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성우, <단단한 영어 공부>
바람직한 영어 공부법을 제시하는 책인데,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다. 저자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첫째, 영어 '원어민'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
둘째, 언어의 습득은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셋째,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하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한다면 '원어민'처럼 해야 한다는 관념이 강한 것 같다(물론 다른 비영어권 국가들도 원어민을 우러러보는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하지만 정말 영어 원어민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까? 어떤 국가의 영어 원어민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원어민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애매한 문제니 이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미국과 영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인도 등지에서도 영어를 구사하지만 이들 국가는 우리에게 영어의 '표준'으로 여겨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원어민은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어 원어민이라고 해서 모두 맞춤법과 한국어 문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쓰나? 아니다(시간을 나타내는 '지'와 '~인지 아닌지' 할 때의 '지'도 어떻게 띄어써야 할지 몰라 '*이거 맞는 지 좀 봐 줘' 따위로 틀리게 쓰는 한국어 원어민이 허다하다. 영어 원어민도 it의 소유격 its와 it is의 준말 it's를 구분 못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한국어 원어민이라고 수능 언어 영역에서 다 1등급을 받나? 아니다.
한국어 원어민이라고 학교 과제나 업무상 작문을 해야 할 때 어려움을 느끼지 않나? 아니다.
한국어 원어민이라고 해서 다들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잘(=내용을 잘 구성해서)'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한국어든 영어든, 언어와 상관없이, 글은 잘 쓰려고 노력한 사람이 잘 쓰게 되고, 말을 잘하려고 노력한 사람이 말을 잘하게 되는 법이다.
가끔 말이든 글이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모국어의 얘기고, 모든 영어/한국어 사용자가 다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날 수는 없다.
저자는 '원어민'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원어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파이크데이의 말대로 '죽은' 개념일 때가 많습니다. 우선 실제로 누가 원어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어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힘을 가질 때, 나아가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에서 특정 집단은 이익을 봅니다. 원어민을 '고급 상품'으로 포장하고 비원어민은 언제까지나 부족한 존재로 그리며 학습법을 홍보하는 이들이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지요. 이는 영어 교수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확성과 형식은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언어 학습이 더 깊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인 의미와 소통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원어민'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글로벌 시대를 정확히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국문화원과 영국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추산에 따르면, 원어민-비원어민 간의 대화보다 비원어민-비원어민 간의 대화가 더 빈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영어를 국제어로 배운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원어민이 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원어민 콤플렉스나 다양한 발음 및 언어 특성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영어를 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발음이라면 한국 억양이 섞여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죽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영어를 흉내 내기보다는 '살아 있는'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사실 말하기와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내용'이 차지한다. 어떤 주제를 주고 15분간 영어로 말해 보라고 하면 막막하겠지만, 한국어로 하라고 해도 그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이나 의견이 없다면 모국어도 도움이 안 된다.
말인즉슨, 시험을 위해서든 아니면 학업을 위해서든, 영어 글쓰기 또는 말하기를 하려면 일단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내 안에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예컨대 IELTS나 TOFLE의 영작문 시험을 대비한다면, 주장을 제시하는 표현, 결론을 제시하는 표현 등 약간의 어구를 외워 두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용'을 구상하는 게 그 과정의 최소 절반을 차지한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한국어로 할 말이 없다면 영어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에게 영어 공부보다는 일단 우리말 책을 최대한 많이 읽으라고 권한단다.
'완벽하지 않은' 글에 힘과 의미를 불어넣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영어라기보다는 깊이 있는 내용과 관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공부하기보다는 관련 지식을 쌓고 이에 기반해서 영어를 공략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언어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학업 또는 취업 등을 위해 영어를 배우지만, 사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언어다.
그리고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더라도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훌륭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만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Can you speak English?)'라든가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도와 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다짜고짜 영어로 자기 할 말만 늘어놓는다면? 그런 사람에게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또는 다른 언어)를 못한다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이티브 이데올로기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소통의 부담을 오로지 학습자에게 전가하는 태도와 관행입니다. 원어민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학습자의 책임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죠.
