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한승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베스트셀러들을 읽고 과연 읽을 만한 책인지 정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음식도 먹어 보고 지나치게 짜다거나, 달다거나, 싱겁다거나, 조미료가 많다는 등의 지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지식인 및 출판 관계자들은 베스트셀러를 아예 책으로도 취급하지 않는다.베스트셀러를 구매하는 독자는 독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휴, 저런 책이나 읽다니, 이것 참 큰일이로다! 하고 통탄하고 끝날 뿐이다. 만약 정말로 어떤 책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책이 어째서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를 설명해야 독자들도 납득할 것 아닌가. 그러한 책 대신에 무언가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덮어 놓고 읽지 말라고 일갈하거나 베스트셀러 독자들을 싸잡아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인식, 책이란 신선하고 고상한 것이라는 인식을 부추길 뿐이며 고로 출판 시장의 양극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
저자는 인터넷 서점의 자료를 활용해 지난 5년 이내의 도서 중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를 1년간 28권을 읽는 데 도전했다.
이 책들은 크게 자기계발서, 힐링 서적, 대중적 인기를 얻은 소설, 인기 작가들의 소설, 그리고 인문학 서적이라는 다섯 가지 분류로 구분이 가능하고, 각 분류가 한 챕터씩을 구성한다.
이 책들 중 내가 읽어 본 것도 있고, 읽을 생각은 없으나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유명한 건가 싶었던 책도 있었다.
특히 나는 후자를 평하는 꼭지를 더 재밌게 읽었다. '저는 평생 읽을 생각이 없으니 마음껏 스포일러 해 주세요!' 하고 응원하면서.
실제로도 저자가 소설들도 이야기를 다 요약해 주어서 너무 속 시원했다.
예를 들어,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했는데 내가 아직도 안 읽은 책들 중 하나다.
저자는 여주가 남주를 어떻게 만나고 로맨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요약해서 정리해 주고 소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했다.
이 소설의 영리한 지점은 안락사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야기의 중간중간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이 그간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 주기도 하고, 윌의 입을 빌려 장애인들의 생각과 의견을 표출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꽤나 과장되어 있는 윌의 캐릭터 탓에 딱히 와 닿지는 않아서 문제이지만, 사실 전신에 상해를 입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얼굴은 실오라기 같은 상처 하나 없이 멀끔하다는 것부터가 신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안락사 찬반 유무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끌고 들어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록 로맨스 장르이기는 하지만 가볍고 경박한 소설이 아니라 뭔가 진지하고 훌륭한, '그럴듯한' 책을 읽고 있다는 만족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손원평의 <아몬드>는 서점에서 높은 순위에 올라 있는 걸 종종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저자가 들려주는 내용을 들어 보니, 아주 가관도 아니더라. 세상에...
아니 대체 편도체를 키우기 위해 매일 아침 아몬드를 먹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편도체는 아몬드나 복숭아 씨앗의 모양을 하고 있긴 하지만 외관이 닮았을 뿐 실제 아몬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몬드의 어떤 성분이 편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 또한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많이 읽고', '상당히 똑똑한' 것으로 묘사되는 주인공의 엄마는 실날같은 희망을 갖고 아들에게 매일 아침 아몬드를 먹인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뭐 힘태희 사진 계속 바라보면 김태희처럼 변한다도 아니고. 뿐만 아니라 엄마가 주인공에게 희로애락오욕의 감정을 학습시키기 위해 각 글자를 한자로 크게 써서 집 안 사방에다 붙여 놓았다는 에피소드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글자를 보면 그 감정을 익히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소설 표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면 내용을 절로 알게 되나?
전반주는 다소 작위적인 부분이 있어도 나름 흥미진진하게 읽었으나 후반부에 들어서 정말 몇 번을 놀랐는지 모른다. 이 정도로 클리셰와 진부한 서사를 답습하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설마 앞으로 주인공 앞에 진짜 아들이 등장하여 "네 녀석이 우리 엄마의 마지막을 보다니 용서 못해!" 하면서 엄청 괴롭히는 것은 아니겠지? 싶으면 정말로 그런 대사와 함께 등장하여 엄청나게 괴롭히고, 설마 앞으로 두 사람이 화해하며 절친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것만은 아닐 거야, 생각하면 화해하더니 절친이 되고, 설마 주인공이 칼에 찔리는 순간 경찰이 나타나 구해 주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순간 경찰이 나타나고, 설마하니, 그래, 설마하니, 편도체가 커지는 일은 없을 테지, 싶은 순간 편도체가 커지는 식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이 모든 사건을 겪은 주인공은 돌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이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정도면 과학계에 보고해야 할 수준의 기적이 아닌가. 아무리 소설이라지면 줄거리가 이렇게 편리하게 가도 되나 싶어 여러 번 갸우뚱하게 된다.
