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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Caro Claire Burke, <Yesteryear>

by Jaime Chung 2026.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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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Caro Claire Burke, <Yesteryear>

 

올해 가장 큰 이야깃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소설. 카로 클레어 버크의 <Yesteryear>는 놀랍게도 이 작가의 데뷔작인데도 출간 이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굉장히 현시대를 꼬집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탈리는 ‘트래드와이프(tradwife)’ 인플루언서이다(이게 뭔지 모른다면, 아래 본문을 참고하시라). 그는 큰 목장에서 소젖을 짜고, 닭을 키워 달걀을 얻으며, 빵이나 케이크 등을 직접 구우며, 아이 다섯을 데리고 사는 생활을 인스타그램에 전시 중이다. 그런 어느 날, 자신의 프로듀서였던 섀넌이 자기 남편 케일럽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탈리는 목가적인 환상을 파는 삶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어떤 면에선 그 환상을 직접 살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면 조금 이따가 부연하는 설명을 들어 보시라(스포일러 주의!).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농담 하나를 먼저 언급하고 싶다. <더 골든 걸스>(이 포스트 참고)에서 블랜치는 미국 남부 출신 여성으로, 이쪽 지역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미국 남북 전쟁 이전의 귀족적이고 풍요로운 (흑인 노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남부의 과거를 낭만적으로 보고 그리워하는 발언을 종종 한다. 어느 날은 블랜치가 또 그런 말을 하니까 톡톡 쏘는 입담을 가진 도로시가 이렇게 지적한다. “그래서, 얼마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건데, 블랜치? 여자로서 투표는 하고 싶은 거 맞지?(So how far back do you want to go, Blanche? Do you still want to be able to vote?)” 미국 기독교 극우 세력이 ‘남편과 나는 한몸이니 내 투표권을 포기해도 괜찮다’ 같은 개소리를 하는 이 현대 사회에(기사 참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농담이다. 과거가 그렇게 아름답고 살기 좋았다고? 당시 백인 남자들이나 그렇게 느꼈겠지. 흑인들도, 또는 백인 여성들도 과연 살기 좋다고 생각했을까? 이미 아시겠지만, 오늘 이야기할 책 제목이자 나탈리와 케일럽의 농장 이름인 ‘Yesteryear’는 구식 또는 문예체 표현으로 ‘지난날, 왕년’이라는 뜻이다.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이들, 이게 오늘 리뷰의 주제가 되겠다.

 

<Yesteryear>는 요즘 ‘트래드와이프’라는 구시대적 삶의 모습을 아름답고 마땅히 여성이 지켜야 할 것쯤으로 제시하는 인플루언서의 트렌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트래드와이프’란 그 명칭에서부터 느낌이 오겠지만, ‘전통적인(traditional)’ ‘아내(wife)’가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살림, 육아, 그리고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는, 그야말로 구시대적 여성상을 가리킨다. 유명 모델인 럭키 블루 스미스의 아내, 나라 스미스가 이 ‘트래드와이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기사 참고). 파스타를 만든다고 하면 시판되는 파스타면을 삶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아예 밀가루 반죽으로 파스타면을 직접 만들어서 파스타를 요리하고, 온갖 요리를 풀 메이크업과 명품 옷으로 꾸민 상태로 하며, 분명히 어떤 ‘환상’을 파는 이 인물을 그냥 ‘아, 옛날 방식으로 살면서 단란한 가정(스미스 가족은 애도 한 바가지 있다)을 꾸리고 사는 여자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아래에 어떤 저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나? ‘여자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여성혐오적 생각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유해한 콘텐츠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 나탈리가 꼭 그런 삶을 산다. 소설 초반에 나탈리는 이미 아이가 다섯이고, 여섯째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전일제 유모가 둘이나 있고, 농장의 일을 실질적으로 다 해내는 일꾼들도 몇십 명이나 있지만 나탈리는 고의적으로 이 사실을 숨긴다. 그들이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잡히지 않도록 피하고,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야 나탈리가 남편 케일럽을 도와 이 큰 농장을 잘 꾸려나간다는 환상을 팔 수가 있으니까. 대신에 자기 아이들은 자주 카메라에 노출시키며, 콘텐츠로도 활용한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라는 모티브가 드러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꼭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조명이나 각도, 촬영 후 편집 등을 통해 현실보다 훨씬 더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이는’ 것은 환상이고, 이런 환상은 돈이 된다.

