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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문화] 호주 관광청의 역대급 실수 - 호주인들은 욕쟁이?

by Jaime Chung 2018.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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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호주 문화] 호주 관광청의 역대급 실수 - 호주인들은 욕쟁이?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와서 일을 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본 외국인들은 대개 "호주인들이 욕을 많이 한다"고 말한다.

이는 호주인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막 아무 데서나 F로 시작하는 욕(F-word)이나 S로 시작하는 욕(S-word)을 마구 내뱉는 건 아니고, 보통 다른 나라들과 '욕을 이렇게 하는 건 심하지'의 기준이 약간 다르다고 할까.

<Business Insider(미국의 경제 및 비즈니스 전문 뉴스 사이트)>는 이렇게 썼다.

"It's not unommon to hear Australian managers swearing in a meeting... while cursing is considered inappropriate in many business settings, Australians are motivated by vibrant, humorous and border-line vulgar speech."

"(호주인 매니저들이 회의에서 욕하는 걸 듣기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비즈니스적인 자리에서 욕을 하는 것은 대개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호주인들은 생기 있고 유머러스하며 아슬아슬하게 저속한 말을 들으면 의욕이 고취된다)."

 

호주인들이 욕을 얼마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여기는지(그리고 다른 나라와 얼마나 '심한 욕'의 기준이 다른지)는 다음 두 가지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전(前) 수상 케빈 러드(Kevin Rudd)의 발언. 그는 황금 시간대 TV에서 '경제적 골칫거리(an economic headache)'를 '정치적인 똥 잔치(s**t storm)'라고 표현했다(참고로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러드 전 수상의 발언 중 's**t storm'이 나온 부분의 맥락은 대략 이렇다

 

 

이에 야당은 즉각적으로 수상의 욕설은 미리 준비한 대본에 쓰인(scripted) '실수(blunder)'라고 주장했다. 욕을 해서 노동자층에게 호감을 사려고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게 진짜 대본이었든 아니든 간에, 세상 어느 나라에서 서민층, 노동자층에게 잘 보이려고 정치인이 욕을 하겠는가?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꿈도 못 꿀 일이다. 대본이 아니라 실수로라도 욕을 했다간 큰일이 날 테니까. 우리나라도 물론 마찬가지고.

2012년에 유출된 한 영상 속에서 그는 또 다시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F로 시작하는 욕을 8번이나 쏟아낸다.

(보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로: https://youtu.be/DeF41_coSX8)

 

이 정도는 그래도 호주 국내에서만 화제가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두 번째 예는 전 세계적 규모였다.

2006년, 호주 관광청(Tourism Australia)은 자그마치 1억 8천만 달러라는 돈을 들여 호주의 매력을 알릴 광고를 제작한다.

호주 출신 모델 라라 빙글(Lara Bingle)이 출연한 이 광고는 꽤 참 좋았다.

 

광고는 대략 이렇다(위에 영상을 링크해 놓았지만 안 보고 싶으실 수도 있으니 아래에 간단히 글로 설명하겠다).

호주 펍에서 한 호주 남자가 말한다. "널 위해 맥주 한 잔을 따라 놨어(We've bought you a beer)."

낙타를 끌고 가는 여자는 "널 위해 낙타들도 씻겨 놨지(And we’ve had the camels shampooed.)"라고 말한다.

푸른 해변에서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는, "널 위해 해변에 자리도 마련해 놨고(We’ve saved you a spot on the beach)."

얼굴에 흰색 아연(zinc)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 아이는 웃으면서 "수영장에서 상어도 빼 놨고요(And we’ve got the sharks out of the pool."라고 말한다.

골프 치는 남자는 "그린에서 캥거루들도 쫓아냈지(We’ve got the roos off the green)."

크고 좋아 보이는 집 현관에 앉은 남자는 "빌은 정문 열어 주려고 오는 중이야(And Bill’s on his way down to open the front gate)."

해변을 저공 비행하는 경비행기에 앉은 남자는 "택시도 대기 중입니다(Your taxi’s waiting)."라고 알린다.

정장 차림의 웨이터는 "저녁 준비 마쳤습니다(And dinner’s about to be served)."

시드니에서 한 여자는 폭죽이 터지는 걸 보며 "불도 켜 놨어(We turned on the lights)."

딱히 어보리진(Aborigine, 호주 원주민)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여튼 설정상 그렇다는 여자는 "4만 년간 리허설도 해 왔어요(And we’ve been rehearsing for over 40,000 years)."라고 말한다.

 

딱 여기까지 완벽했다. 호주의 아름다운 광경과 대표적인 관광지를 보여 주며 호주 분위기도 냈다.

라라 빙글이 마지막에 나타나서 "근데 도대체 ㅅㅂ 넌 어디 있는 거야?(So where the bloody hell are you?)"라고 말하기 전까지.

전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bloody hell'이라니?

영국의 광고물 감시 단체인 '방송 광고 정화 센터(Broadcast Advertising Clearance Centre)'는 호주 관광청의 이 광고 영상을 차단했다.

 

 

 

같은 광고의 포스터 버전들

 

원래 전 세계의 호주 관광을 촉진하려던 이 광고는 결국

- 영국에서는 'bloody'라는 말 때문에 차단당하고,

- 캐나다에서는 'hell' 때문에 차단당하고(그리고 "널 위해 맥주 한 잔을 따라 놨어"라는 말도 알코올 소비를 촉진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됐다)

- 싱가포르에서는 그냥 "So where are you?"로 수정되었다.

뉴질랜드와 미국 등에서는 다행히 큰 반발 없이 광고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사실 "So where the bloody hell are you?"가 호주인들의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 호방한 언어 사용(...) 등의 문화를 잘 보여 주긴 한다.

진짜 호주 느낌 나는 건 맞는데, 다른 나라들은 욕에 호주만큼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실수였다.

그리고 2010년에 호주 관광청은 훨씬 '안전한' 슬로건인 "호주 같은 곳은 또 없어요(There's nothing like Australia)"로 옮겨 갔다.

 

올해 2018년에는 유명 호주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를 앞세워 미국을 대상으로 호주 관광을 촉진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호주 관광청이 역대급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호주인들이 다 아가리 파이터, 욕쟁이 할머니는 아니다.

다만 다른 나라들보다 욕에 눈곱만큼 좀 더 관대하는 거? 욕이 조금 더 일상적이라는 거? 그것만이 차이일 뿐ㅎㅎㅎ

어쨌거나 호주인들 욕 잘한다고 너무 겁먹지 마시길. 반대로 생각하면 이곳에 오면 욕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포스트 작성에 참고한 책과 웹사이트들 목록.

Bunny Banyai, <100 Aussie Things We Know and Love>

https://en.wikipedia.org/wiki/So_where_the_bloody_hell_are_you%3F

http://theinspirationroom.com/daily/2006/tourism-australia/

https://mumbrella.com.au/where-the-bloody-hell-are-ya-a-decade-on-marketers-still-arent-nailing-localisation-467345

http://theinspirationroom.com/daily/2006/tourism-australia/

https://www.telegraph.co.uk/news/worldnews/australiaandthepacific/australia/7540023/Australia-drops-controversial-tourism-campaign-for-safer-slog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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