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이번에도 <아무튼> 시리즈에서 한 권을 골라 들었다. 그런데 웬걸, 대박, 심봤다!
저자인 류은숙은 인권 운동(movement)을 25년이나 해 온 인권 운동가이다. 그런 그녀가 의사 선생님의 불호령을 듣고 나서 운동(exercise)을 시작했다.
평소 "이대로 막 살다가(=폭음과 폭식을 즐기다가) 혹시 병 걸려 죽을 것 같으면, 다 정리하고 여행을 떠날 거야"라고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 말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풀어 내느냐가 작가의 역량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걸 실감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시야를 가지고 삶을 바라보는데, 때로는 다른 이들의 시야를 빌려 보는 것이 삶의 방향성을 알려 주거나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기도 한다.
피트니스에 관한 에세이라면, 대략 '운동을 하고 나서 몸이 이렇게 가뿐해졌고, 삶이 즐거워졌어요!' 같은 내용일 거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인권 운동가라는 시각은 내가 좀처럼 접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기에, 그 신선함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운동을 하면서 PT 트레이너의 근무 조건까지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또한 인권 운동가라 그런지, 저자의 문화적 소양이 그냥 모든 것에 깊게 배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몸이 전체적으로 피로하고 찌뿌둥하다는 말을 "<걸리버 여행기>에서 잠에서 깨어 보니 소인국에서 온몸이 줄로 묶여 말뚝에 박혀 있는 걸리버 같다고나 할까."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아동용 동화로도 각색되어 넑리 읽히고 위의 표현에서 언급된 일화는 누구나 기억할 만한 것이지만, 피곤하다는 표현을 할 때 이 작품의 이 장면을 인용해서 할 정도라면, 그냥 책을 '읽었다'에서 끝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아닐 테다.
그래서 저자의 '짬밥'이 너무나 놀라웠고 감탄스러웠다.
내가 좋아한 포인트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이렇다. 저자가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나도 너무나 공감이 됐다.
처음 운동할 때 퍼스널 트레이너가 자신을 '개처럼 굴린다'고 느낀 것이나, 운동을 위해 몸에 맞는 운동복을 골라 입으면서 '지금 내 맘에 들게 입자'고 생각을 바꾼 것이나('살을 빼서 나중에 예쁜 옷을 입자'가 아니라 곧 살이 빠져서 다시 옷을 새로 다 사야 한다 해도 지금 당장 '내 마음에 들게' 옷을 입는 게 내 기분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다) 운동을 하는 데 들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것 등등.
운동을 하다가 어디가 다쳐서 운동을 할 수 없게 되면 오히려 더욱더 운동이 하고 싶고 그리워지는 것도 나와 똑같았다.
저자도 무릎을 다쳐서 운동을 한동안 쉬어야 했는데, 다시 운동을 시작한 날 "막 입학한 새내기의 설렘으로" 체육관에 들어갔단다.
(...) 그러나 아무리 느려도 나는 움직이고 있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분홍 신을 신고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처럼, 운동화를 신고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새긴 것이다. 몸에 새긴다! 이 말이 참 좋다.
여기에 나온 '나는 뭔가를 새긴 것이다'는, 위의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책 표지에도 인용됐다. 너무 멋진 말이다. 운동을 한다는 건, 운동을 몸에 새긴다는 것.
저자가 인권 운동을 위해 꾸준히 공부를 하고 글을 읽어 온 사람이라 그런지, 운동을 하면서 배우는 '몸의 가르침'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선하게 표현한다.
데드리프트(deadlift) 동작을 배울 때, 저자는 자신의 몸 어느 부위에서 어떤 느낌이 오는지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는 점을 배운다.
'바로 이 느낌이야!'
드디어 빨간 색연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친 순간이 왔다. 이때의 감각을 기억해야 한다. 옆에서 봐주지 않더라도 내 몸 어느 부위에 어떤 느낌이 오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나이스(저자의 퍼스널 트레이너가 스스로 붙인 별칭)는 내가 운동을 하고 나면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가 어딘지 나에게 물어보고 확인했다. 근육통은 내가 제대로 동작을 취했는지를 확인하는 잣대다. 과녁으로 삼은 위치가 아프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면 자세가 틀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걸 내 방식으로 이해했다. 글을 쓸 때 '은/는, 이/가'라는 조사 중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조사를 잘못 썼을 때는 내가 전달하려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 전달되곤 한다. 나는 '지금 취하려는 자세가 조사 고르기처럼 까다로운 것 같다'고 했다. 나이스는 맞장구쳤다. "맞아요, 글 쓸 때 조사가 중요한 것처럼 운동할 때도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세요."
또 내 마음에 들었던 것. 보통 몸을 힘들게 움직이며 하는 일(말하자면 사무직의 반대말)을 하면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이고, 늘 쓰는 부위들만, 같은 동작으로 쓰기 때문에 딱히 생각만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운동'은 온몸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하는 것이고. 저자는 '노동'과 '운동'의 차이를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에 비교하며 아주 멋지게 표현했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다 보면 하늘을 떠받친 헤라클레스가 된 느낌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건 원래 거인 아틀라스의 역할이다. 아틀라스는 제우스에게 패했기에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는다. 헤라클레스는 황금 사과를 구할 작정으로 잠시 아틀라스 대신 하늘을 떠받친다. 형벌로써 아틀라스가 하늘을 지는 고역과 헤라클레스가 자발적인 목적으로 하늘을 지는 것은 다르다. 세상사에서 짊저져야 할 비자발적인 고역과 자발적 수고의 차이, 매번은 아니더라도 나는 되도록 헤라클레스처럼 하늘을 지고 싶다.
기가 막힌 비유다.
같은 꼭지 후반부에 더 멋진 말도 나온다. 저자가 농사 짓는 후배네 집에 가끔 내려가 일손을 가끔 돕는데, 역기 드는 얘기를 했더니 후배가 그렇게 힘을 쓰는 것이 참 '아깝다'고 했단다. 장미란 선수도 그렇고, 그 힘을 딴 데 쓰면 좋겠다는 것이다.
엥? 물론 일손이 아쉬운 처지에 할 만한 농담이긴 하지만, 노동과 운동은 엄연히 다른 거다. 그리고 사람은 때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해야 한다.
아틀라스처럼 일로 힘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쓰는 힘도 필요하다. 일이 아닌 데다 에너지를 들이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흔히 사치라 한다. 그러나 어디 삶이 필수품만으로 이루어지는가. 살아가려면 간혹이라도 사치품이 필요하다. 여유와 틈을 '사치'라고 낙인찍은 건 아닐까. 그렇게 사치라는 말은 '분수를 지켜라' 하는 말로도 바뀌어 우리 삶을 단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힘을 쓰는 일이 사치라면, 난 내 힘을 하늘을 들어 올리는 데 쓰는 사치를 마음껏 부릴 것이다.
이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음 같아서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종이책 기준 153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라 더 이상 이야기했다가는 여러분이 읽을 게 없을 듯하다.
그래서 이쯤 해 두지만, 그래도 이건 말해 두고 싶다. 저자와 퍼스널 트레이너 간의 인간 대 인간다운 우정이 참 멋지다고.
운동을 해 본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아무튼> 시리즈를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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