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베라 브로스골, <못생긴 제인 그리고 인어>

오랜만에 읽은 그래픽 노블. <못생긴 제인 그리고 인어>의 줄거리는 이렇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남은 제인은 부모님의 집을 탐욕스러운 당숙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여성이 독립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시대에 사는 미혼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인은 짝사랑해 왔던 청년 피터를 찾아간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제 얼굴 잘생긴 맛에 살고, 어부인 아빠를 도와 일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놈이다. 제인은 우리가 결혼하면 그는 아빠 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은 집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며 윈-윈 전략으로 결혼을 제안한다. 일을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의외로 쉽게 결혼 제안을 승낙하는 피터. 하지만 ‘너는 하루종일 머리 손질만 해도 된다’라는 제인의 말에 자기를 우습게 보는 거냐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가다가 바닷가에서 인어를 만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인어 로렐라이는 피터를 납치해 가는데…
제인의 이름 앞에 ‘호(號)’처럼 따라붙는 ‘못생긴(plain)’이라는 말은 이 사회가 보는 제인의 가치를 규정한다. 제인 본인도 자신이 미인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재미있는 (아니, 사실 하나도 재미없다) 점은 제인의 당숙도 “어차피 너나 나나 외모 쪽으로는 별 볼 일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동시에 “다행히도 남자에겐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며, 이 저택의 주인이 되면 아름다운 아내를 얼마든지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미(美)라는 기준에 오직 남성에게만 유하고, 여성에게는 박하다는 현실. 반면에 피터는 남자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에 깊이 심취해 있는데, 제인도 피터에게 청혼할 때 결국 잘생긴 남자를 골랐다는 게 흥미롭다(제인 왈, “아마 나는 네가 바라는 신붓감이 아니겠지. 난 예쁘지 않잖아. 넌 예쁜데. 넌 정말, 진짜 진짜 예뻐.”)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교훈은 훨씬 나중에 찾아오는데, 어쨌든 이야기 초반에는 못생긴 제인도 동네에서 가장 잘생긴 피터를 짝사랑하고 있다. 이 점은 못생기든 잘생기든/예쁘든 우리는 모두 타인의 미적 기준을 내면화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도 생각할 수 있고, 아니면 ‘어차피 남자들 내면이 거기서 거기인데 외모라도 봐줄 만 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저는 후자입니다).

제인에게 결혼은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다. (시대적 배경상) 여성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으니 제인은 결혼을 해야만 부모님 집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 제인은 그 구조 안에서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결국 엔딩도 너무 현실적인 게 아쉬웠다. 제인이 피터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하면서 용기, 지혜, 친절함을 발휘하는데, 결국 제인이 부모님의 저택 소유권을 당숙에게 잃지 않게 되는 건 제인이 모험을 하면서 어릴 적에 잃어버린 남동생 제이미를 찾아서라고? 어리긴 해도 제이미는 남자애니까 결국 여성이 스스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법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제이미가 등장함으로써 제이미가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뿐이잖아! 여자(애)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려고 이 그래픽 노블을 쓰고 그린 거 아닌가요, 작가님들? 너무 씁쓸한데요… 제인이 얼마나 용기가 있든, 얼마나 영리하든, 얼마나 큰 깨달음을 얻었든 그것과 상관없이 (작은) 남자가 띨롱 나와서 문제 해결이라니… 맥빠져. 물론, 제인이 자기 실수로 잃어버렸던 동생을 찾은 것은 무척 기쁘고 좋은 일이지만… 남자가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준다는 그 포인트가 마음에 안 드는 거라고! 마치 딸이 다섯이나 있는데 왜 자기 집안 재산을 딸들에게 물려줄 수 없냐고 속 터져 하던 (<오만과 편견>의) 베넷 부인, 또는 여자는 상주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삼촌을 상주로 세워야 했던 (세 자매 중 막내인) 고아성 씨 같은 심경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건, 제이미가 제인보다 특별히 더 능력이 있거나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인이 모험을 하면서 보여 준 능력이나 용기, 판단력을 보면 제인은 부모님의 재산을 관리할 사람으로서 충분하고도 남는데(게다가 제인이 누나니까 제이미보다 나이도 많다), 결국 법적 및 사회적 권리를 결정하는 것은 제인의 능력이 아니라 성별이다. 처음에는 제인이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결혼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저택을 잃게 된다는 설정을 보여 주니까 독자로서는 당연히 ‘제인이 못생긴 게 아니라는 자신감을 찾으면, 또는 내면이 외면보다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제인이 모험하는 걸 보면서 위기를 벗어나는 꾀, 지혜, 판단력에 감탄한다. ‘이제 제인이 성장했으니까 유산 문제도 멋지게 해결하겠지?’ 싶은 결말의 순간, 저자들은 독자들의 뒷통수를 세게 갈긴다. 제인이 아무리 용감하고 똑똑하고 유능해도 여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 결국 사회의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제인이 해낼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이게 책의 주제와 충돌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남이 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라’나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엥? 제인이 아무리 자신을 받아들여도 사회적 제도(여기에서는 상속법)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인이 자기 가치를 알고 받아들여도,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현타가 온다는 거다. 해피 엔딩은 해피 엔딩인데… 제인 능력으로 얻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서 반만 해피 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그래픽 노블이 300쪽 넘게 제인의 성장과 주체성을 보여준 뒤, 결국 남자아이 하나를 등장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게 허무하다고. 그래도 조금 더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오히려 이 결말이 개인의 성장만으로는 가부장적 제도를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책 뒤표지에 이 책이 받은 상의 목록이 나열돼 있는데, 왜 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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