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Dumplin'(덤플링, 2018) - 뚱뚱한 소녀도 연애를 하고, 미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답니다
감독: 앤 플레쳐(Anne Fletcher)
엄마에게 '덤플링(dumpling, '만두'라는 뜻)'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윌로딘 오팔 딕슨(Willowdean Opal Dickson, 다니엘 맥도날드 분)은 통통한 몸집의 소녀이다.
어릴 적부터 루시 이모(Aunt Lucy, 힐러리 베글리 분)의 영향 덕분에 미국의 컨트리 싱어 돌리 파튼(Dolly Parton)을 좋아하는 윌로딘은 역시나 돌리 파튼을 좋아하는 엘렌(Ellen, 오데야 러쉬 분, 애칭은 '엘')과 단짝 친구이다.
윌로딘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게 있다면, 그녀의 몸을 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본인의 몸에 대한 자신 없음, 그리고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애, 보(Bo, 루크 벤워드 분) 등이다.
보는 윌로딘과 같은 음식점('하피스(Harpy's)')에서 일하는 남자애인데, 잘생겼고 윌로딘에게 친절하다. 그래서 윌로딘은 설레지만, 도대체 왜 그 애처럼 잘생기고 날씬하고 멋진 애가 윌로딘처럼 뚱뚱한 여자애를 좋아하겠는가?
윌로딘의 엄마 로지 딕슨(Rosie Dickson, 제니퍼 애니스톤 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텍사스의 미인 대회 '미스 틴 블루보닛(Miss Teen Bluebonnet)'에서 10번이나 상을 받은 미녀이기 때문에, 그런 걸 잘 안다.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만 봐도 나처럼 뚱뚱한 애는 미인 대회 출신 엄마 눈에는 안 찬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윌로딘이 싫다는데도 계속 자신을 '만두(dumpling)'라고 부르고, 말 끝마다 미인 대회 이야기를 주워섬기겠는가?
그래서 윌로딘은 결심한다. 이번에 열리는 미인 대회에 참가하여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내가 이전에 리뷰를 썼던, 줄리 머피(Julie Murphy) 작 청소년 소설 <덤플링>을 영화로 옮긴 버전이다.
며칠 전에 넷플릭스를 둘러보다가 이게 올라와 있어서 '꼭 봐야지' 마음먹고 있다가 주말에 시간이 나서 드디어 봤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이, 그냥 트레일러 몇 초만 봤는데 (어차피 원작 소설을 아니까) 제니퍼 애니스톤 얼굴이 보여서 깜짝 놀랐다.
제니퍼 애니스톤이 '유부녀가 되어서도 아직도 미인 대회에 열과 성을 쏟고, 10년간 입어 왔던 드레스에 아직도 몸을 끼워 맞추려 하는, 한물간 아줌마' (=윌로딘의 엄마 로지) 역할을 한다고?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괜찮았다.
애초에 원작 자체가 로지를 그렇게 한심스럽다는 뉘앙스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고, 영화에서 로지의 역할이 살짝 더 늘어난 덕분이다(이 부분은 아래 스포일러 부분에서 설명하겠다).
보면서 원작 소설과 다른 점을 몇 군데 발견했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에 내가 요전에 썼던 원작 소설 리뷰 링크 이후를 읽으시고, 원치 않으시는 분은 그 부분을 쭉 지나 마지막에 원작 소설 표지 아래 한 문단으로 가시면 된다!
2020.07.10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줄리 머피, <덤플링>
일단 영화에서는 원작 소설보다 윌로딘이 보와의 관계에서 땅을 파고 고민하는 부분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보가 윌로딘과 키스하면서 그녀의 허리께에 손이 닿자 윌로딘이 마치 불에 덴 듯 그에게서 몸을 떼고 허접한 변명을 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하나로 압축됐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윌로딘이 스스로, 엄마에게 일종의 복수를 하기 위해 미인 대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같이 미인 대회에 참여하는 괴짜들에 대한 설명과 그 애들의 이야기도 소설에서는 더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해나(Hannah, 벡스 테일러-클라우스 분)는 딱 봐도 '고스(goth)' 타입에다가 부치(butch) 타입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에스코트가 해나 본인의 여자 친구였다. 다시 말해, 대놓고 레즈비언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해나가 에스코트와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삭제되었는데 아니면 아예 안 찍었는지 보이지 않고, 에스코트와 같이 무대에 올라야 하는 마지막 포멀 의상 무대 시작 전에 후보들이 줄을 설 때 해나의 옆에 서서 해나의 팔짱을 끼는 누군가의 모습이 조금 보이는데, 대략 여성의 팔 같다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만 조금 보일 뿐이다. 레즈비언 캐릭터까지 끼워 넣기에 할리우드는 아직 크지 않은 것인가?