물론 상대가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라면 원활한 소통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누구나 동의하고요.
그런데 영어의 경우에는 비원어민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높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죠.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이런 생각은 소통은 언제나 쌍방향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같은 모어를 쓰는 사람 간의 소통이건, 원어민과 비원어민 간의 소통이건, 소통은 언제나 주고 받음입니다. 일방향 소통은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소통이란 여러 사람들이 경험과 생각을 교환하는 행위니까요.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영어를 어떻게 배우는 게 좋을까를 간단히 알아 보자.
'인풋'을 무조건 늘린다고 좋은 게 아니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조금씩, 그리고 집요하게 공부하는 게 최선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중 몇 가지만 옮겨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마음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내 상황에 맞춰 써 보세요.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배웠다면 내 주변 사람들과 엮어 보고, 새로 배운 속담을 제목으로 하는 경험담을 써 봅니다. 회사 내 인간관계를 다룬 지문을 읽었다면 그 내용을 현재 직장에 적용해 보고 몇몇 문장을 활용해 상사와의 관계를 묘사해 볼 수도 있습니다.
단어를 공부하는 첫 번째 원칙은 '짝꿍과 함께 기억하라'입니다. '짝꿍'이란 함께 자주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영어 교육에서는 '연달아 나오는 단어, 함께 등장하는 단어'라는 뜻에서 collocation이라고 부릅니다. (...)
짝궁단어 학습을 위해 가장 좋은 전략은 평상시 읽는 텍스트에서 '형용사+명사', '동사+명사', '명사+전치사', '부사+형용사' 등의 표현을 수집하는 것입니다. 읽기 자료에서 개별 단어만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짝궁단어도 길어 올리는 방법입니다. '단어 암기'에 '짝꿍단어 암기'를 더해 텍스트를 공략하는 습관을 들여 보세요.
이와 함께 다양한 짝꿍단어 사전을 활용하면 좋급니다. 웹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전이 오즈딕(ozdic.com)입니다. (...)
'자막 없이 보기'나 '영문 자막으로 보기'에는 자주 실패한다 해도, 드라마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좋아하는 미드나 영드를 통해 색다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를 살리는 말하기 연습'을 소개합니다. 뉴스나 강연에는 없는 드라마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말하기 연습에 활용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1) 좋아하는 미드나 영드를 고른다.
(2) 한글 자막으로 한 번 본다. 내용에 집중하며 즐겁게 시청!
(3) 가장 좋아하는 극중 인물을 고른다. (셜록도 좋고 데어데블도 좋다. 이 인물이 바로 자기가 맡은 배역이다.)
(4) 같은 에피소드를 영어 자막을 켜 놓고 본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기 배역을 연기한다. 단지 영어 표현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스페이스바를 눌러 일시정지를 해 가며) 표정이나 말투까지 완벽하게 따라 해 본다.
(5) 이 작업을 반복한다.
(6) 점점 그 캐릭터가 되어 간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배역 하나를 소화하게 됩니다. 단순히 듣고 따라 말하는 연습이 아니라 '되어 보는(becoming)' 연습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 수 있지만, 몰입하다 보면 재미가 납니다.
이 외에도 네이티브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는 내용이 참 마음에 드는데 여기에서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아쉽다.
전반적으로 글도 쉽게 썼고,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해 왔던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고등학생만 되어도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다고 본다.
리디셀렉트에서도 제공되고 있으므로 리디셀렉트 이용자라면 한번 찾아보시라.
굳이 리디셀렉트 이용자가 아니라도, 영어 또는 어떤 외국어든 공부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쓰디쓴 잔을 마셨던 분들께 추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외국어 습득의 마음가짐과 방법을 자기 것으로 익힌다면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기타 등등 다른 언어에도 다 적용히 가능할 듯하다.
굳이 영어(또는 타 언어) 공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언어 습득 과정에 대해 기초 지식을 쌓기 위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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