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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맥스 디킨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by Jaime Chung 2025.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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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맥스 디킨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존 햄버그가 감독하고 폴 러드가 주연한 <I Love you, Man(알러뷰 맨)>(2009)이라는 영화에서 피터(폴 러드 분)는 여자 친구 주이(라시다 존스 분)에게 청혼한다. 주이가 이를 승낙하자마자 커플은 결혼식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피터는 큰 난관에 봉착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랑 들러리를 해 달라고 부탁할 만한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것. 성격이 워낙에 다정하고 섬세한 편인지라 동성 친구보다 여자 사람 친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신랑 들러리를 세울 남자 친구를 찾기 위해 피터는 ‘우정 데이트’에 나서는데…

 

갑자기 이 영화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면, 이 논픽션의 저자 코미디언 맥스 디킨스도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 친구 나오미에게 청혼을 하려고 계획을 세우다 보니 신랑 들러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할, 친한 남자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에게 동성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절친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여자 사람 친구이자 룸메이트이기도 한 필리파와 호프였다. 여자 사람 친구들이 있는 남자로서 저자는 여자들의 우정이 남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그래서 저자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남자에게 혹시 우정과 관련해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단순히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또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본다. 이와 비슷한 주제로 이전에 읽었던, 빌리 베이커의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와 같은 주제이지만 확실히 더 낫다. 이론적인, 그러니까 어떤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려 하기에 조금 더 믿음직하며,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덜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저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이라, 더 유머러스하다.

 

저자의 여자 친구는 그가 “남자들이랑 있으면 우두머리 수컷처럼 변”한다고 지적했다. 자기 여자 친구에게는 다정하고 매력적인 이 남자는 왜 같은 남자들과 있으면 구석기 혈거인처럼 변하는 걸까? 다시 말해, 왜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걸까?

히친스의 중심 전제는 완전히 틀렸지만, 남자들에 대한 진실을 예리하게 다룬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남자들끼리는, ‘네 물건은 좆도 쓸모없다’ ‘운전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밥만 축내는 새끼’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유머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보다 차라리 상처가 덜 될 것이다.” 남자들은 유머 감각에 집착한다. 여자들에게도 유머가 무척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지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여자들은 인간관계에서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 더 많은 도구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남자들에겐 농담이 전부이며, 전부가 농담이다.

유머는 남성우정에 있어 토템과도 같으며, 우정은 유머의 축복과 좌절에서 생겨난 소우주다. 농담은 익살이라는 활을 가득 채운 화살통을 메고 인생의 굳건한 성벽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리고 농담은 권력과도 결부되어 있다. 남자가 재미없는 놈이라고 욕을 먹으면 몸서리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담은 남성관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이며, 상대방을 밟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과 같다. 상담가 에스터 페렐Esther Perel이 이를 잘 설명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이 되어간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과는 반대로, 남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남자다움을 방어하고 과시하기를 기대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남성성을 잃는 줄 안다.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식의 사고방식이다.”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 이런 이유에서 젠더 이론가들은 남성성을 ‘취약성’으로 묘사한다. 너무나 많은 제로섬 게임이 있다. 남성에게 삶은 일련의 남성성 경쟁이다. 남자다움은 다른 남자들을 성적, 육체적, 지적, 경제적으로 능가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참, 식탁에서 고기를 써는 역할을 남성인 내가 고수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남성의 사교세계로 확장된다. 다른 남자들은 친구인 동시에 경쟁자가 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한 일화도 제시한다. 저자와 여자 친구 나오미는 아파트 공사를 위해 건축업자를 고용했는데, 그는 이 커플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가 축구 팬이기 때문에 저자는 축구 클럽의 열렬한 서포터인 척하며, 여자 친구가 만들어 준 샐러드를 억지로 먹는 척한다(사실은 그걸 좋아하면서). 그는 또한 저자에게 여성혐오적인 밈을 보여 주며 “자신이 만났던 여성 고객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본능적으로 자세히 푼다”. 반면에 그가 나오미에게는 전혀 그러지 않으며, “욕실 타일 취향에 대해 세심한 조언까지” 해 주고, 자기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순간 저자는 그 건축업자가 자신에게 절대 보여 주지 않을 복합성과 깊이를, 나오미에게는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그는 그냥 원래 그런 인간이고 나오미 앞에서만 좋은 사람인 척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건축업자가 왜 여성에게는 좀 더 진지하고 감성적인 면을 보여 주었는지(또는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느꼈는지)는 알 것 같다. 같은 남자에게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일화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남자와의 우정보다 여자와의 우정에 더욱 만족을 느꼈는지를 완곡하게 설명해준다.”라고 썼다. 여자 사람 친구와 있을 때 그는 같은 남자와의 우정에서 기대되는 그런 행동들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참고로 ‘필’은 저자의 절친인 ‘필리파’의 애칭이다).

내가 성인 초창기에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항상 지속적인 감시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호프와 필과 함께 어울리면서부터 난생처음 마음껏 숨쉴 수 있다고 느꼈다. 이들과의 우정에 있어서는 기존의 우정과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즉, 내가 약한 맥스가 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는 것과 이 친구들과는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호프와 필과 나눈 우정에서는 기존에 남사친들과 했던 방식으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사친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보여주느냐’가 중요했다. 이들은 감정을 보여주거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새롭고 충만한 경험이었다. (또한 이런 것이 가능함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경험도 그렇다.) 다름에 대한 호감은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나의 내면적 삶도 점차 더욱 선명해져갔다.

