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코디 캐시디, 폴 도허티,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우리가 흔히 궁금해하는, '이렇게 해도 죽을까?' 하는 상황과 죽음을 맞는 다양한 방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비행기 창문이 날아가 버린다면?", "백상아리에게 물린다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진다면?", "산 채로 땅속에 묻힌다면?" 등등.
죽는 방법들은 크게 "위험천만하지만 흥미진진한 죽음들"과 "더 오싹하고 하드코어한 죽음들"로 분류돼 있는데, 어떤 방법이든 두 저자가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 책의 매력 포인트이다. 생각도 못한 사망 방법을 엄청 친절한 말투로 설명해 주는 것.
살벌한 내용과 친절한 말투가 만나서 섬뜩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블랙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백상아리에게 물린다면?"이라는 궁금증에서 저자들은 작은 상어들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지만, 큰 상어에게 공격당하면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 길이가 6미터까지 자라는 백상아리라면 맛보기로 한 입 잘근거리기만 해도 큰 타격을 줍니다. 그런데 애초에 상어가 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아마 먹기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과학자들이 상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몸을 일일이 맞춰 보니, 살점 1조각도 빠진 게 없었습니다. 사람을 무는 백상아리의 행동은 밥을 먹기 싫은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밥그릇 속의 콩을 잔뜩 헤집어놓지만 정작 입으로 들어가는 콩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상어에게 사람이 얼마나 맛없는 먹잇감인지 알면 묘한 모욕감마저 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독히 맛없는 이 인간을 상어는 왜 무는 걸까요?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상어가 먹잇감을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상어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을 바다표범으로 오인한다는 것이지요. 바다표범은 상어가 즐겨 사냥하는 먹잇감이거든요. 그래서 상어는 인간을 덥석 물었다가, 바로 실수를 깨닫고 뱉어 버립니다. 마치 우리가 설탕 대신 소금을 들이부은 반찬을 먹었을 때처럼 말이지요.
상어의 행동을 너무나 덤덤하게 인간의 행동에 비유해서 '인간이 맛이 없어서 미안해ㅠㅠ'라는, 말도 안 되고 근거도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유머 감각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저자들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수준의 내용부터 우주 과학까지,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분야를 따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듯하다. 그리고 그걸 독자들 수준에서 쉽게 잘 설명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특히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법한, 아주 특이하고 놀라운 사건이나 흔히 이야기되지 않는 일들을 알게 된 게 제일 좋았다.
"벌 떼의 공격을 받는다면?"이라는 궁금증에서 저자들은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란 사람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고환에 꿀벌의 공격을 받았는데, 의외로 생각만큼 아프지 않다는 것에 놀라 '고환에 쏘인 게 최악이 아니라면, 어디가 제일 아플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 스스로 실험을 시작한다.
매일 아침 핀셋으로 꿀벌을 집어 피부에 댄 후 침을 쏠 때까지 눌러 자극을 가했다.
하루에 총 5번 벌에 일부러 쏘였는데, 비교 대조를 위해 첫 번째와 마지막에는 팔뚝에, 그리고 나머지 세 부분은 스미스의 선택을 받은, 어느 불쌍한 신체 부위에 쏘였다.
잠깐, 여러분이 질문하기 전에 미리 말할게요. 스미스는 이미 벌에게 고환까지 쏘여 본 사람입니다. 당연히 몸의 '어느 부위든' 실험했을 테지요!
벌에 쏘였을 때 가장 덜 아픈 부위는 두개골, 가운뎃발가락, 팔뚝 위쪽이었습니다. 스미스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겨우 2.3을 기록했지요. 그다음 발짝 쫓아온 것이 엉덩이로, 3.7의 통증 지수를 나타넀습니다.
반대로 통증이 심한 부분은 얼굴과 음경, 콧속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쾌락과 고통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벌에 쏘여 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부위를 벌에 쏘였을 때, 쾌락과 고통이 교차하는 지점은 단연코 없었습니다."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스미스는 벌통에 들어갈 때 얼굴에 마스크를 쓰지 않느니 차라리 팬티를 입지 않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그 어떤 선택도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겠지만요.
"콧속에 벌침을 놓는 순간, 강렬한 전기 충격에 코 전체가 지끈거렸습니다. 곧바로 심한 재채기와 함께 눈물이 쏟아졌고, 엄청난 양의 콧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스미스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최종 수치를 확인하다면(물론 당신이 관심을 보였다면 스미스는 기꺼이 표본의 수를 늘렸을 겁니다), 벌에 음경을 쏘였을 때의 고통 수치는 7.3, 윗입술은 8.7을 기록했습니다. 최악의 부위는 바로 콧속으로, 수치로 무려 9.0에 달했습니다.
흠, 어쩐이 여드름이 콧속이나 인중에 나면 짤 때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프더라니. 역시. 나의 개인적 경험에 과학적 근거가 생긴 것 같아 어째 뿌듯하다.
아, 이 책은 과학 서적인데도 어딘가 낭만적이고 시적인 부분이 있다. 그게 또 블랙 코미디스러운 면모와 맞물려서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낸다.
이 책에서 아름답고 예상 외로 로맨틱한 부분을 하나 꼽자면 다음을 들 수 있겠다. "우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다면?"이라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의 마지막 부분이다.
좋은 소식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이 아주 멋지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구에서 보면 당신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으로, 어떤 별똥별보다 밝게 빛날 것이며 낮에도 보일 겁니다. 그리고 별똥별처럼, 적어도 처음에는 당신 몸의 그 어느 한 조각도 지구까지 내려오지는 못합니다. 대신 이온화된 플라스마가 공중에 퍼지겠지요.
그러나 마침내 외로운 핵이 잃어버린 전자의 대체품을 찾아 다시 완전한 원자가 되면, 역사상 가장 높은 곳에서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한 당신의 기록을 마무리 짓기 위해 땅에 흩뿌려질 겁니다. 당신의 몸에는 수많은 원자가 있으니 적어도 그중 하나는 대기를 떠돌며 모든 이의 숨결에 물들겠지요. 영원히.
이런 게 이과 감성일까? 배운 이들만 할 수 있는 이런 표현이라니... 😍
책 원제는 <And Then You're Dead>로, "~하면, 당신은 죽습니다"라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짓지 않았나 싶다.
평소에 과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책의 큰 주제(여러 가지 죽는 방법)에 흥미를 느낀다면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굳이 과학적 개념을 다 이해해야 하는 책이 아니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도 있고 말이다.
현실에 기반을 둔 블랙 코미디를 찾는 분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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