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복길, <펑펑>

내가 재미있게 읽은 <아무튼, 예능>의 저자 복길이 쓴 케이팝 에세이. 이 미친 에세이를 도대체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케이팝을 좋아하는 분들께 이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덩달아 겁이 난다. 왜냐하면… ‘들어가며’부터 이런 무시무시한 문단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시작조차 하지 말아야 했단 얘기다.
하지만 내가 바람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면 여기까지 왔겠는가. 여기에서 ‘여기’란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을 ‘애미’라 부르며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인간들, ‘나이 처먹고 좆돌 빠는 초고도 비만 히키앰생줌’이란 말을 인사처럼 하는 인간들, “정국과 윈터의 열애설은 민희진이 사주한 것”이란 댓글을 쓰는 인간들, 그걸 보고 헛웃음 짓는 대신 그런 주장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분석하는 인간들, “포타 속 호모가 좋은 건데 진짜 끼순이를 데려다 팔면 어떡하냐”라고 낄낄대는 인간들, “올콘 가고 팬싸 갈 돈으로 엔비디아 주식 샀으면 네가 아직도 케이팝 좋아했겠니?”라는 말을 무당처럼 하는 인간들……. 여기에서 ‘여기’란 걔네가 한데 모여 있는 이상한 거울 방.
아니… 어떻게 이런 글이 X(구 트위터)가 아니라 정식 출판물에 있는 것인가. 다소 충격적인 워딩을 적당히 넘어가 줄 수 있다면, 그다음에 오는 것은 무척 웃기고, 공감되며, 때로는 향수에 젖게 만드는 케이팝 수다다. 케이팝 덕질 경력이 상당한 저자가 푸는 ‘썰’은 1990년대(심신, 김건모부터 시작해), 2000년대(원타임, 샤크라 등), 2010년대(원더걸스, 태양 등)를 지나 2020년(아이유, 디핵 등)까지 다양한 시대를 포괄한다. 1부부터 4부까지 모두 한 꼭지는 한 아티스트의 곡을 ‘주제’로 삼는데 어느 하나 웃기지 않은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신화창조’ 1기 회원이라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친구를 두고 있으므로 신화의 <Perfect Man>을 다룬 꼭지를 잠시 보여드리겠다.
그러나 신화를 좋아하던 애들은 조금 달랐다. 뭐랄까……. 그들은 조금 더 욕망에 충실했다. ‘오빠’들의 존재가 거룩해지는 것보단 그냥 ‘오빠’들이 더 쿨하고 쌔끈한 모습으로 등장하길 바라는 애들 같았다. god 팬들이 천사 같은 손호영에게서 ‘왕엄마’의 따스함을 느끼며 우는 동안 신화 팬들은 이민우를 매일 오토바이에 태우며 그에게 ‘쿨 워터’ 향을 입혔고, 팬픽 세상 속에서 신혜성을 허리가 가늘고 얼굴이 수척한 미망인으로 만들었으며, 김동완이 과도한 헬스로 몸을 키우지 못하도록 ‘고나리’를 했고, 에릭과 전진이 머리를 밀 때마다 그들과 싸우고자 했다. 모두가 ‘짱’을 외칠 때 ‘산’이라는 뜻 모를 단어를 붙이는 것도, 모두가 동그란 풍선을 들고 응원할 때 경광봉이 생각나는 주황색 막대풍선을 흔드는 것도 정말 모든 게 이상했다.
아니, 그냥 신화라는 그룹 자체가 좀 이상했다. 아이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우상이거나,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가족이거나, 달콤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이어야 했던 때 신화는 그냥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오빠들’이었다. 신화라는 그룹의 노선을 결정하고 그들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확립한 3집 이후부터 그들의 앨범은 항상 인터넷소설 같은 구성이었다. 이민우가 껄렁대며 나타나 자기가 찜한 여자를 향해 ‘널 내가 갖겠다’라는 무례한 선포를 한다. 그럼 인상 좋은 김동완이 ‘야, 야, 왜 그래’ 하며 이민우를 진정시키고, 그때 반대편에 있던 전진이 씩씩거리며 등장해 ‘아니! 얜 내가 가질 건데!’를 외친다. 그러면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에릭이 조용히 나타나 전진과 이민우를 한 대씩 때린 뒤 알 수 없는 말을 영어로 읊조린다. (잘 들어보면 유명한 팝송 가사다.) 그 난리통에 눈치를 보고 있던 앤디가 장미를 들고 나타나 고백하면, 책상에 엎드린 채 모든 소란을 참고 있던 예민한 반장 신혜성이 어두운 기운을 뿜으며 크레셴도 샤우팅을 발사한다. 신화의 노래에는 늘 여섯 명의 남자들과 지독하게 얽히는 내가 있었고, 그 낭만을 대체해줄 존재는 이 세상에 없었다.