 

현실은 나탈리가 대중들에게 공유하는 것과 무척 다르다. 남편 케일럽은 프로듀서 섀넌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는 잘생기고 멋진 카우보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잘하는 것도 없고, 잘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게으른 남자다. 그의 부모는 그가 하버드를 졸업한 이후 여기저기 일자리에 꽂아 주거나 비즈니스 스쿨이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그가 게을러서 망쳐버렸다. 그냥 무직으로 살다가(다행히 그의 아버지 더그가 정치인이라 집에 돈은 상당히 있다) 그를 ‘내 일생의 프로젝트’로 떠맡은 나탈리가 제안한대로, 농장을 운영하게 됐다. 그러면 자존(自存), 자립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이 보기에 무척 있어 보이고 멋져 보여서, 더그로서도 좀 체면이 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이 농장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소젖을 짜는 것뿐. 그것 외에 다른 농장 일들은 하기 싫어 해서 일꾼들에게 다 맡겨 버린다. 여성 혐오적인 인터넷상 남성 집단 ‘매노스피어(manosphere)’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나 한심한 인물이냐면, 그의 아버지 더그에게는 케일럽을 포함해 아들만 다섯이 있는데, 케일럽은 자기 형들이랑도(케일럽이 막내다) 잘 어울리지 못한다. 가족 행사가 있으면 형제들끼리 모여서 단란한 분위기를 연출할 법도 한데, 그러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형들은 케일럽을 빼고 자기네들끼리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갈 정도다. 세상에 얼마나 찌질하면 친형제들이랑도 섞이지를 못하는지. 그게 케일럽이라는 작자다.

나탈리의 본모습도 인스타그램에서 보여 주는 모습, ‘온라인 나탈리’와는 다르다. 아이는 줄줄이 소시지로 다섯이나 낳아 놨는데 이상하게 모성애랄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자기 고용인들을 무시하듯, 아이들도 무시하고 멍청하다고 속으로 비웃는다. 이런 여자가 하버드 출신이라면 믿으시겠는가. 나탈리는 ‘착한 기독교 여인’인 어머니(남편이 있었는데 남편과 ‘헤어진’ 후 혼자 두 딸을 키웠다. 자세한 사연은 소설을 참고하시라) 밑에서 자랐는데, 일찍 결혼해 애를 여럿 낳고 사는 동네 분위기에 질려서 일부러 집에서 먼 하버드에 진학했다. 그러면 이제 명문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페미니스트로 살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탈리는 여전히 ‘착한 기독교 여인’의 여성상을 가지고 산다. 그는 같은 방 룸메이트인 리나를 비롯해 하버드 여학생들을 문란하고 남자들을 증오하는 여자라고 여기며, 아이를 낳고 결혼하는 삶을 거부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기는 그런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리나는 지금쯤 이러이러하게 살고 있겠지’라며 그를 떠올리는 걸 보면, 안티야말로 팬보다 더 대상에게 큰 관심을 쏟는다는 진실을 잘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케일럽을 만나서 1학년 끝나자마자 결혼하고, 그다음에는 애를 낳고 키운다고 복학도 못한 건 너잖아, 나탈리…

 

