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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홍혜은, 김현, 이승한, 장일호, 이민경, 최현희, 서한솔, 솔리, 최승범, 김애라,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by Jaime Chung 202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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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홍혜은, 김현, 이승한, 장일호, 이민경, 최현희, 서한솔, 솔리, 최승범, 김애라,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별로 두껍지는 않은 책인데, 한번 읽어 볼 만하다.

1부에는 작가 및 기자들의 글이, 2부에는 현직 교사의 글이 실려 있다.

책 뒤에 실린 '#학교에_페미니즘이_필요한_이유'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을 응원하고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시행할 것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교육청에 보내기 위해 모은 해시태그 글"을 묶은 것이다.

이 시민들 중에는 학생도 있고, 졸업한 지 꽤 된 성인도 있으나, 솔직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는 앞 1, 2부에 실린 저자들의 글 못지않다.

 

나는 1부에 다섯 번째로 실린 이민경 씨의 글 중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든다.

페미니즘은 학교 밖으로 내몰려야 하기는커녕, 진작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되어야 했다. 그랬다면 학교는 우리에게 좀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일 수 있었다. 애증이 아닌 애정을 담아 학교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창시절을 회고했을 때 곧바로 후회가 드는 일은 내 대에서 끝나야만 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곧 그렇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페미니스트 교사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이 또 다른 그들의 등장을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기어코 그들은, 언제나 현상 유지라는 입장을 취하기 마련인 학교가 유지하려고 들 더 나은 새 현상을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아, 나 때에도 학교에 페미니스트 선생님들이 계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딱히 그분들이 나쁜 분들은 아니었다. 다만 성평등에 관해 당신들도 배운 바가 없었으므로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시지 못했던 것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듯,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남에게 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페미니스트 교사가 아니면서 좋은 교사일 수 있을까? 인류의 절반인 성을 하대하고, 인권을 짓밟고, 이런저런 굴레로 억압하는 사람을 어떻게 참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인성을 개발하고 건강한 민주 시민을 길러 내는 곳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이런 나라에서 말이다. 

아니, 그런 이념적인 것들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나를 인간으로 존중해 주지 않는 교사를 어떻게 믿고 따를 것인가?

이에 대해 교사 최현희 씨는 이렇게 썼다.

나는 교사라면 누구나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믿는다. 페미니스트 교사가 대체 별거인가? 인간을 성별로 제한 짓지 않고 위계적인 성별 이분법 안에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아이들을 욱여넣지 않는 교사, 자신의 교실 언어와 일상 언어에 스민 차별과 편견은 물론, 교육 활동의 모든 관습에 질문을 품고 고민하는 교사가 바로 페미니스트 교사이다. 페미니스트로 저절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페미니스트가 아니면서 좋은 교사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무척 공감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 더욱더.

 

김애라 선생님은 페미니스트 선생님과 아직 페미니스트가 아닌 선생님들께 당부하는 글을 썼는데, 그중에서 난 특히 이 부분이 인상 깊었다.

셋째, 여성과 남성이 각기 서로의 짝, 한 쌍이라고 가르치지 말아 주세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우리는 각기 이성 짝을 갖게 됩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의 관습은 여성과 남성이 한 쌍이라는 점을 교육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여성과 남성이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여성적인 일과 남성적인 일,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라는 이분법을 강화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상보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대개 여성과 남성에게 여성적 삶과 남성적 삶을 강요하는 근거로 사용됩니다. 생계 부양자이자 가장으로서의 남성 역할, 가사노동과 육아 전담자로서의 여성 역할은 바로 이 '여성과 남성이 한 쌍이며 이 둘이 각기 자신에게 적합한 역할을 해냄으로써 정상적이고 보통인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믿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여성과 남성이 한 쌍이라는 믿음은 특히 여학생들에게 다양한 관계 가운데 남자 친구 혹은 미래 남편만이 가장 중요한 관계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관계와 삶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며, 다양한 삶의 경로 가운데서 결혼과 경력 단절·육아로 이어지는 소위 '여자의 삶'을 선택하게 합니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의 유일한 짝이 아닙니다. 여성과 남성은 물론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역시 여러 의미에서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참 신선하고 놀라운 관점이었으며, 납득도 됐다.

 

나는 학생 신분을 졸업한 지 오래라 요즘 공교육의 현실은 잘 모른다. 하지만 부록으로 딸린 '#학교에_페미니즘이_필요한_이유'를 보면 성평등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갈망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여성 혐오가, 기울어진 성 역할에 대한 의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으나, 이제는 어린 학생들도 성평등이 무엇이고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최소한 대충은 알고, 이에 대해 더욱 배우고 싶어 한다.

게다가 지금이야마로 개인의 타고난 생물학적 성(性)과 무관하게,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자는 시민 교육이 필요한 때다.

학생들의 바람을 담아 성평등 교육이 전국적으로 널리 실시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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