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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urtles All the Way Down(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2024)

by Jaime Chung 202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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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urtles All the Way Down(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2024)

 

 

존 그린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에이자(이사벨라 머세드 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균에 대한 강박증을 앓고 있는 17세 소녀다. 어릴 적 짝사랑하던 데이비스(펠릭스 말라드 분)의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에이자와 에이자의 단짝 친구 데이지(크리 시치노 분)는 이 사라진 백만장자의 뒤를 쫓기로 하는데…

 

줄거리 소개를 이렇게 해 놓으니 두 십 대 소녀가 실종된 백만장자를 추적하는 탐정물일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그보다는 십 대 소녀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 성장담이다. 앞서 말했듯 에이자에게는 강박증이 있는데 무슨 말만 하면, 뭐만 했다 하면 자신 또는 타인의 몸 안에 살고 있을 박테리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손에 작은 상처가 나서 일회용 반창고를 붙였어도, 혹시나 그 상처가 감염되지는 않았을지 염려하느라 그걸 굳이 또 뜯어 보고, 손을 또 박박 닦아내느라 상처가 회복할 틈을 주지 않는다. 짝사랑 상대 데이비스에게 끌리지만, 그와 키스했다간 그 안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가 자신에게도 옮아올 거라 생각하니 키스조차 두려워진다. 에이자도 자신의 이런 강박이 정상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궁금해한다. ‘나는 내가 하는 생각조차 통제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누구지?’

 

이 영화(이자 원작 소설)의 제목은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 어떤 사항의 성립 조건의 조건을 구하고, 다시 그 조건을 구하는 식으로 무한히 거슬러 올라감) 문제에서 가져온 것이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옛날 사람들은 이 세상이 거대한 거북이의 등 위에 올려져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거북이는 무엇 위에 올라타 있을까? 당연히 자기보다 더 큰 거북이지! 그 더 큰 거북이는 그보다 더욱더 큰 거북이 위에 있을 것이고… 무한 반복. 이 우스꽝스러운 믿음은 에이자가 ‘그럼 나는 도대체 누구야? 나라는 사람은 박테리아가 조종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결국 나를 조종하는 박테리아를 조종하는 어떤 존재를 조종하는 다른 존재도 있을 수 있으니까. 결국에 ‘다른 것에 영향받지 않는, 진짜 나’ 같은 건 없다는 거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살라는 이야기. 존 그린은 십 대들이 하는 고민과 그들의 삶을 잘 그려내는 데 소질이 있는데, 이거야말로 진짜 십 대 청소년들이 할 법한 진지한 고민이라 정말 감탄했다. 젊은이들의 감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시군요…

 

에이자의 절친인 데이지는 영화 중반에 진짜 뼈 때리는 말을 하는데, 에이자가 자기 정신병에만 침잠하고 자기 생각만 하다 보니까 절친인 데이지에게는 신경을 안 쓴다는 팩폭이다. 데이지는 에이자에게 자기 부모님의 성함이나 직업은 아냐고 묻는다. 에이자는 모른다고 하고, 그럼 자기가 애완동물은 키우는지, 뭘 키우는지, 이름은 뭔지 아냐고 따지니 에이자도 모른다고 실토한다. 뒤늦게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그 이름은 떠올리지 못한다. 아니, 어떻게 절친이라고 하는 애의 애완동물 이름도 모르지… 게다가 데이지는 <스타 워즈> 시리즈의 왕팬이라 팬픽까지 쓴다는 설정이다. 근데 어떻게 절친이 쓰는 팬픽을 그때까지 (데이지는 이 팬픽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한 줄도 안 읽어 봤을 수가 있지. 몸이든 정신이든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은 때로 자기 자신의 문제에 너무나 집중해서 주변 사람들, 특히 자기를 받아들여 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좀 무관심할 수가 있는데 그걸 정확히 꼬집어서 좀 속시원했다. 사실 많은 영화/TV 쇼/소설 등 창작물의 주인공들이 (주인공이라는 걸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너무 자기 삶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서, 으레 등장하는 절친 캐릭터들에게 정말 신경이나 쓰는 걸까 궁금해지는 때가 종종 있다. 네 삶에서나 네가 주인공이겠지. 절친 캐릭터 입장에서는 본인이 주인공일 텐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 좀 보여라! 그리고 뱀발을 덧붙이자면, 데이지 역의 크리 시치노는 내가 이전에 재미있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Mr. Iglesias(이글레시아스 선생의 즐거운 교실)>(2019-2020)에서 마리솔 역을 맡았던 그 배우라 반가웠다. 게다가 에이자의 엄마 지나 역의 배우는 미드 <Scrubs(스크럽스)>(2001-2010)에서 칼라 역을 맡았던 주디 레이예스다.

 

이 영화의 끝은 완벽한 ‘해피 엔딩’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적당히 희망적이면서 적당히 현실적이랄까. 십 대 친구들이 봐도 좋을 것 같고, 어른이 봐도 좋다. 원작 소설은 국내에 이북으로는 안 나와서 (2017년 종이책 출간) 못 읽었는데 아쉽다. 나중에 원서로 도전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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