나탈리가 여러 모로 정이 안 가고, 현실에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혐오적인 사상이 깊이 배어 있어서 자기 언니 애비게일이 술꾼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할 때는 자기 언니를 비웃고 조롱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 케일럽과 바람을 피운 상대인 섀넌이 나탈리의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나탈리의 삶과 정신이 무너져내릴 때, ‘정말 과연 나탈리가 그 정도로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왜냐하면, 어쨌든 나탈리는 정실 부인이고 못난 남편을 ‘캐리’해서 멀쩡한 사내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애썼으니까. 케일럽이 나탈리의 그런 노력을 고마워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람을 피운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나탈리가 섀넌의 목을 조르고 폭력을 행사한 것도 맞지만, 애초에 바람을 피운 너희가 나쁜 거잖아! 다른 독자들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고, 궁금하긴 하다. 섀넌의 폭로로 나탈리가 망하게 될 때 ‘아이고 고소하다!’라며 박수쳤을까…

 

내가 여태까지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게 있는데, 이게 또 사실 소설의 중요한 한 축이다. 나탈리가 남편과 프로듀서의 바람을 알게 된 이후, 어느 날 나탈리는 19세기, 서부 개척과 이주가 한창이던 시절 미국의 한 소박한 농장에서 깨어난다. 그곳에는 남편 케일럽을 닮은 남자, 나탈리에게 냉랭한 큰딸 메리, 엄마에게 정이 없는 아들 둘, 그리고 유일하게 나탈리에게 애정을 가지고 따르는 막내딸 매브가 있다. 뭐지? 마법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나? 아니면 누가 21세기의 나탈리를 일부러 그렇게 꾸민 촬영장 같은 곳에 데려다 놓았나? 독자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이 설정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든 이유였다. 구시대적 생활방식을 일부러 선택해서 전시하는 ‘트래드와이프’ 인플루언서가 진짜 과거로 가게 된다고? 진실은 읽다 보면 차차 밝혀지는데, 이게 진짜 소설의 크나큰 반전이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전 스포일러 주의!) 19세기 집처럼 만들어진 그곳은 섀넌의 폭로로 인해 사회적 체면도 잃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나탈리가 만든, 진짜 ‘옛날 스타일’ 농장이었다. 케일럽을 닮은 늙은 남자(‘Old Caleb’)은 실제로 나이가 든 케일럽이었다. 메리도, 두 아들도, 매브도 다 자기 자식이었다. 나탈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 농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 와중에 자기가 또 임신했다고, 이렇게 춥고 안전하지 못한 곳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벗어나려 한다. 나탈리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이때만큼은 일말의 진실을 기억해냈다고 할 수 있는데, 막내딸 매브가 이곳 농장에서 태어났을 때 산소가 부족해 위험 상황이 왔으나 차도 없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서 지적 장애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진실을 다시 기억해낸 나탈리는 매브에 대해 ‘가장 마지막으로 얻은 아이지만 가장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아이’라고 말하는데 이때 진짜 울컥했다. 매브 불쌍해… 엄마아빠가 ‘트래드와이프’ 어쩌고 하면서 구시대적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만 않았더라도, 병원에서 태어날 수만 있었더라도 적시에 의료진의 처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매브도 그렇게 이 망할 농장에서 사느라 고생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은 애들은 무슨 죄냐.

 

소설 끝의 에필로그를 보면, 여전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라이벌’ 리나와 인터뷰를 하게 된 나탈리는 아이들을 학대한 혐의로 35년 형을 받은 상태이다. 방금 앞에서 말했듯, 메리, 두 아들들, 그리고 매브를 이 외딴 산속 농장에서 키우면서 학교도 안 보내고 이런 험한 환경에 방치했다는 거다. 다행히 나탈리의 첫째 딸인 클레멘타인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이 아이들을 엄마아빠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구출된 지 5년이 지난 후, 메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냈다. 메리는 자기는 이제 글도 배우고, 캐셔 일도 하면서 살고 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에게 일어난 일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엄마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쓴다.