필과 호프는 세상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이음새 같았다. 이분법으로 나뉜 것의 반대편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여성적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는 것. 또는 버지니아 울프가 ‘양성적 마인드’androgynous mind에 대해 썼을 때 의미했던 연결 다리. 필과 호프가 자신다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공간에서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숨겨와서 이제는 스스로도 볼 수 없었던 나의 세세한 면을 다시 발견했다. 지방을 제거하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우유와 같은 우정이었다.

 

아,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이 많은데 다 소개해 드리기도 전에 이 리뷰가 벌써 길어지고 있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마무리하겠다. 우리가 ‘남녀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형태의 낭만적인 사랑(이걸 학계에서는 ‘동반자적 결혼’이라고 부른다)을 발명해 낸 이후, 우정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말 그대로 “감정이라는 알들을 모두 부부의 사랑이라는 한 바구니에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편과 부인이 서로에게 절친이 되었기에 다른 동성 친구들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특히 남성에게 위험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배우자 외에도 동성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우정을 유지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들고, 남자들은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들이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친구들은 나를 셰르파라고 불러요. 제가 모든 것을 계획하기 때문이죠. 제가 그 역할을 그만두면, 아마 앞으로 다들 아무도 못 만날걸요?” 저자는 이것이 남자들은 ‘감정노동’에 익숙하지 않고 그럴 것을 기대받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16년 6월 2일 오후 11시 29분, 토론토에 거주하는 작가 에린 로저스Erin Rodgers는 다음과 같이 트윗했다.

나는 ‘꽃뱀’gold digger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자신을 위해 엄청난 감정노동을 해줄 여자를 찾는 남자들’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재치 있는 이 짤막한 발언은 수천번 리트윗되었고, 전 세계 다양한 매체의 여성전문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많은 기사가 입소문을 타고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0년 봄. 알고리즘이라는 현대 흑마술을 타고, 그때 게재되었던 기사 중 하나가 내 피드에 등장한다. 이로써 나는 인터넷이라는 웜홀로 하강해서, 이후 모든 것의 근원이 될 나비의 날갯짓(로저스의 트윗)을 추적해본다. 그리고 결국 연애와 우정에 대한 나의 관점을 180도 바꾸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한다. 조급한 마음이 들더라도 먼저 일의 발단부터 살펴보자. (…) 감정노동은 ‘man(남자)’과 ‘handholding(도와주기)’의 합성어 ‘mandholding’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는 일부 남성들이 보살핌 받는 것을 생득적 권리로 인식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나는 웜홀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면서 더 많은 기사를 읽었다. 기사 아래에는 여성들의 댓글이 달렸다. 남편과 남친을 위해 자신들이 실제로 수행했던 일과 남자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경험을 설명해놓았다. 아이들 생일선물 챙기기부터 파티 초대에 응답하기, 모든 사람이 정해진 일정에 늦지 않게 움직일 수 있도록 챙기기, 하다못해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지지 않도록 사다 넣기까지 다양하다.

감정노동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은 이 책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듯 보이지만, 나는 감정노동이 남성우정 문제의 핵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은 셔츠를 다리미질할 책임뿐만 아니라, 우정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책임도 여성에게 위임해버린다. 남자는 삶에서 여자를 개인 회사의 인사담당자로 대한다. 남자들이 솔직하다면 결혼식장에 갈 때 소중한 인생 반쪽을 이런 식으로 소개할 것이다. “여기는 내 아내 클라우디아야. 맥스 유한회사의 인사부 부장이지.” 나는 나오미가 나를 위해 인재를 고용하고 해고하며, 팀 단합 이벤트를 계획하고, 내가 파티에서 부적절한 말을 할 때마다 징계 소명 절차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친족 지킴이’kin keeper라는 특별한 용어로 지칭한다. 이 개념은 사회학자 캐롤린 로젠탈Carolyn Rosenthal이 1980년대 중반에 고안했다. ‘친족 지킴이’를 맡은 사람은 가족 유대감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행위를 수행한다. 연구들은 여성이 이런 종류의 책임을 남성에 비해 훨씬 많이 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은 모임 일정을 잡고, 축하 행사를 준비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고, 모든 구성원의 최근 소식을 전달하고, 명절 행사 전반을 떠맡는 등 가족 평화 지킴이 역할을 한다. 친족 지킴이가 없다면 가족관계와 친구관계는 무너질 것이다. 가족이 회사라면 친족 지킴이가 없이는 회사의 어떤 사원도 생일 케이크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몇달간 내가 남자들과 나눈 대화에 근거해봤을 때, 많은 남자들이 연애 파트너를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이것에 공감하기 위해 여자들은 남자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여자라면 이미 자라면서 다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일이나 특별한 날 기억하고 선물 챙기기, 집안 청소하기, 옷 사기, 물건 위치 기억하기 등등. 당연히 여자들이 타고나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 걸 하기를 기대받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 진짜 흥미로운 지적이 많으니 꼭 읽어서 확인해 보시기를. 다 읽고 나니 남자들에게 너무 “당신이 문제입니다!”라고 지적질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우정을 유지하고 싶으면 당신이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번역은 괜찮은데 번역가가 조금 과하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풀어서 설명해 준다고요…? 그래도 남성의 우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위에 언급한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보다) 더 알차게 잘 풀어냈다. 이 주제로 책을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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