한때 신화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이 분석을 반박할 수 없다…
내가 모든 케이팝 노래들을 아는 것은 아니라서 필연적으로 내가 모르고 공감하지 못하는 꼭지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들조차 재미있게 만드는 게 저자의 재능이다. 예를 들어 이걸 보시라. 나는 동방신기 노래는 2인 체제로 돌입한 이후의 히트곡들밖에 모른다. 그는 동방신기의 <Rising Sun(순수)>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Rising Sun(순수)〉의 장르는 최소 세 가지 형식의 음악이 혼합된 얼터너티브 록이다. 1절은 교회 오페라로 시작한다. 믹키유천이 성 밖의 죄인들을 향해 “참회하라! 반성하라!”를 외치면 뒤이어 유노윤호가 눈을 부릅뜨고 달려와 “참회하라! 반성하라!”를 따라 외치면서 믹키유천의 멱살을 잡아 흔든다. (마치 훗날 벌어질 일의 복선처럼…….) 서로의 눈에 별이 보일 때쯤 막이 바뀐다. 이번엔 담벼락에 앉은 시아준수가 가련한 목소리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한다. “힘을 잃어버린 날개……. 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날들…….” (어쩌면 시아준수는 이때부터 뮤지컬 스타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올려다본 하늘에서 영웅재중이 메시아처럼 등장해 일갈한다. “영원에 남겨진 나를 찾는가아아아아아아!” 각 멤버가 맡은 파트마다 신의 분노와 인간의 참회가 서려 있다.
메시아의 샤우팅 이후 노래는 투쟁가로 급변한다. “나를 닮아 가슴안에 가득 차 커져가는 innocent 불꽃은 밝게 타오르게 마지막이 찬란한 노을처럼.” 일출을 말했다가 노을을 말했다가 해를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이 대목은 어떤 혁명의 노래보다도 가슴을 붉게 만든다. 그렇게 투쟁심이 절정에 도달할 때쯤 노래는 돌연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다는 듯 혼돈의 끝을 찾아 헤맨다. 그 독백은 이국적인 타악기와 빨라진 비트 덕분에 마치 세상의 재앙을 극복하려는 어느 부족의 기도 같다. 망토를 벗은 주술사 최강창민이 세상 모든 액운을 물리치듯 “라이징써어어어어어어언!” 하고 비명을 지르면 끝없이 분열하던 노래 속 자아가 폭발하듯 소멸한다.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식은땀이 흐르는 노래가 또 있을까? 나는 마치 악몽을 꾸듯이 이 노래를 듣고, 들을 때마다 약간의 우스꽝스러움을 겸비한 비장미에 감격하고 만다. 기도하고, 저주하고, 중얼거리다 절규하는 노래. 무수히 생략된 주어의 자리에 세상 모든 죄인을 데려다놓고 무릎을 꿇리는 노래. 대체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하늘에 외쳐도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참회만을 강요하는 노래. 동방신기 멤버들의 지난 논란들이 침전되어 결국 케이팝과 케이팝이 떠안은 모든 죄를 은유하게 된 분노와 슬픔의 광시곡.
내가 제일 공감하는 문단을 꼽으라면 이거다. 케이팝이라고 하면 단연코 덕질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분노와 슬픔의 대상이기도 하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만큼 나를 화나게도 하고 슬프게도 했기에. 애증이랄까. 그들은 너무너무 멋지지만, 동시에 케이팝이 세워진 체계 자체에 결점이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의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 태도를 그저 웃고넘어갈 수가 없다… 웃긴데 안 웃겨…
나는 줄곧 케이팝의 즐거움을 예찬하고 있다. 동시에 나는 줄곧 케이팝의 유해함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케이팝에 대한 내 입장은 “사랑받아야 마땅하나 해로우니 멀리하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하……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실컷 매혹당한 뒤에 칼로 허벅지를 찌르자는 말인가? 그게 아니면 아침엔 사랑하고 저녁엔 미워하자는 건가? 대체…… 뭔가? 나는 줄곧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가?
저자가 케이팝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로 저자의 삶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그의 개인적 삶에서 나온 글에서는 그의 인생이 거쳐온 슬픔과 고통이 엿보인다. 근데 그것도 은은하게 웃기다고 하면… 저자가 기뻐하려나.
원인 모를 알레르기로 오랫동안 안과를 다니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삶의 질 뚝뚝 떨어뜨리는 병’이란 글에서 안과 질환은 3위를 기록했는데, 1위와 2위에 해당하는 병도 앓는 나로서는 3위에 머물러주는 이 눈병이 참으로 고맙다. 뭐…… 이렇게 자조하지 않아도 사실 난 원래 안과에 가는 걸 좋아했다. 거기선 대부분의 사람이 울고 있고, 그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쓰레기 집에 살지 않고 외출도 자주 하지만, 그 집에서 잃어버렸던 친구 관계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의 글을 누가 읽고 싶어 할까 싶어 나는 글에 친구를 종종 데려오는데, 그들도 나도 우리가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이건 잉, 나 친구 없어요 잉잉, 하는 푸념이 아니라 친구는 아니더라도 친구 비슷한 관계를 맺을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정신이 아프다는 이유로 ‘관계 자해’를 해서 사람들을 전부 끊어낸 사람도, 학창 시절 내내 왕따여서 ‘절친’이 없는 사람도, 고약한 성질 때문에 친구 관계가 자꾸 리셋되는 사람도 ‘이상적인 친구 찾기’를 멈추고 친구라는 것의 의미를 넓혀버리면 된다. 얼마나 넓어야 하느냐면…… 나의 경우, 한 번 스치듯 만난 사람까지 친구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렇게 계속 넓히다 보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내 반경에 들어오지 않을까? 좁히고 좁혔을 때 만날 수 있는 VIP 말고, 넓히고 넓힌 끝에 만날 수 있는 사람. 예컨대 더럽고, 가난하며, 병들고, 유별난 사람들. 그래서 내 ‘추구미’는 낙원상가다.
이건 감동적이기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케이돌을 덕질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는 이 에세이들에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총 40곡의 케이팝 노래 중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노래가 몇 곡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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