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얼 프레스, <더티 워크>
저자는 이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더러운’ 일들을 ‘더티 워크(dirty work)’라고 명명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더럽다는 게 아니라, 비윤리적이고 노동자의 정신 건강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일을 말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노동 가운데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이 있다. 나는 이를 ‘더티 워크’라고 부른다.”
저자가 살펴보는 ‘더티 워크’는 크게 네 가지이다. 교도소의 간수, 드론 조종사, 도살장 노동자, 그리고 시추선 노동자. 솔직히, 얼마 전에 한국 교도관의 에세이인 김도영의 <교도소에 들어가는 중입니다>를 읽었기에 저자가 밝히는, 교도소 내 재소자에 대한 간수의 폭행이나 학대가 그렇게 와닿진 않았다. 물론 한국 교도소라고 그런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민의 법 정서에 적절한 처벌이 따르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은 게 현실인지라(예를 들어 끔찍한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술을 마셨다고 ‘심신 미약’을 이유로 감형하는 일 따위!), ‘재소자의 인권 따위를 우리가 생각해 줘야 하나? 인권이 걱정됐으면 애초에 타인에게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 가면 안 됐지’ 같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흉악한 범죄자들을 매일 마주쳐야 하는 간수들은 경제적인 보수로 메우거나 치료할 수 없는, 큰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만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기 손으로 범죄를 저질러서 그곳에 간 사람들을 ‘교정’하고 ‘재활’하는 것까지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고, 다만 간수 등 교도소에서 노동하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에나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도살장 노동자 이야기는 내가 전혀 들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것이어서 무척 충격적이었다. 요즘엔 동물 복지 달걀이라든지 육류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도 이런 제품들을 마트에서 봤을지언정 그것을 생산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막연히 동물 복지 제품을 사면 동물에게 더 좋을 거라고 여겼지, 그 제품을 생산(즉, 이 동물들을 키우거나 도축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것인지는 내 생각이 미처 닿지 못했다. 도축업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대체로 (그 나라 기준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맡는다고 한다(코로나와 독일 도축장에 관한 기사를 참고하시라). 저자도 미국에서는 라틴계, 아프리카계 미등록 이주민들이 정육공장에서 많이 일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싸니까. 그 나라 국민들은 안 할 더러운 일도 먹고살기 위해서 하니까(국내 축사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에 관해서는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가 잘 묘사했다고 들었다. 나도 읽어 볼 예정). 그렇게 해서 대규모 도축장에서 생산된 육류는 싼값으로 유통된다.
물론, 내가 앞에서 언급했듯, 관심도 있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사람이라면 동물 복지 제품들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동물 복지니 뭐니 하는 걸 따질 여유가 없다면? 그냥 값싼 고기를 사서 먹는 거지, 뭐. 게다가 내가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동물 복지 제품들을 구입하면 관련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도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면 실질적으로 동물 복지 제품을 사용해서 바뀌는 게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정말 뭐가 있는 거지? 이것과 관련해 알 수 있는 자료나 책이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읽어 보고 싶네요.
더티 워커 대부분이 (그 노동의 성격상) 저숙련 노동자라 부당한 상황에 처해도 쉽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일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책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배울 만큼 배웠다는 실리콘 밸리의 노동자들의 경우도 언급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교육 수준이 높아서 자기에게는 더 ‘선택지’가 있다고 느꼈다. 잭 폴슨이 그런 예이다. 그는 구글 인공지능 부서에서 연구자로 일했는데 구글이 중국에서 출시할 검색 앱이 독재 정부의 검토와 승인을 거친 웹사이트만을 보여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상사에게 “인권 침해에 가담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상황에서는 계속 일하기가 불가능하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구글의 행보를 비판했다. 결국 상부에서 그를 회의에 초대했으나 그들은 그의 우려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폴슨은 자신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구글을 퇴사했다. 폴슨은 그래도 저자의 표현대로, “교육 수준과 전문성이 높기에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에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일을 거부할 수가 있었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경제 사정이 그만큼 넉넉하지 않은 이들은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인류가 이런 ‘더티 워크’를 직접 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술이 발전한다면, 우리 인류는 ‘더티 워크’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이 다른 ‘더티 워크’를 창출해낼 수도 있다. 저자가 예를 드는 것처럼, “석유 시추 사업이 자동화된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기계를 설계하고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역할이 기술 업무로 축소되면 책임이 더 쉽게 분산될 수 있으며, 로라 놀란은 바로 이 점이 테크업계의 본질이라고 했다.” 결론은, 우리가 직접 그 노동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후원자 또는 소비자가 됨으로써 책임이 분산되는 그런 시스템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법을 구상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기에 다들 한 번쯤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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