영화에서 조금 더 살아난 캐릭터도 있다. 밀리(Millie, 매디 베일로 분)의 캐릭터의 경우, 소설에서는 멍청하다는 느낌이어서 '얘가 도대체 왜 상을 타지?' 싶었는데 (원작에서도 얘가 2등을 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책을 다시 확인해 보려니 대여 기간이 만료되어서 못 본다네) 영화를 보니 이해가 된다.
밀리는 사실 몸집이 크다 뿐이지, 피부 하얗고 까만 머리에 이목구비 확실한 백설공주 타입이었던 거다. 성격도 아주 명랑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뚱뚱하다고 놀리는 애들에게 욕도 하지 않고 그냥 깔깔 웃어넘기거나 "너희를 위해 기도할게!" 하고 소리치는 정도니까.
이 정도로 예쁘고 성격 좋으니 2등을 해도 납득. 밀리의 캐릭터는 확실히 소설에보다 영화에서 더 납득이 잘 간다.
로지의 역할도 영화에서 조금은 늘었는데, 마지막에 '실격 처리 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에스코트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윌로딘이 엘의 에스코트로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영화 속 로지의 일이 됐다. 원작에서는 애들이 그냥 떠올렸던 거 같다. 윌로딘 본인이었나?
아, 소설에서도 로지가 그 (전통적으로 미인 대회에서 심사를 할 때마다 입었던) 드레스를 못 입어서 드랙 퀸들이 도와줬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 드레스에 더 이상 몸이 안 맞아서 당황하는 장면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시는 분 제보 바랍니다.
영화나 소설이나 같은 게 있다면, 드랙 퀸들이 윌로딘과 괴짜 친구들에게 미인 대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자신감을 길러 주고 춤 등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다만, 아무래도 소녀가 주인공이다 보니까 윌로딘과 엘이 싸우고 나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좀 덜 덜어내고 소녀들끼리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지 확실히 강조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영화에서는 그걸 조금 가볍게 넘어간 느낌이라서.
원작 소설 표지(영어) |
원작 소설 표지 (한국어) |
이제 아래부터는 딱히 스포일러랄 게 없으니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도 읽으셔도 무방하다(아래에 언급되는 내용은 영화 트레일러에도 이미 나오는 내용이다).
드랙 퀸들의 공연 모습이나 영화 후반에 계속되는 미인 대회가 아무래도 비주얼적으로 화려하고 볼 맛이 있어서 이런 건 영화가 더 잘 살렸다.
아무래도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아, 공연은 이럴 거야', '미인 대회에서 애들이 의상을 입으면 이럴 거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는 눈으로 확 들어오는 영화가 이런 면에서는 낫지.
아, 영화에서는 실제로 돌리 파튼의 노래를 사용한다. 배경 음악으로 깔리기도 하고, 드랙 퀸들이 공연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미인 대회에서도 사용된다.
제니퍼 애니스톤이 사실 돌리 파튼을 엄청 좋아하는 팬이라고. 그래서 이 영화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나 보다. 제니퍼는 심지어 이 영화를 위해 돌리 파튼이 신곡을 쓰게 만들기도 했다! 완전 성공한 덕후네. 좋겠다.
전반적으로 평을 하자면, 원작인 청소년 소설을 잘 영화화한 버전이라 하겠다. 배우들 연기도 좋고, 메시지도 있고, 볼거리도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봐도 좋을 것 같다!(설마 드랙 퀸이 나온다고 청소년에게 유해하다 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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