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나카무로 마키코, 쓰가와 유스케,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리디셀렉트에서 골라 읽은 책인데, 솔직히 내가 이걸 100% 이해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연말을 뭔가 우아하고 교양 있게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흡족하다.
사건들의 인과관계, 그러니까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밝히는 법에 관한 책인데, 특히 근거 없는 통설이 수없이 많은 분야들 중 하나인 교육과 의료 분야 사례를 위주로 살펴본다.
책 도입부에서부터 저자들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 보자.
- 건강검진을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
-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 성적은 떨어진다?
- 명문 대학을 졸업하면 연봉이 높다?
전부 'YES'라고 답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틀린 이야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체력이 좋은 아이일수록 성적이 높은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이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일단 체력부터 길러 주어야 할까?
'두 개의 사실 중 한쪽이 원인이고 다른 한쪽이 결과'인 상태를 '인과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체력이 좋다는 '원인'에 의해 성적이 높다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 관계는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두 사실이 서로 관계는 있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지 않은 것'을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만일 두 사실의 관계가 상관관계라면 '언뜻 원인처럼 보이는 것'이 다시 발생해도 기대하는 '결과'는 얻을 수 없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체력이 좋기 때문에 성적이 높다'는 말은 '체력만 좋아지면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체력과 학력의 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아이의 체력을 길러 주어도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이 교훈은 매우 중요하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가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이 잡히셨는지? 아니어도 괜찮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될 테니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당연히 ~하겠지'라는 내 어설픈 추측이 많이 깨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금연을 의무화하면 흡연자들보다는 비흡연자들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게 되어서 더 건강해질 것 같은데, 비흡연자들이 더 건강해진다고?
(...) 이를 자연 실험으로 본 아르헨티나 보건부 연구진들은 규제가 엄격한 산타페주(실험군)와 그렇지 않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대조군)를 비교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이 두 지역 모두 규제가 도입된 후에도 흡연율에는 변화가 없었다. 흡연자들은 규제가 도입된 후에도 담배를 끊지 않았던 것이다. 단, 엄격한 규제를 도입한 산타페주에서는 심근경색으로 입원하는 환자가 부에노스아이레스시보다 13퍼센트나 감소했다. 이는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아니라 간접흡연의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개선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놀란 것. 최저임금의 상승은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는다('최저임금이 올라서 아르바이트생을 못 쓰고…' 웅앵웅 하시는 분들은 아래 인용문을 잘 읽어 보시라).
연구 분석 결과, 최저임금의 상승은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 최저임금의 상승은 쥬저지주의 물가 상승을 초래하였는데, 결국 기업들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구조조정이 아니라 가격에 반영해 타개해 나가려고 한 것이다. 메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아린드라지트 두베(Arindrajit Dube) 교수 팀이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주의 사례를 미국 전역으로 확장한 논문에서도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인과 효과는 확인할 수 없고, 최저임금의 완만한 상승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은 한정적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세 번째,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 어울린다고 해서 자녀의 성적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앵그리스트 교수 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스턴과 뉴욕의 학교 가운데 컷오프 값 주변에서 이후 학력의 '점프'가 나타난 학교는 없었다. '또래집단 효과'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 설이 있지만, 성적이 높은 친구와 사귀는 것의 인과 효과를 밝히고자 했던 연구에서는 앵그리스트 교수 팀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경우가 많았다.
전미경제 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NBER)제프리 클링(Jeffrey R. Kling) 연구 팀은 미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 는 대규모 랜덤화 비교 시험, '기회가 있는 곳으로의 이주(the moving to opportunity, MTO)'에 주목했다. 이는 자녀가 있는 빈곤층 가정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빈곤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쿠폰을 주는 정책이다. 추첨에 당첨돼 이주한 곳에서 자신들보다 학력이 높은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닌 학생들의 학력을, 추첨에 떨어져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생활한 아이들의 학력과 비교해 본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많은 학부형들의 기대를 저버려 유감스럽지만, 공부 잘하는 친구에 둘러싸여 고등학교 생활을 해도 자녀의 학력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는 이야기다.
위에 세 가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자연 실험'이나 '컷오프' 같은 전문 용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설프게 설명하려 드는 것보다 그냥 책에서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빅데이터'가 큰 화두가 되고 있는데, 넘쳐나는 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안에서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를 밝혀 내어야지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원인-결과를 캐치하는 눈을 기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엄청 어려운 책은 아니고 한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웬만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므로 걱정하지 말고 한번 거들떠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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