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제임스 W. 페니베이커, <단어의 사생활>
책 제목이 <단어의 사생활>이라 오래된(또는 최근에 생겨난) 단어들의 기원이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할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실망하셨는지?).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성격, 감정, 타인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들의 블로그 글이나 정치인의 연설, 그리고 연구 대상자들이 쓴 글을 분석하며 사람들의 언어 스타일을 연구하는데, 기본적으로 이 책은 언어학이 아니라 심리학 책이라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인 나는 우연히 언어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 책이 진짜 초점을 두는 부분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다. 물론 언어와 단어들도 재미있는 주제이긴 하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자의 눈에는 단어들이 사람들 내면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일 때 훨씬 더 흥미로워 보인다.
'(표현하는) 스타일의 차이'를 통해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때는 기능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능어란 실질적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마로가 말 또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보조적 단어이다.
'탁자', '걷다', '파란', '벌레' 등 사람으로 하여금 머릿속에 일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내용어라면, 기능어는 그 자체로는 실질적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 '나의' 같은 인칭 대명사, 지시 대명사, 조사, 부정어, 접속사, 수사, 일반적인 부사가 이 기능어에 속한다.
기능어는
매우 자주 쓰인다.
단어의 길이가 짧고 감지하기 어렵다.
뇌에서 내용어와 다르게 처리된다.
매우, 몹시 사회적이다.
이렇게 '숨어 있는 단어', 기능어는 우리가 듣고, 읽고, 말하는 단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사소한 단어로 사람의 성격 및 성향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일례로, (영어의 경우) 관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쪽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성실하고 정치 성향이 보수적이며 나이가 많은 경향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여기부터다. 일상 언어에서 관사를 사용한다고 해서 존 매케인처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정치인이 되지는 않는다(존 매케인은 실제로 2008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경쟁 후보에 비해 관사를 더 많이 사용했다). 그보다 관사의 사용은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주기 시작한다. 대명사와 조사를 비롯하여 사실상 모든 기능어의 역할이 이와 마찬가지다.
흥미롭다. 그렇지만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진 건 위의 인용구에서 두 번째 문장이다. 관사를 사용한다고 해서 존 매케인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는 문장.
그냥 원래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사람이 관사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는 게 연구 결과이자 '참'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내 상태' 또는 '내 성격'이 어떠한가를 분석하기보다 나를 좀 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변할 수 있게 되려면 어떡해야 하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앤 바노라는 연구자는 여자 환자들이 시설 안에서 글을 쓴 스타일로 출소 후 그들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치료 공동체와 협력하여 120명 정도 되는 여자 환자들의 글 표본을 모았고, 이후 몇 달 동안 관리 사무소와 협업하여 여자 환자들이 직장에 꾸준히 다니고 있는지, 가석방 조건을 위반하거나 재구속되지는 않았는지 후속 정보를 모았다.
흥미롭게도, 여자 환자들이 그들의 마지막 글에서 단어를 사용한 스타일은 출소 4개월 후 잘 살고 있을지를 어느 정도 예측했다. 치료의 성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언어의 두 가지 범주는 다음과 같았다.
- 높은 사회적-정서적 경향: 인칭 대명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사용
-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높은 비율
치료 공동체를 떠난 여자들의 과제는 새 직장에 적응하고 사회적 네트워크에 융화되는 것이었다. (...) 치료소 밖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들이 글에서 드러낸 사회적-정서적 성향과 낙관적 성향은 바깥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글쓰기 표본을 통해 이 사람이 재활에 성공할지 아닐지를 예측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치료 공동체에 속했던 환자라고 상상하고, 어떻게 하면 내 치료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일부러 인칭 대명사와 감정을 많이 나타내는 단어와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도록 노력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관사를 많이 쓴다고 해서 존 매케인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며. 내가 그렇게 되고 싶으면 어떡하냔 말이다.
심리학 책은 대개 '이러이러한 현상에는 저러저러한 심리학적 이유가 있으니 이런 기법은 이럴 때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좋다' 뭐 이런 게 있지 않나.
뇌과학 책을 봐도 예컨대 햇빛을 많이 쬐면 비타민 D가 합성이 되고 세로토닌도 합성이 되어서 울적한 기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실용적이고 간단한 '활용법'을 알려 주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어떤 심리학적 현상을 분석만 하지, 내가 예컨대 좀 더 어떻게 되고 싶다면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라, 하는 팁 같은 건 없었다. 필요하다면 글쓰기 스타일을 바꿀 의지도 있었는데(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글(=말)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단순한 사실 같아 보이지만, 그걸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로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모든 이들에게 어필할 책은 아닌 것 같지만, 어렵게 쓰인 책은 아니고 누구나 흔히 받아들이는 개념을 여러 가지 예시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거들떠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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