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종철, <까대기>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화가의 꿈을 키워 온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만화이다.
'까대기'란 택배 상하차 작업을 말한다(본문에서는 "가대기: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직접 일하며 본 택배 업계의 현실이 잘 표현돼 있어서, 이걸 보고 나서는 절대 택배가 하루이틀 정도 늦는다고 불평할 수 없게 됐다(원래도 그렇게 불평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택배 상하차 작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화물차에 실린 택배를 아르바이트생들이 레일 위로 내리고, 지점장이 이 택배 송장에 있는 바코드를 PDA 스캐너로 찍는다. 지점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럼 택배 기사들은 레일을 따라 내려오는 택배의 주소지를 확인하고 담당 지역으로 온 택배를 골라낸다.
저자는 "까대기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중노동이다."라고 썼는데, "화물차 한 대에 실려 있는 택배는 많게는 천 개 이상이다. 한 대의 물량을 하차하는 데 40~50분쯤" 걸린다.
그리고 하루에 적게는 세 대, 많게는 다섯 대의 화물차를 까대기한다.
그러면 대략 오천 개의 택배를 들어서 레일에 내리고 바코드를 확인하는 셈이 된다.
택배 기사님이 우리 집에 택배를 배달해 주실 때까지 이렇게 힘든 과정이 있는 줄, 이렇게 자세히는 몰랐다.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한 지점에서는 택배 기사들이 직접 까대기를 하는데, 까대기를 하고 곧바로 배송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까대기 과정을 만화로만 봐도 힘들고 정신없는데 도대체 왜 택배 기사님들의 인건비는 그렇게 낮은 것일까? 정말 안타깝다.
본문에서도 한 택배 기사가 인건비 상승을 요구하기 위해 다른 기사들과 단결해 파업을 시도하려 하는데, 결국 다른 기사들이 이에 참여하지 않아서(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결렬되는 장면이 나온다.
나 같은 사람이야 뭐 급한 물건이면 그냥 직접 동네 마트 같은 데서 사고 다른 건 며칠 기다려도 상관없으니 택배 기사님들이 인건비 상승을 위해 파업을 하셔도 불편함을 감수할 의향이 있지만, 아무래도 모든 사람이 나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만화에서도 빨리 택배를 배달해 달라고 재촉하는 할머니와 택배 기사님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할머니는 당신 동생이 보낸 채소를 그저 안전하고 빨리 받아 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뿐이었고, '진상'은 아니었다. 기사님에게 따뜻하게 데운 꿀물을 선물하기도 했으니.
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먹고 사는 게 팍팍하면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기 힘든데 이 기사님은 그래도 할머니가 악의가 있어서 자신을 재촉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이해하고 넘어가셨구나...
나라면 일이 바쁜데 왜 귀찮게 전화질이냐고 화를 냈을 텐데.
아무래도 인생은 평생 인격을 수양하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만화 속에서 택배 기사님들이나 지점장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존대말을 하거나 좀 더 가까워지면 그제서야 말을 놓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게 소설적인 미화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꼭 블루 칼라 노동자라 '못 배운 이들이 그렇게 점잖을 리가 없다'라고 단정 짓는 게 절대 아니다. 나도 사무직을 해 봤지만 거기에서도 어리다고, 또는 자기보다 직위가 아래라고 다짜고짜 반말하는 작자들을 너무 봐서 빡이 치는 마음에 하는 말임... 예의는 밥 말아 드셨는지?
아침에 까대기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다른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 들어와 조금 잤다가 다시 아침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극한의 스케쥴에서도 꾸준히 만화를 그렸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다행히 저자가 다른 이야기 작가와 협업해 그 작가와 같이 책을 내게 되어 이 이야기는 나름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맺지만, 현실에서 늘 그런 행운이 따르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에 조금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택배 기사나 까대기 아르바이트가 절대 비천하거나 나쁜 일이라는 게 아니고, 그분들의 처우가 나아졌다든지 하는 식의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뜻이니 오해 마시라.
어쨌거나 이제 한국의 택배 체계에 더욱더 큰 고마움을 가지게 되었다. 택배 기사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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