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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캘리 브라운, <어덜팅>

by Jaime Chung 202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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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캘리 브라운, <어덜팅>

 

책 제목인 '어덜팅'은 '어른'을 뜻하는 영어 명사 'adult'를 동사형으로 사용해 동명사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음과 같다. '어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어른은 일상의 작은 결정들을 올바르게 내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어른답게 행동해 보자. 실수로 아침 식사를 다이어트 콜라로 때웠다고 해서 누군가 들이닥쳐 어른 증명서를 뺏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은 우유를 마시면 된다. (...)

내 생각에 어른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나이 먹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속으로는 어른이라고 느끼지 못해도 겉으로는 어른인 척 행동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스러워지는 건 아니니까. 신체적, 호적상 나이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먹는 거지만, 그에 맞는 '나잇값'은 내가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어른처럼 행동하는 법'에 대해 총 463개의 팁을 알려 준다.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는데 대체로 한 페이지에 두 개 정도라고 하면 길이가 짐작이 가시려나.

개중에는 정말 '취향을 숨기지 말고 좋아하는 것은 그대로 좋아하자'라든가 살림이나 요리에 관한, 다소 가볍고 밝은 이야기도 있고, 

돈 관리, 보험, 장례식이나 응급 상황 같은,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도 있다.

미국인 저자가 쓴 거라 우리나라 문화와 100%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에이, 말도 안 돼. 터무니없어!' 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저자도 이 책에 나온 모든 내용을 다 시도해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하니까, 읽어 보고 별로다 싶으면 실천 안 하면 그만이다.

참고로 저자는 27세 기자다. 중년의 저자가 '내가 살아 보니 이래야 하더라' 하고 지혜를 나눠주는 게 아니니 혹시나 오해(또는 과한 기대?) 마시라.

 

개인적으로 내가 공감하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 조언만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다.

11 6개월짜리 문제에만 신경 쓰자
몹시 화가 났다면, 
14 나의 몸과 주변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돈해도 되고(122번 참고) 정돈하지 않아도 된다. 두루마리 휴지를 사 둘 수도 있고 사 놓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더 좋은 사람이나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정돈된 침대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그 침대를 정돈할 사람은 단 한 명, 자신뿐이라는 걸 기억하자. 이 원칙을 다른 수많은 경우에도 적용하자.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보다 적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49 테플론 코팅 같은 성격을 키우자
아, 말은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날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상대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어떤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부터 겉면에 매끄럽고 흠집 없는 테플론 코팅으로 둘러싸여 세상에서 제일 까칠한 심술, 쓰라림, 분노, 광기도 들러붙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다른 사람이 내던지는 끈적거리는 공격은 내게 붙어있지 못하고 미끄러져 떨어져 나간다. 나쁜 기분, 어두운 표정, 무뚝뚝한 대답 전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기자. 잠깐 영향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게 처리하자. 그런 일은 종이 타월로 한 번 쓱 닦아내면 될 뿐 밤새 비눗물에 담가 놓을 필요는 없다. 난 어른이다. 남의 어떤 태도가 5분짜리 영향을 줄지 아니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할지는 내게 달렸다.
64 할 수 있는 한 가장 우아하게 가족을 대하자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애인, 직장 동료, 그리고 넓게는 이 세상 사람들 전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잠시 말을 멈추고 25년간 가족 및 커플 상담을 해 온 사회복지사 레이니 키벨이 한 말을 소개한다.

"전 '우아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사람들과 우아하게 교류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우아하게 해석해서 늘 최상을 기대하고 남들이 자신을 악의 없이 대할 거라고 예상하는 태도 말이죠. 만약 상대의 마음을 잘 모르겠거나 상대가 내 감정에 상처를 입혔다면 설명해 달라고 말하고, 사과하라고 요청해야 해요."

 

청소법이나 사고가 났을 때 대처법 등이 팁으로 제시되는데, 아주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썩 도움이 될 듯하다.

다만 번역 과정에서 로컬라이징을 미묘하게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피할 수 없다. 돈 관리 얘기에 한국에는 없는 '401(k)' 보험이 한 페이지 넘게 나오는 걸 그냥 놔두었다든가, '수동적 공격성' 같은 표현을 그냥 옮겨 놓은 게 그러하다('다이소'나 경찰서, 소방서 번호는 국내 실정에 맞게 잘 바꿔 놓고선).

(참고로 '수동적 공격성'이란 삐쳐서 까칠하게 군다고 표현하는 게 한국어 정서에 제일 잘 어울릴 듯하다. 대놓고 욕하거나 불평하는 건 아닌데 돌려서 사람 성질을 긁는 것. 예컨대 내가 여러분에게 요리를 해 줬는데 여러분이 하필이면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내가 만든 음식을 다 먹지 못했다고 치자. 이때 그냥 대놓고 '네 몸이 안 좋아서 요리를 다 못 먹으니 아쉽네'가 아니라 (이건 정상) '아냐, 괜찮아. 어차피 내 요리 맛대가리도 없는데. 안 먹어도 돼. 먹지 마. 못 먹을 걸 줘서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이건 비정상)  미묘하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수동적 공격성'이다. 그냥 '수동적 공격성'이라고만 써 놓으면 단번에 알아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건강 문제(라고 쓰고 성병이라고 읽는다)"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번역인지 모르겠다. 일본어도 아니고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을 했는데 왜 일본어식 표현이 쓰인 거지? 그리고 "(섹스가) 시들어진다"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한 건지? '섹스가 시들해진다'도 아니고('시들해지다'를 검색해 봤는데 이것도 사전에 안 나온다. 그래도 이건 대충 이해는 되지 않나). 사전에 나오는 표준어는 '시들다'인데. 

나는 번역가가 맞춤법을 100% 다 지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타나 맞춤법 틀린 것, 오류 정정은 편집자 몫이니까(책임 전가가 아니다. 나도 편집자 일을 해 봐서 하는 말이다). 근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편집자가 게을렀던 게 아닌가? 너무 실망스럽다.

이런 오류의 최고봉은 챕터 11의 "나오지 않는 만약 실제로"이다. 전체 문장을 옮겨 적자면 이렇다.

"대략적인 길잡이 정도로 봐야 하며 '간단한 심장 제세동기 사용 방법을 익히자!'와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 만약 실제로 심장 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응급실에 연락해야 한다."

'~나오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를 쓰려다가 어쩐 일인지 '다.'를 날려먹은 듯하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실수다. 내가 리디셀렉트로 이 책을 다운받아 봤기에 망정이지, 내 돈 주고 사서 봤으면 진짜 항의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편집상의 실수를 너그러이 눈감아 준다고 해도, 과연 저자가 제시하는 "어른인 척하는 깨알 팁 대방출"(이 책의 부제이다)이 도움이 될지는, 글쎄, 여러분이 직접 판단하셔야 할 듯.

왜냐하면 어떤 게 어른스러운 삶이고 어른스러운 행동인지는 주관적인 거니까. 저자의 모든 조언이 다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어른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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