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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셀레스트 해들리, <바쁨 중독>

by Jaime Chung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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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셀레스트 해들리, <바쁨 중독>

 

 

바쁜 걸 은밀히 즐기는 경향이 있음을 알기에 이 책의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저자도 우리처럼 바쁘게, 열심히 살다가 어느 순간 현타를 느껴서 바쁨 중독의 원인과 방법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이 정도면 명확하게 설명한 것 같으니, 내가 좋아한 구절들 모음으로 리뷰를 갈음하고자 한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많이 보인다면 이 책도 한번 살펴보시라. 리디셀렉트에 있다.

 

잠깐의 여가야 즐겁겠지만 24시간 중 4시간만 일한다면, 사람들은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 현대 문명에 대한 비난이다. 과거 어느 시대도 이런 적이 없었다. 예쩐에는 마음 편히 노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어느 순간 우리는 능률 숭배에 억제되어 왔다. 현대인은 모든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코 그 자체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1932
이른바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지배 계급의 독단적인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근면성만큼이나 그 입장을 진술할 타당한 권리가 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1877
고용주는 더 적은 노동자를 고용해 더 길게 일을 시키려 한다. 종교적 믿음은, 노동은 선이며 게으름은 악이라고 규정한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가 지속적인 성장을 신봉하면서, 고용주의 욕구와 종교적 믿음이 어떻게 합쳐졌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이 돈이 되자, 고용주에게는 수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더 많은 시간 일을 시킬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막스 베버는 장시간 노동과 생산성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유명한 책 결론에서 몇 가지 의구심을 표현했다는 것은 지적하고 넘어갈 만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는 "금욕주의가 수도자의 방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옮겨왔을 때… 그것은 현대 경제 질서의 창대한 우주를 건설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기계가 사람들 대부분의 삶을 통제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만약 "마지막 1톤의 화석연료마저 다 태울 때까지" 기계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인류가 삶을 향상시켜야 할 산업이 결국에는 '철창'이 되지는 않을지 의문을 표했다. 우리가 자원을 고갈시키고 스스로를 구속할 것이라는 그의 우려는 타당했다. 하지만 과거 정책들의 참단한 결과가 눈앞에 뻔히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가 그랬듯이 우리는 여전히 계속 일하라는 말을 듣는다.
확실히 집과 사무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에, 실질적으로 비업무 시간이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캔버라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Australia Institute)가 말하는 '오염된 시간(polluted time)'을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휴무일에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거나, 당직을 서거나, 엄밀하게는 근무 시간이 아닌데도 업무와 관련한 문제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이 연구소의 조쉬 피어 부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오염된 시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강화되면서 생긴 여러 결과물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유연성이 가져온 이득은 십중팔구 고용주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이때 '유연성(flexibility)'은 (대부분의 경우) 근무 중 배우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해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토요일 오전 10시에 상사의 이메일에 즉시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무 시간 외에 하는 가장 흔한 업무가 이메일을 읽고 답장하기라는 사실은 분명 전혀 놀랍지 않다.
우리는 업무에 실제로 요구되는 시간과 상관없이 직장에서 8시간을 보내야 한다. 따라서 엄연히 근무 시간인데도 온라인 쇼핑을 하고, 진료 예약을 하고, 일상적으로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한다. 마트, 병원, 관공서 같은 곳이 문을 닫은 뒤에야 퇴근한다면 이런 용무를 달리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누구에게나 본인이 오직 일에 집중하는 동안 집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해줄 배우자가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가정생활을 사무실로, 일을 가정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핸슨은 이런 주장이 흰소리로 여겨지지 않도록, 자신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핸슨의 직원들은 1년의 대부분은 주당 40시간, 여름에는 32시간만 일한다. 그는 2017년 한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중독은 질병이다. 우리는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고통을 응원할 게 아니라, 치료와 대처 방안에 대해 조언해주어야 한다." 그의 말처럼 일중독을 질병이라고 한다면 질병 중에서도 최악의 질병이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일중독'이라는 말을 칭찬이나 은근한 자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도움을 청하는 외침으로 생각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잘못된 노력은 개방형 사무실 배치였다. 그 동기는 훌륭하고 긍정적이었다. 경영진은 화합이 더 잘되는 팀을 만들고 상호작용을 장려하고자 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수년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개방형 사무실 배치가 직원들이 서로 대화할 가능성을 사실상 낮춘다고 한다. 사생활이 보장될 가능성이 없을 때 스트레스가 생기고, 따라서 창의적 사고가 저해된다. 진열당한 사람들은 서로 뒤로 물러섰다.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개방형 사무실이 생산성의 급증을 가져올 거라던 많은 전문가들은 예측 역시 정반대 결과가 나타날 때가 많았다. 일부 경영자들은 직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추기 어렵게 만들면 업무에 집중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교의 조직행동학 교수인 이선 번스타인은 벽을 없얬을 때 직원들이 자신의 활동을 감추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무실에서 나가거나 휴게실에 계속 머무를 새로운 이유를 찾아넀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엿듣지 못하게 암호까지 써가며 동료들과 대화했다. 직장인들은 문을 닫을 수 있는 회의실을 사용하거나 혼자 일할 수 있도록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다. 번스타인은 "특정 조건에서는 프라이버시 존(privacy zone)을 만들면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노동자들은 심지어 쉬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도 수치심을 느끼도록 조종당했다. 기업의 이름은 그 기업이 속한 나라의 이름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다. 유럽에 가문의 문장이 있다면 미국에는 회사의 로고가 있었다.

1920년대에 고용주들은 업무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직원들을 꾸짖는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다. 한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낭비, 부주의, 실수, 빈둥거림. 그것들이 우리를 멈춰 세우기 전에 우리가 그것들을 막자." 또 다른 포스터에는 미국 국기 앞에서 표창장을 받는 군인의 모습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능률적인 근로자는 항상 명예롭다. 그의 공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내라!" 또 다른 포스터는 공장의 굴뚝으로 이어진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거대한 시계가 있는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위협을 했다. "전화가 오면 바로 응답하라. 당신이 받지 않으면 당신의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간다! 하루를 쉬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고용주들이 만들어낸 이런 구호는, 회사에 가장 이득이 되는 원칙을 노동자들의 마음에 매일 주입헀다.,

고용주들은 승진과 임금 인상을 놓고 직원들을 경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럼으로써 직원들이 동료보다 더 오래 회사에 머물면서 '경쟁자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도록 조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훌륭한 직원을 묘사하는 특징들, 즉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이며 근면하고 독립적이라는 말은 좋은 남편이나 자매, 친구를 묘사하는 데도 똑같이 쓰이게 되었다. 작가 마리아 포포바는 BBC 방송 중에 "가장 해로운 건 본질적으로 그 기준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삶의 영역에 생산성을 적용하고야 마는 우리의 경향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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