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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Eternity(영원)>(2025)

by Jaime Chung 2026.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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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Eternity(영원)>(2025)

 

 

 

죽은 후, 평생을 함께했던 두 번째 남편 또는 젊은 시절 일찍 죽어 버린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래리(배리 프리머스 분)는 아내 조앤(베티 버클리 분)과 함께 손주의 ‘성별 공개(gender reveal) 파티’에 갔다가, 조앤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루크(칼럼 터너 분)의 사진을 보고 화를 내다가 사망한다. 죽고 난 후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 젊을 적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래리(마일즈 텔러 분)는 죽은 후의 영혼들이 모이는 터미널 같은 장소에 가게 된다. 죽은 영혼들은 모두 ‘영원(eternity)’에서 지내게 되는데,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버전의 ‘영원’이 있어서 한번 마음을 정하면 바꿀 수 없고, 거기에서 말 그대로 ‘영원’을 보내야 한단다. 사랑했던 아내 조앤(엘리자베스 올슨 분)과 함께 영원을 보내고 싶은 래리는 그녀가 죽고 나서 이곳에 오기를 기다린다. 일주일쯤 기다리고 나니 마침 아내도 이곳에 왔다! 같이 적당한 영원을 골라 가면 이제 영원히 행복할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아뿔싸, 조앤의 첫사랑이나 마찬가지인 첫 번째 남편 루크도 조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무려 67년이나! 조앤은 이제 엄청 잘생기고 섹시하고 멋지며 ‘완벽’한 첫 남편 루크와 그가 죽은 후 한평생을 함께하며 자식도 낳고 손주들까지 본 현 남편 래리 사이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하는데…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 시놉시스만 들었을 때부터 무척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 일단 중요한 말부터 하자면, 영화는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칼럼 터너와 마일즈 텔러는 너무 비슷한 그림체 느낌이라 두 남주로는 조금 별로지 않나 생각했는데(머리카락 색이 다르다든가, 성격이 크게 다르다든가 하는 식으로 갭이 커야 더욱 드라마틱해 보일 테니까) 어쨌든 두 배우는 극을 잘 이끌고 나간다. 또한 여주인 엘리자베스 올슨이 아름다운 것은 말해 무엇하리. 루크(즉 칼럼 터너)가 너무너무 멋져서, 조앤의 엄마조차 ‘혹시나 루크가 널 임신시켜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하게 된 것 아니냐(=그런 게 아니라면 네가 그 정도 남자랑 결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의심할 정도로 루크의 캐릭터가 완벽한 남자로 그려지는데, 뭐, 그러기엔 엘리자베스 올슨이 ‘보통’ 얼굴은 또 아니잖아요… 루크를 띄워주려고 너무 오버가 심한 게 아닌가…

어쨌든, 영화는 그야말로 난문제를 제시한다. ‘영원’을 한번 선택하면 무를 수 없다. 1960년대 파리 테마의 영원이든, 해변만 있는 영원이든, 나치가 없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독일이든, 어쨌든 뭘 하나 선택해서 가야 하고, 거기에서 말 그대로 영원을 보내야 한다. 다른 영원을 여행할 수는 없다. 다른 영원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방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보통 사후 세계에 접하게 될 ‘영원’을 이렇게 좁고 불편하게 설정하는 경우는 처음 봤는데, 그게 영화가 제시하는, 일부러 정해 놓은 한계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한번 정하면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아직 완전히 채워 보지 못한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선택했고 무엇을 기대할지 알고 있으며 익숙해진 것을 선택할 것인가? 전자는 루크이고 후자는 래리이다. 루크는 67년간 조앤을 기다려 왔고, 그 말인즉슨 67년간 머릿속에서 완전한 이상(理想), 환상을 그려 놓았을 거라는 뜻이다. 루크만 그런 게 아니라 조앤도 마찬가지다. 조앤은 끊임없이 루크의 죽음을 애도해 왔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도 수없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반면에 래리는, 루크가 의심한 것처럼, 조앤이 루크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하며 마음이 약해졌을 때를 이용해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어쨌거나 둘은 이혼하지 않았고, 자식과 손주까지 보며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 낡았지만 더없이 편한 잠옷처럼 둘은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조앤은 둘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솔직히 나는 조앤이 누굴 선택하든 후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이 살아 보지 않은 삶을 부러워하고 원한다. 가장 흔한 게, 외동이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외동을 부러워하는 것. 무엇이 다른 것보다 절대적으로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상대를 부러워한다. 영화 후반에서 루크를 선택한 조앤은 둘이 생각만큼 ‘양립할 수 있는(compatible)’한 사이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조앤에 비해 루크는 조금 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든가, 야외 활동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애초에 ‘산악 지대 영원’을 고른 게 그이니까). 결국 조앤은 어찌어찌해서 ‘영원’의 규칙을 어기고 래리에게 돌아와 둘이 생전 살던 마을 오크데일(Oakdale)과 비슷하게 생긴, 별로 안 유명한 영원에서 살기로 선택하고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결국 조앤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뭘 기대할 수 있는지 아는, 가장 편한 것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편안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진 파트너들 사이 로맨스의 극치라고 볼 수도 있다. 한평생을 함께했는데 그 이후에 영원을 또 다시 함께 하게 되는 거니까.

