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황규경, <우리는 왜 친절한 사람들에게 당하는가>
제목은 이렇지만 우리가 왜 친절한 사람들에게 쉽게 (사기를) 당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는 심리학적 서적은 아니다.
저자는 변호사로, 이런저런 사기를 당해 신세를 망친 고객들을 많이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사기 피해를 조금이나마 예방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사기가 언급되는데, 대충 목록만 훑어도 금전 대여 사기, 보증 사기, 보이스피싱, 스미싱, 파밍, 창업 컨설팅 사기, 다단계 사기, 사기 도박, 기획 부동사, 꽃뱀 사기, 혼인 사기, 입시 사기, 종교인 사기, 무속인 사기, 건상식품 사기, 인터넷 광고 사기, 빼돌려지는 아파트 관리비, 산삼 사기 등이 있다. 아이고 길다.
이렇게 다양한 사기를 살펴보면서 저자는 조심, 또 조심하라고 말한다.
어떤 범죄보다도 악질적인 것이 사기다. 사기는 절대로 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예방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속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의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사기도 한두 번 당해 봐야 세상을 아는 법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험이면 다 좋은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사기는 절도나 강도를 당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기는 한 번 당하고 나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경우도 있다. 흔히 하는 말로 '한 방에 훅 가는' 것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직원 구함. 여성 사업가. 여성으로서 혼자 사업하기 어려운 가운데 내 가족같이 일해주실 분 구합니다. 월 150~200' 이런 광고지를 본 적이 있는데, 나는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게 정확히 어떤 사기인지는 몰랐다.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런 광고는 대개 보증 사기인데,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피해자에게 덜렁 직함 하나 주고는 '이런 자리에 있으면 회사의 대출을 위해 보증을 서야 한다'고 요구한단다. '이사' 같은 타이틀 얻는다고 보증을 섰다가는 정말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니 조심하자.
창업 컨설팅이랍시고 사람들의 돈을 속여 먹는 수법이 있다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장사가 되지 않는 자리를 소개하고 소개료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챙긴 뒤, 그 자리의 권리금을 받아주겠다며 새로운 피해자를 상대로 또 다른 사기를 친 것이다. 가게를 새로이 인수한 사람은 장사가 되지도 않는 곳에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가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인수한 사람들이 컨설팅 업자에게 항의를 하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컨설팅 업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새로운 인수자에게 떠넘기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으니, 마지막 인수자는 결국 완전히 돈을 날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컨설팅 업자는 소개료와 자기 몫으로 뜯어낸 권리금을 계속해서 챙긴다. 그리고 협력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적당히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창업 시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컨설팅 업자 말만 듣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새겨 들어야 할 말.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훈련 중 첫 번째가 남들에게 쉽게 오지 않는 행운은 나에게도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너무 좋은 기회'임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 태반은 사기꾼들이다. 사람을 쉽게 믿지 말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정상적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
급하다고 몰아대는 느낌이 들면 우선 멈추기 바란다. 큰돈을 투자할 때는 '심사숙고'기 필요한 것이지 '순발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저자가 사기 피해자들을 '멍청해서 그렇지 ㅉㅉ' 하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고, '아이고, 조금만 더 주의했으면 적어도 이렇게 큰 피해는 입지 않았을 텐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 공감의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화를 내는 건 당연히 가해자와 돈을 받지 못해 소송까지 한 사람을 배신자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였고 말이다.
나는 인간이 멍청이일지언정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피해자에 대해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사기를 친 게 죄지, 당한 게 죄는 아니지 않는가.
마지막에는 우리의 자녀들이 사기를 당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맞는 말이다.
교우이신(交友以信)은 친구의 말을 별다른 근거도 없이 무조건 믿고, 전 재산을 빌려 주라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에서는 '믿음'을 먼저 가르친다. 세상에 온갖 사기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르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믿는 것이 선이고, 의심하는 것은 악이라고 배웠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상대방을 믿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사기라는 범죄는 사기꾼의 말을 사실로 믿고, 바로 그 때문에 피해자가 스스로 재산을 갖다 바치게 하는 범죄다. 사기는 상대의 말을 믿는 데서 시작된다.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의심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충돌한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믿는 것이 선한 것이며,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점만 주입하는 것은 아이들이 사기꾼의 말에 의심을 하지도 못하게 하고, 의심을 하면서도, 빌려 주기 싫은데도 사기꾼의 부탁을 들어주게 하는 일이다.
존 밀턴(John Milton)이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선(善)에 대한 지식은 악을 알게 됨으로써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것(Knowledge of Good bought dear by knowing ill)"이라고 썼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딱 이 인용구가 생각났다.
세상에 사기라는 악한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선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사실 선과 악이란 뜨거움과 차가움, 빛과 어둠, 남과 여 같은 거라서, 다른 하나가 없으면 구분이 불가능하다.
안타깝긴 해도, 선과 악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진실이니 우리는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악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아이를 사기로부터 지키는 8가지 지침'은 정말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첫째, 아이가 자신의 돈이나 물건을 남에게 쉽게 빌려주지는 않는지 살펴보자. (...)
둘째, 타인에게 돈을 함부로 빌릴 수 없다고 가르치자. (...)
셋째,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
넷째, 과시하지 않도록 가르치자. (...)
다섯째, 세상에 나에게만 주거나 알려주는 것은 없다고 가르치자. (...)
여섯째, 거절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자. (...)
일곱째, 과음하지 않도록 가르치자. (...)
마지막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가까운 사람과 의논하도록 가르치자. (...)
사실 아무리 뛰어난 변호사라 해도, 이미 사기를 당했다면 경찰에 신고하고 전문가(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는, 다소 상식적인 조언밖에 제공해 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사기를 당하기 전에, 예방 교육인 셈치고 이 책을 읽어 두면 도움이 될 듯하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엄청 남는 장사 아닌가. 모두들 한 번쯤 꼭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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