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엔도 슈사쿠,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엔도 슈사쿠에 대해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 <Silence(사일런스, 2016)>의 원작 <침묵>을 쓴 작가라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오, 이런 것도 쓰는 사람인가?' 하고 흥미를 느껴서 빌려 보게 되었다.
가벼운 에세이인데, 내가 특히 위로를 받은 부분은 이 구절이다.
그러나 젊은 시기는 1 더하기 1이 정말로 2가 맞는지, 혹은 4나 5가 되진 않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방황하는 시절이다. 그러한 방황을 해 본 사람들만이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지간히 둔감하지 않는 한 누구든 자기혐오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그런 때 '이렇게 하면 나아진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고난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식의 말들을 아무리 들을지라도 실질적으로 와닿지도 않을 뿐더러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마치 어두운 동굴에 갇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인간이 나다'라고 혐오스러운 생각이 지배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들도 똑같은 일로 고민하고,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위안이 될 거라고 하는데, 맞는 말 같다.
태양 아래 새로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도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다 절절히 앓아 본 문제들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적어도 전 세계 인구의 0.1% 정도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나아지지 않을까(참고로 구글에서 검색해 본 결과, 2017년 12월 기준 세계 인구는 76억 명이라고 한다. 거기에 0.1%라고 해도 무려 7억 6천만 명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이슈를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도와주는 자조 모임(self-help group)을 갖는 거 아니겠나. 자기만 이런 경험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위안이 되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 저자는 본인의 나쁜 성격은 좋은 성격이, 단점은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성격이란 것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저자는 결핵을 앓았을 때 수술한 자리가 흉한 상처로 남아 신체적 열등감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열등감 따위가 자신을 누르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동차 면허를 땄다고 한다.
목욕탕에만 가도 사람들이 자기 수술 자국을 보기 때문에 수영 같은 운동은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자신이 무언가는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동차 면허를 따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정신적 균형을 잡아 나갔다. 이렇게 'A는 못하더라도 B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균형 있게 자기혐오를 극복해 나가는 게 제일 현실적으로 좋은 방법 같다.
또한 내가 위안을 얻은 것은 '플러스가 되는 경험, 마이너스가 되는 경험'이라는 꼭지다.
만약 현재 병에 걸렸다거나 부상을 당했다거나, 혹은 하는 일에서 실패한 경우라면 크게 낙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일은 거꾸로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과연 플러스가 되게 할 수는 없는지,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주변의 환자나 의사, 간호사를 관찰했고 이것이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있던 병원에 유명한 연극 연출가이자 각본가가 입원해 있었는데, 그의 권유로 그때까지는 자신이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연극의 대본을 쓰게 됐다고 한다. "3년간의 힘겨운 입원 생활은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 모른다."고 그는 썼다.
인생에는 반드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는 마이너스 상황인 때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것을 최대한 플러스로 바꿔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운이 따르지 않는 시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그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연극 대본을 쓰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평생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래서 연극 대본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삶이 그에게 새로운 경험,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을 찾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려고 일부러 그에게 병을 주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래서 나도 마이너스인 이 시기에서도 어떻게든 플러스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또 놀라운 것은, 그의 잔머리라고 할까, 삶의 지혜이다.
그가 수술을 받아 왼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담당 의사는 근육이 굳어서 손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체조를 해서 팔운동을 하라고 조언했단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통증 때문에 체조를 오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뒀다.
한 달 후, 의사는 운동을 게을리했으니 아직 팔이 잘 올라가지 않을 거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팔을 올려보라고 헀는데, 막상 팔을 올려 보니 아주 부드럽게 올라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의사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시키시는 운동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 매일 왼손으로 카드놀이를 했습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을 상대로 매일 카드놀이를 하며 왼손을 움직였더니, 별도의 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훈련이 된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열심히 성실하게만 노력한다고 해서 다 좋은 방법은 아니다. (...)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만들어 온 삶의 지혜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매우 비장하거나 피를 토할 각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내 성격과 안 맞는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지혜는 되도록 수고를 덜하고 터득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끈질긴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의지의 훈련인 셈이다. 나는 의지를 훈련시키는 대신, 즐기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정신적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덕질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 따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뭘 애써서 한다는 느낌 없이 그냥 즐기면서 하는 것!
무척 대단한 비밀을 담고 있는 책도 아니고, 머리를 띵하게 만들 정도의 '명언'을 실은 책도 아니다.
그저 엔도 슈사쿠라는 개인이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를 좋아하려고 애쓰면서 배운 것들을 쓴 책일 뿐이다.
큰 부담 없이, 큰 기대 없이 읽어 보면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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