우리 삶에는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정말 가장 슬픈 게 뭔지 아세요, 엄마?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엄마가 놓쳤는지 하는 거예요. 왜나하면 삶은 정말 아름다운 거거든요. 우리가 절대 볼 기회가 없기를 엄마가 기도하던 이 미래도요. 엄마도 그걸 시도해 보면 좋아할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그 목장을 떠난 이후 내가 배운 게 그거예요.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는 거요. 오직 그들을 사랑하는 것밖에 없죠. 그러니 받으세요, 제가 가진 모든 사랑을, 이 책의 페이지들에 눌러담았어요. 엄마가 언젠가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바라요. 왜냐하면 엄마의 삶이 끝나는 곳에서 바로 제 삶이 시작하거든요. 이 세상을 보고 그 전부를 바랐던 순간이요.

There’s a lot about our life that makes me sad, but do you know what makes me the saddest, Mama? How much beauty you’ve missed. Because it really is beautiful: this future you prayed we would never get the chance to see. I think you’d like it if you gave it a chance. But that’s something I’ve learned in the years since I left the ranch: you cannot change people who refuse to be changed. You can only love them. So here it is, all the love I have to give, pressed into the pages of this book. I hope you read this book one day, all the way to the end, because as it turns out, the place where your life ends is exactly where mine begins: the moment when I saw the world and wanted every part of it.

너무너무 아름답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문단인데… 솔직히 아쉽긴 하다. 이 소설을 이렇게 끝맺는다고? 나는 이 책이 노스탤지어에 관한 것인 만큼 여성 혐오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혐오라는 것이 실제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그때가 좋았지’ 하는 말은 필연적으로 ‘정말 과거가 우리가 그리는 것만큼 아름답고 좋았을까?’라는 비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메리의 이 말로 끝맺으면, ‘현재가 이미 좋다’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가 되는데, 현재의 현실이 정말 그런가요? 여성 혐오는 과거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며 여러 사회 기반에 숨어 있는 것인데. ‘과거만 바라보면 현재를 잊게 된다. 그보다는 현재를 더 낫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라는 쪽으로 갔으면 이 소설의 주제 의식과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 점이 안타깝다.

 

이 책에 대해 할 말은 더 많지만 그걸 다 풀어 놓으면 아무도 안 읽을 것 같다. 이미 충분히 긴데… 나탈리가 하는 짓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 소설 속 일화를 하나 언급하면서 끝맺어야 할 것 같다. 나탈리가 (케일럽의 아버지 더그의 돈으로) 이 ‘Yesteryear’ 농장을 사서 레노베이션할 때, 그는 업자에게 이런 요구를 한다. 식기 세척기나 전자 레인지 등 (현대 문명의 발명품인) 가전이 직접적으로 시야에 노출되지 않게, 이것들을 다 숨길 수납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이미 몇 명의 업자들에게 거절당한 이후, 부부가 마지막으로 접촉한 업자만이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는 또한 이렇게 농담한다. “부인은 실내 화장실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옥외 화장실을 선호하십니까?(Will you be wanting indoor toilets, ma’am, or would you prefer an outhouse?)” 현대 문명을 쓰지 않는 척할 거면 그에 맞게, (역시나 현대 문명의 산물인) 하수도 시설도 거부하라는, 비꼬는 표현이다. 나탈리는 이 말에 웃으면서 실내 화장실은 허용한다. 나는 결국 이게 ‘트래드와이프’들을 위시한,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려는 작자들이 하는 일의 핵심이라고 본다. 자기 입맛에 맞는 과거만 선택적으로 현대로 가져오려 하는 것. 우리가 그리워하는 과거라는 게, 정말 실제로 존재하긴 했나? 그렇게 아름다운 과거가 정말 있기는 했느냐는 말이다.

 

결국 이 소설은 아름다운 과거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웠다고 믿어온 과거, 그 환상 및 허구를 깨뜨리는 이야기이다. 이것도 얼른 번역돼 국내에 정발되면 좋겠다. 다른 독자들이랑 이 책 이야기가 하고 싶어요… 출판사 관계자님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건 된다! 모든 이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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