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임수희, <사서, 고생합니다>
사서가 쓴 에세이. 사서가 도서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 놀랐는데, 책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내가 여태껏 사서가 쓴 글을 읽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종종 서점 직원이 쓴 글, 또는 서점 직원으로 설정된 인물이 등장하는 글은 읽었는데, 진짜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가 쓴 글은 이게 처음이다.
사서들이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 도서 정보 레이더망이 좁았던 걸까? (당연히 후자겠지.)
이 책을 읽으면 사서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사서가 책 대출, 반납, 책 제자리에 꽂기, 구입 요청이 들어온 책의 확인 정도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사서가 하는 일이 참 많더라! 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 예컨대 '저자와의 간담회' 같은 것도 사서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더라!
나는 왜 여태껏 그런 건 도서관의 다른 행정 직원이 있어서 전담하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기 휴관일에 사서가 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구체적인 사정은 도서관마다 다르겠지만, 저자가 근무했던 공공 도서관에서는 "진도 6도 이상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벌어지지 않는 한 매주 하는 수서회의를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수서회의란, "각자 담당한 주제의 자료를 골라와서, 왜 수서를 해야 하는지, 혹은 수서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방금 검색을 해 보니 모든 도서관이 수서, 그러니까 '이 책과 저 책 등을 사겠다'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보통 인력 등의 문제로 한 명의 담당자가 이 업무를 도맡아 한다고 한다. 도서관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른 모양.)
와! 너무 놀랍다! 내가 신청한 책도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책을 신청했던 도서관이 여럿 되는데 그럼 거기에 계신 사서분들이 토론을 해서 결정을 내리셨다는 건가? 막 누구는 '절대 반대', 누구는 '절대 찬성' 이렇게 파를 갈라서 막 싸울 듯이? (저 혼자만의 상상입니다.)
제가 신청한 책을 수서하는 데 OK 결정을 내려 주신 모든 사서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놀랐던 점이, 사서가 이용자에게, 또는 이용자가 사서에게 말을 거는 부분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내, 그리고 공립 도서관을 무척 좋아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그때 딱히 사서와 "반납/대출이요." 또는 "감사합니다." 이외의 말을 나눠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절대로 그분들을 무시한다거나 NPC 취급을 해서가 아니고, '안 그래도 바쁘신 분들인데 귀찮게 해 드리지 말자'라는 마음이 강했다.
또한 도서관이란 게 대개는 조용하니까 그런 분위기도 있을 뿐더러, 나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사서에게 필요 이상으로 길게 대화를 이어간 적이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용자들에게 말을 걸어서 상대가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책에 대해 어떤 평을 내리는지를 기억해 뒀다가 '책 추천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 데이터베이스로 이용한다고 한다.
예컨대 추리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이 작가의 추리 소설이 참 재밌어요'라는 후기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뫄뫄 작가 책이 참 재밌다고 하네요'라는 식으로 제안하는 식이다.
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책을 다 읽기는 불가능하니까, 도서관 이용자나 동료 사서에게 받은 후기를 이용하면 크게 애쓰지 않고도 도서 정보의 풀을 늘릴 수 있겠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공감하고, 또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뭉클했던 꼭지도 있다. 제목은 "우리 애가 봐도 되나요?"
"얘가 판타지 소설만 읽어요."는 다른 보호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장편의 판타지를 쭉쭉 읽어낸다면 다른 무슨 책인들 읽지 못하겠는가. 그럴 때 나는 딱 한 가지로 대답한다. "그런 시기가 있어요. 마치 어린아이들의 공룡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라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판타지기'가 있다. 장편의 판타지기를 쭉쭉 읽는 시기. 그 후 일본 문학에 빠져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다거나 하는 시기. 내가 봐 온 시간의 흐름은 그랬다. 내가 당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못 읽게 하면, 책을 다신 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집에서 읽지 못하게 한다고 도서관에 와서 몰래 책을 읽다 가는 아이들이 있다. 주로 시리즈 서가에 털퍼덕 앉아서 꽤 오랜 시간을 읽은 뒤 다시 꽂아 두고 가는 아이들. 말을 건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책을 읽다가 걸렸다고 한다. '걸렸다.'라고 표현한다. 불온서적을 읽었을 때나 쓰는 표현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나는 속으로 응원한다. 꾸준히 도서관에 와서 읽고 싶은 만큼 다 읽다가 가기를. 판타지 소설은 짧아도 5권이다. 그런 책을 쭉쭉 읽는다면 단권짜리 책은 단숨에 읽고 아쉬워한다. 서사가 긴 이야기들을 더욱더 찾게 되는 것 같다. 부럽다. 난 지금 한 권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으려면 좀이 쑤신데, 학원 가기 전 혹은 학원 끝난 잠깐 짬 낸 시간 동안 몇 권을 읽어 내고 돌아간다. 화이팅.
나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다행히 부모님이 내가 어떤 책을 읽든 절대 터치하지 않으셨으므로(그 단적인 예로, 우리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대놓고 읽었는데도 그 어떤 코멘트도 듣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 말하는 부모 같은 경우는 겪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물론 안다. 책은 소위 '양서'가 아니면 안 된다, 만화는 읽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의 사람들.
저자 말에 의하면 왜 도서관에 만화를 들이냐고 전화를 걸어 따지는 사람도 있었단다. 세상에... 책이면 다 같은 책이지 무슨.
어쨌거나,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든 내버려 두라는 저자의 태도에는 100% 공감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판타지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독서 수준이 낮다고(독서 과정의 초기, 그러니까 어린 시기에서 못 벗어났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어서 이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다.
저자야 자신이 쓴 글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서 그렇다고 쳐도, 편집 과정에서 이것이 발견되어 적절히 수정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장르가 그 글의 '수준'을 좌우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
책 말미에 동료 서사 네 명을 인터뷰한 내용이 딸려 있는데, 내용이 퍽 귀엽다.
나는 특히 그 부분을 읽고 나서 '나는 사서를 했어도 참 잘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분들을 무시하는 게 절대 아니고, 사서가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과 함께하며 다른 이들과 책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라니! 이 얼마나 멋지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
나는 수서 회의에서 이 책을 꼭 사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열변을 토할 자신도 있는데! (그런 종류의 회의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아동 문학이나 여행만 제외하면 다른 모든 분류는 담당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근자감).
그럼 이 세상 모든 도서관의 모든 사서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후기가 그분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기를 바란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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