정말 이 책을 거들떠도 보지 않기를 너무너무 잘했다.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다.
소설이 아닌 일반 서적, 즉 논픽션도 저자는 신랄하게 평하는데 나는 그게 꽤 취향에 맞았다.
예컨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이보세요, 기시미 이치로 양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댁이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식구들이 누워서 TV만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아,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생각이 과연 들겠습니까?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전국의 주부들이 들고일어날 만한 주장이다. 지금까지 이런 논조에 의해 희생된 개인이 얼마나 많았던가.
물론 세상에는 봉사활동을 즐겨 하는 수많은 이들을 비롯하여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가족을 위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봉사와 공헌 활동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만족감이 있고, 그 과정에서 심리 치료가 진행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것을 유일한 해결책이자 '올바른' 방법인양 단정 지어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자칫 부당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위한 나쁜 변명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다. 조직과 단체에서 불합리하게 희생되고 있거나 착취당하는 개인은 '나는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는 자기다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모두가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활동에 반드시 분노와 원망 같은 부정적 감정이 동반될 필요는 없으나 무조건적인 순응은 단순한 정신승리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또한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도 저자의 논리가 허술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사례는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보여 준다. 찰스 부코스키가 시 낭송회에 만취한 채로 나타나 독자에게 막말을 퍼부은 것은 그가 실패에 초연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례하고 괴팍한 그의 성격을 보여 주는 일화일 뿐이다. 찰스 부코스키가 훗날 성공한 요인이 그날의 황당한 사건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실패에 연연하지 말라'라는 마크 맨슨의 주장과 찰스 부코스키의 사례는 전혀 논리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자존감 수업>을 읽으며 내가 했던 생각을 저자가 똑같이 써 놨길래 이것도 공감됐다.
'평범한' 연인들이란 과연 어떤 연인들을 말하며 3~6개월 정도의 기간이란 대체 어떠한 통계를 기반으로 도출한 결과일까. 1년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는 또 어디에서 나왔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싸우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행복한 커플은 싸우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 남성은 인정을 원하고 여성은 공감을 원한다 등 뚜렷한 근거 없이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개인적 감상과 유추에 기댄 주장이 적지 않다. 물론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반론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신과 전문의'라는 저자의 직업으로 인하여, 독자가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처럼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자기계발의 세계관에서는 자존감 부족 또한 개인의 잘못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고 높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다. 애초에 우리의 자존감을 낮아지게 만든 세계와 구조적 환경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 이러한 경우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셀프 치ㅇ료 요법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수밖에 없으며 그 방법 또한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스스로를 맞추는 데 초점이 집중되게 된다. 이를테면 '자신이 속한 곳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어 보라면서 그 예시로 가족은 대화와 문안 인사, 아파트 입주민은 눈 치우기, 회사원은 지각 안 하기와 실적 올리기(119쪽)를 드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성실하게 살면, 즉 공동체에 기여하고 그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말인데, 그 공동체의 지침이나 문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왜 하질 않는 것일까?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왜 나의 다양한 정체성과 역할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가 읽어 본 책들을 본인도 읽었고 또 저자의 평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 책 괜찮던데!" 또는 "뭐야, 그거 완전 별로거든!"이라고 생각한다면, 글쎄, 저자와 취향이 안 맞는다고 할 수밖에.
다행히도 나는 저자의 의견에 거의 다 동의할 수 있었다. 솔직히 저자가 책을 비평하는 데 사용하는 논리가 엄청 촘촘하거나 뛰어난 건 아니다.
하지만 나 같은 독자도 생각해 낼 수 있는 반론을 이 책들의 저자들이 생각을 못 했다는 게 충격적인 거고, 그래서 그 책들이 그런 리뷰를 받은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책 한 권으로 28권을 읽은 효과를 내고 싶다면 한번 읽어 보시라. 저자의 평에 동의한다면, 음, 그 책들을 읽을 시간을 아끼게 되는 셈이니까 꽤 괜찮은 거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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