 건 하나도 안 괜찮아!’라고 여러 번 말해 주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는지도 몰랐다. 자기는 그래도 싸다고 믿었던 로라를 보니 참 안타까웠다. 나는 자존감이 낮다는 말을 아무 데나 붙여서 모든 걸 자존감 탓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로라는 정말 평생을 착한 여자 컴플렉스를 떠앉고 살며 자존감도 개나 줘 버렸다. 그러니 로라에게 괴물이 필요했다는 것은 말해 뭐해. 로라가 리허설 때 제이콥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준 거 너무 속시원했다. 역시, 역으로 지랄을 해줘야 사람들이 자기 일인 줄 안다(’역지사지’의 뜻 모르시는 분 없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다시 무너져 내린다. 제이콥과 사무실에서 단둘이 있을 때 제이콥 욕을 하나 싶더니, 다시 ‘너를 싫어하는 내가 싫어’, ‘어떻게 네가 나를 사랑하기를 그만둔 거야?’ 같은 말을 하면서. 아무렴, 평생 쌓아온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어디 한 번에 해소가 되겠느냐며… 보는 입장에서 좀 속상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기가 막힌 복수를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았다. 그 복수가 무엇인지까지는 스포일러 하지 않겠다. 하지만 통쾌하니까 꼭 끝까지 봐 주시길.
여성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쓴 영화답게, 여성을 다루기 쉽고, 이용해 먹기 쉬운 ‘착한 여자’로 남아 있게 하려는 주변 사람들(제이콥이나 메이지 둘 다)의 폭력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잘 표현했다. 또한 결국 로라가 이런 자들에게 놀아나지 않고 자신이 받아 온 푸대접에 분노를 발산하는 결말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냥 그런 공포 영화, 로맨틱 코미디라 생각하지 마시고 이 영화에도 한번 기회를 줘 보시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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