 

장기 연애 또는 결혼을 해 본 이들이라면 ‘자기야, 다음 생에서도 자기는 나랑 사랑/결혼할 거야?’라는 질문을 한 번쯤 해 보았거나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래야 할까요? 내 애인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굳이 그래야 할까?’라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진짜로 죽고 난 후에 염라대왕이나 신, 또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게서 이 질문을 받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이란 정말로 너무너무 긴 시간이니까. 애초에 나는 성경을 처음 접할 때, 기독교의 신이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이것을 절대 먹지 말라고 규칙을 정한 것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100년이면 100년, 200년이면 200년, 이렇게 딱 기한을 정해 놓고 그동안 먹지 말라고 했다면 아담과 이브도 이를 지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영원히’,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면 기한이 너무너무 길어지고 그럼 당연히 한 번쯤 먹고 싶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삶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것에 끝이 있다는 점 아니었어? 삶이 유한하기에 그 안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고 하면서 인간이 살아가게 되는 건데 그 기한이 무한정 늘어난다면 의미며 행복이며 재미며 하는 게 있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끝이 있어야지 의미도 있지. 한 사람과 기껏해야 100년 정도 되는 ‘평생’을 보내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1천 년, 2천 년, 또는 그것의 몇 갑절이나 되는 무한한 세월은 어떻게 보낸다는 말인가. 당연히 상대가 지루해지고 꼴도 보기 싫어지겠지.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고요! 영원히 죽지 못하는 뱀파이어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삶은 ‘저주’라고 말하기를 꺼리지 않으면서(그것이 그 내러티브의 주제이자 교훈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왜 한 사람과 영원히 사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인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래리를 담당하는 AC(afterlife coordinator, 사후 세계 코디네이터)라는 애나(더바인 조이 랜돌프 분)의 캐릭터도 귀엽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조앤의 AC인 라이언(존 얼리 분)은 너무… 게이 느낌 아니었나요? 게이라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어떻게 애나랑 라이언이 사귀게 되는 건지는 이해가 안 간다. 게이 남자랑 이성애자 여자가 어떻게 사귀어요?

그리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거 하나. 이 영화가 벡델 테스트(이게 뭔지 모르실 분들을 위한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통과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시라. 조앤이 루크랑 결혼해서 살던 때나, 래리를 만나 재혼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손주까지 볼 동안 곁에 있어 준 동성 친구 카렌(올가 메레디즈 분)을 만나서도 조앤이 하는 얘기는 ‘둘 중 누구를 고르는 게 좋을까?’밖에 없다. 그리고 조앤은 마지막에 친구를 따라 1960년대 파리 콘셉트의 영원으로 가려다가 잠시 이야기하자는 래리를 보고 기차에서 내린다(그러고 나서 래리 말대로 루크에게 간다). 아니, 여자들간의 우정은 어쩌고? 각본을 남자들(감독 데이빗 프레인과 각본가 패트릭 커네인)이 쓴 티가 여기서 난다.

 

재미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이지만, 애인과 봤다가는 십중팔구 ‘자기가 조앤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나랑 영원을 함께할 거야?’ 같은 질문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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