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If I Had Legs, I’d Kick You(이프 아이 해드 레그스 아이드 킥 유)>(2025)

아니, 일단 제목 무슨 일이야… 아직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음차된 제목으로 알려진 것 같다. 아직 네이버에 영화 정보조차 올라와 있지 않은 걸 보면… 영화를 들여온다면 제대로 된 제목을 지어 주면 좋겠다.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로즈 번의 연기가 기가 막히다는 말과 이 영화의 클립이 담긴 트윗을 통해서였는데, 진짜로 연기가 미쳤다. 근데 그 로즈 번이 연기하는 캐릭터나 영화 줄거리가 참으로 갑갑해서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린다(로즈 번)는 병을 앓고 있는 딸(딜레이니 퀸 분)을 돌보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칭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 보니, 침실 천장에 구멍이 생겨서 물이 쏟아지고, 온 집안이 침수됐다. 그래서 린다는 딸을 데리고 일단 모텔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먼 곳으로 출장을 간 건지 어쩐 건지 집에는 좀처럼 오지 않는 남편(크리스찬 슬레이터 분)은 도움이 안 되고, 아이의 담당 의사인 스프링 박사(메리 브론스틴 분)는 린다에게 엄마도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린다가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린다의 상담사(코난 오브라이언 분)는 그를 냉랭하게 대할 뿐이고, 린다가 머무는 모텔의 직원 제임스(에이셉 라키 분)는 린다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 줄거리가 엄청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린다의 가늘디가는 정신줄을 갉아먹는 요인들에 불과하므로. 로즈 번이 연기를 잘하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렇게 주인공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와, 연기 잘한다!’ 이렇게 감탄하는 것도 어찌 보면 좀 변태적이지 않나? 꼭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괴롭게 만들어야 했나? 그리고 린다네 집 침실 천장에 생긴 구멍은 마치 블랙홀처럼 묘사되고, 그걸 들여다보는 린다는 우주에서 유영하는 느낌으로 그려진다. 일단 이 구멍부터가 굉장히 초현실적인 설정인데, 나는 무슨 연극 <Angels In America(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갑자기 벽이 무너지고 천사가 등장하는 장면 보는 줄. 이게 ‘심리 드라마(psychological drama)’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심장이 쫄리는데, 딸의 얼굴이 영화 맨 마지막까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분명 고의적인 연출이겠지) ‘사실은 딸이 없는 거 아냐? 딸이라는 것도 상상의 존재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상했다(결국 마지막에 나오긴 한다).
감독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딸의 병명이 정확히 뭐라고 언급되지는 않는데 아마 난치병이 아닐까 싶다. 그런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냥 또래의 건강한 아이를 돌보기보다 백배는 더 어려운데 남편은 곁에 없고, 손을 빌릴 수 있는 친구나 가족도 없는 듯하니 린다는 얼마나 미칠 것 같을까. 린다는 같은 상담 사무실을 쓰는 동료 상담사(코난 오브라이언 분인데 이름도 안 나와서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에게 상담을 받으며 ‘제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한다. 처음에 린다가 상담사에게 고민을 털어 놓을 때는 ‘참 힘들구나’ 하지만 나중에 린다 본인도 상담사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는 이게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본인도 환자 상담을 해 봐서 상담사에게 뭘 기대할 수 있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알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환자 입장일 때 상담사에게 ‘제발 뭘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절규할 정도로 린다의 처지가 막막하다는 것. 그냥 중년의 위기에 처한 여성인 게 아니라 진짜 엄청난 부담감과 죄책감을 안고 있는(분명히 이 사회가 엄마들에게 그런 감정들을 느끼도록 만들어 놓았으므로) 환아의 엄마로서 답답하고 괴롭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마음…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는 것은 제목이다. 제목은 ‘나에게 다리가 있다면 널 찼을 거야’라고 하는데, 이건 도대체 누가 하는 말인가? 멀쩡히 다리가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는 얘기는 아닐 테고(당연히 이런 대사도 없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극 중 다리가 불편한 사람조차 한 명 없는데, 누가 ‘다리가 있다면 널 찼을’ 거라고 말하는 것인가? 린다네 집 침실 천장에 생긴 구멍이? 구멍이 이 문장의 화자라고 한다면, 도대체 왜? 애초에 네가 생겨서(집 천장에 구멍이 나서) 린다네 상황이 가중된 거거든요. 린다가 스트레스로 미쳐 버릴 것 같은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기엔 네놈 잘못도 좀 있지 않니…
로즈 번의 연기는 단연코 뛰어나고,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정극 연기에 도전한 코난 오브라이언의 연기도 썩 좋다. 코난이 이렇게 진지한 연기도 할 수 있구나. 연습도 많이 하고 감독에게 지시도 잘 받은 듯. 참고로 스프링 박사 역할을 이 영화의 감독인 메리 브론스틴이 맡았다. 카메오라고 하면 카메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셉 라키는, 나야 힙합 음악은 전혀 몰라서 잘 알지 못하지만, 연기도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이 캐릭터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뭐라 평하기가 어렵다. 팬이라면 좋아하시겠지요… 주인공 린다의 정신줄이 점점 끊어져가는 듯한 괴로운 영화지만 일단 로즈 번이 이 영화의 연기로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한대도 놀랍지 않을 정도인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정말로 며칠 전에 이걸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최고의 영화’라고 하기에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크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런 연기를 뽑아낸 것은 감독의 역량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공들여 만든 영화인 것은 인정.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겠지만 배우의 연기력을 중요하게 따지는 시네필이라면 감탄하며 보지 않을까(하지만 나는 그런 시네필은 아니라서 🙄).
'영화를 보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감상/영화 추천] <Miss You Already(미스 유 올레디)>(2015) (1) | 2026.01.14 |
|---|---|
| [월말 결산] 2025년 12월에 본 영화들 (2) | 2025.12.29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Dolores Claiborne(돌로레스 클레이븐)>(1995) (1) | 2025.12.22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Hit Man(히트맨)>(2023) (0) | 2025.12.17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Roofman(루프맨)>(2025) (1) | 2025.12.10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Harrigan’s Phone(해리건 씨의 전화기)>(2022) (1) | 2025.12.08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ife of Chuck(척의 일생)>(2024) (1) | 2025.12.05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ses(더 로즈: 완벽한 이혼)>(2025) (0) | 202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